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는 미국이 과격 이슬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해 시리아로 공습을 확대하기로 한 결정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러시아 외무부는 11일(현지시간)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의 동의도 없이 시리아 영토 내 IS 기지를 공습하겠다고 천명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없이 이루어진 이런 행보는 도발행위이자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외무부는 "이번 공습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는 시리아 사태에 추가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해 국제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테러리스트들을 (미국의 이익에 근거해)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구분하는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외무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편으로 과격 이슬람 세력에 맞서도록 이라크를 지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IS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시리아 무장 반군 지원을 위해 5억 달러를 배정해달라고 상원에 요청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러시아 관영 TV 방송 '제1채널'도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내 IS 기지를 공습하기로 한 결정을 주요 뉴스로 전하면서 미국이 시리아 정부나 유엔의 승인도 없이 또다시 지난 1999년 유고슬라비아 공습 때와 유사한 일방적 군사개입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모스크바의 유력 정치·군사문제 전문가 블라디미르 예브세예프 '사회정치연구센터' 소장도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시리아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현지 IS 기지 공습은 시리아 내정에 대한 불법적 무력개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군사개입하고 있다고 비난해오던 미국이 오히려 실제로 불법적 군사개입에 나섰다"며 "시리아 공습은 IS 격퇴란 효과를 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시리아 사태 해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IS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이 조직의 무력화를 위한 전쟁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 신(新)도전문제담당국 국장 일리야 로가체프는 지난달 말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테러조직 IS의 활동이 러시아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로선 IS의 위협이 이데올로기적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곧이어 실질적인 위협으로 바뀔 수 있다"며 "IS 진영에서 싸우고 있는 전투원들이 러시아로 침투하거나 이 조직이 자신들의 사상을 러시아 내 이슬람 지역으로 전파하려 시도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체첸을 비롯한 자국 남부 캅카스 지역의 이슬람 반군과 오랜 싸움을 벌여오고 있는 러시아에 IS 세력 확장은 경계해야 할 위협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IS는 이달 초 자체 동영상을 통해 체첸과 캅카스 지역에서도 이슬람 국가 건설을 위한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하면서 자신들의 공격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몰락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러시아가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데 대한 보복 경고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미국의 IS 기지 공습 결정은 러시아에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IS 세력이 러시아에 직접적 위협이 되지는 않고 있는 만큼 러시아는 미국의 시리아 공습을 오히려 서방을 압박하는 외교적 카드로 이용하려 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리아 공습의 불법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국제테러리즘과의 전쟁을 효율적으로 치르기 위해선 러시아의 지원과 협력이 필수적임을 강조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서방의 양보를 촉구하는 외교전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미하일 마르겔로프 러시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10일 9.11 테러 이후 러시아가 미국의 대(對)테러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을 상기시키면서 IS가 세력을 키워가는 지금 미-러 간 공조를 되살리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몰두하고 있는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러시아가 국제 테러리즘과의 전쟁에서 미국을 지원한 사실을 잊고 있다"며 "대테러전에서 러시아와의 공조 거부는 테러리스트들이 서방 진영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기회를 키워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