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사진 = 이미지비트 제공)
고 신해철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의료사고를 당하고도 힘겨운 법정 소송을 감수해야 하는 환자들의 권리 구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소송 전 병원 측과 분쟁 조정 절차를 밟을 수 있게 한 현행 제도 역시 환자의 입증 책임 부담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복막염과 패혈증으로 숨진 한 환자(57)의 유족은 “병원 측이 장에 생인 천공을 오진한 탓”이라면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유족 측은 병원 측의 책임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조정은 이뤄지지 못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접수한 이같은 의료분쟁 조정 접수 건수는 문을 연 지난 2012년 503건에서 2013년 1,398건, 올해 10월말까지 1,584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조정성립율이 지난해 90%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게 중재원의 설명이지만 정작 조정이 이뤄졌더라도 상당수가 소액이여서 합리적 배상 수준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난해 합의나 조정이 성립된 358건 가운데 약 68%인 244건이 500만원 미만이었고, 금액이 높을수록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입증 책임을 진 환자 측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최근 발의된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이 중재원의 기록 감정 인원을 늘리는 부분 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중재원 감정단이 무슨 시각에서 의료기록을 보겠냐. ‘원고가 의료사고를 입증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겠냐”면서 “피해자 측 환경이 굉장히 나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양측의 동의 없이도 조정절차가 시작되도록 강제하고, 감정서를 민사소송에 사용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어 거꾸로 병원 측이 이 절차를 이용해 환자 측을 압박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료사고 소송에서 환자 측이 병원을 상대로 전부 승소한 경우는 3%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다 정보와 전문성에서 우위에 있는 병원 측이 ‘갑’일 수밖에 없어서 조정 결과를 거부하고 법정에 서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위·변조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전자의무기록(EMR)이 오히려 예전보다 기록의 수정과 삭제가 쉽고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논란에도 휩싸여있다.
신해철 씨 소속사 측은 장협착 수술을 했던 S병원이 작성한 의무기록에 “진료항목이 빠져있는 게 많고, 일부는 손으로 작성했다”는 이유로 신빙성에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RELNEWS:right}이 때문에 병원 안에 블랙박스나 CCTV를 설치하거나 미국의 트라우마센터와 같이 24시간 녹음과 촬영 장치를 의무화하자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신해철 씨 사망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송파경찰서는 S병원 측이 촬영한 수술 동영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삭제됐거나 비정상적인 경로로 저장됐을 가능성도 수사하고 있다.
신 씨 유족 측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인 뿐 아니라 의료사고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많은 유가족을 대신해 향후 제도적 보안 통해 의료사고 입증 체계 문제점도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