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절도 혐의로 구속된 30대에게 미제사건 171건을 뒤집어 씌웠다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들통났다.
수원지방법원 제4형사부(김경호 부장판사)는 절도 혐의로 구속된 뒤 보석으로 풀려난 길 모(32)씨의 항소심에서 5건의 절도 혐의만 인정,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길 씨에 대해 2009년 6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호프집에서 현금 6만 원 등 두 차례에 걸쳐 총 21만 원을 훔치고 3차례는 미수에 그친 혐의만 인정했다.
길 씨는 같은해 9월21일 125건에 이르는 절도 혐의로 구속됐고, 같은해 10월 수원지법 성남지원 1심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길 씨를 구속하는 과정에서 "강도사건현장 CCTV에 찍힌 범인이 너와 비슷하다. 시인하면 집행유예나 징역 6개월 정도 살면 나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BestNocut_R]
길 씨는 "중·고교 시절 행동·정서 장애를 겪었고 '도벽'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적이 있어 '강도 용의자보다는 절도범이 낫다'고 여겨 1건을 인정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경찰은 "성남에서 발생한 절도 미제 사건을 네가 다 가지고 가라"며 "만약 부인하면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로 끌고 가 망신을 주겠다"고 협박, 무려 125건을 인정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경찰은 1심 선고뒤 길 씨에 대해 "인천의 절도사건 1건에서도 네 유전자가 나왔다"며 인천지역 미제사건 51건도 추가했다.
이렇게 해서 길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모두 176건, 절도액은 4천700만 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같은 경찰의 행각은 항소심 사건을 맡은 수원지방검찰청 형사3부 최준호 검사에게 들통이 났다.
최 검사는 성남과 인천에서 같은날 같은 시간대 10분 차이로 범행을 벌이는 등 길 씨의 범죄 사실이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추궁한 결과 허위자백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길 씨가 다닌 충남 공주 직업학교와 주변 피시방 등에서 출석 기록, 피시방 컴퓨터 접속 기록 등을 토대로 171건에 대해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 길 씨의 공소장을 변경했다.
김경호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절도 사건에서 타액이 검출되거나 CCTV 등을 통해 길 씨의 범죄가 확인된 5건만 판단했다"면서 "나머지 171건은 길 씨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