서방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피격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사고에 대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주도적으로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외신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전화통화를 갖고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 추락 지역에 대한 조사를 ICAO 주관으로 실시하는데 합의했다.
러시아 정부는 성명을 통해 "두 정상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조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또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정부군과 반군이 교전을 멈추고 대화를 시작하는게 중요하다는데도 의견을 함께 했다.
미국과 러시아도 비슷한 의견을 공유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전화 통화를 가졌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에서 "양국이 독립적이고 공개적인 국제 조사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 했다"면서 "특히 비행기록장치 등 증거물의 활용이 가능해야 하고 전문가들의 현장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설명 자료를 통해 조사 요원들이 사고 현장에 전면적이고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케리 장관이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단과 조사 요원들의 사고 현장 접근이 거부된 점과 희생자 시신과 여객기 잔해가 훼손됐다는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는 다만 ICAO 주도의 조사 합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는 이에 앞서 긴급회의를 열고 공개적이고 독립적인 국제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했다. 또 ICAO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조사단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미 사고 현장이 상당 수준 훼손됐고 반군의 태도까지 비협조적이어서 조사가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P통신 등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원들이 18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의 여객기 추락 현장을 방문했으나 무장한 반군의 비우호적 태도로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추락 범위가 광범위한데다 현장이 제대로 봉쇄되지 않아 증거물들이 이미 많이 훼손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항공기 사고의 경우 현장을 봉쇄하고 잔재물들이 부식되지 않도록 보존하는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번 사고 현장은 일반인의 차단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주민들은 현장에서 항공기 부품과 동체, 쓸만한 물건들을 집어가 사고 경위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증거 자료들이 사라졌다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또 사고 조사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블랙박스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반군의 수중에 들어가 훼손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서방과 러시아가 철저하고 공정한 국제 조사에 합의했지만 실제 누구의 소행인지 등을 규명하는 작업은 난항을 거듭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