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을 겨냥한 검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검찰이 민변측 주요 변호사들을 무더기 징계요구한데 이어 고소고발건을 계기로 잇따라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민변 겨냥을 두고 공안사건 무죄에 따른 보복이라는 주장부터 세월호 진상규명을 앞두고 민변 단속에 돌입했다는 주장까지 해석이 분분하다.
◈ 불만 쌓인 검찰, 잇따른 수사와 징계 청구
검찰과 민변 사이에 본격적인 긴장관계는 지난해 불거진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민변측의 변론으로 국정원이 위조한 증거를 법정에 제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재판에서 졌고, 대내외적 망신을 샀다.
최근에도 북한 대남공작원으로 지목된 홍모씨의 1심 재판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공안 수사 전반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특히 다음카카카오의 감청 영장 거부로 공안 수사가 사실상 올스톱된 것도 한 몫 했다.
반대로 민변은 간첩 사건의 무죄 변론을 이끌면서 실력을 검증받았고, 세월호 사건과 사이버 검열 논란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같은 검찰의 위기감과 쌓여있던 불만이 민변측 변호사들에 대한 수사와 징계 요구로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올해 하반기부터 집회 현장에서 집시법 위반 혐의를 받은 권영국 변호사 등 민변 변호사들을 잇따라 불구속 기소해 재판에 넘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검찰은 지난달 말 민변 변호사들을 무더기로 징계 신청했다. 특히 전례가 없이 기소도 되지 않은 변호사들까지 징계 신청 대상에 포함시켰다. 보복성 탄압이라는 반발이 뻔히 예상됐지만 검찰 수뇌부는 회의 끝에 민변 변호사들의 징계 신청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여간첩 조작 의혹을 보도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알고싶다'의 담당 PD와 민변의 장경욱, 박준영 변호사가 고소되면서 검경이 수사에 착수한 것도 뒤늦게 알려졌다.
장경욱 변호사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과 북한 직파 간첩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 변론을 이끈 인물이다. 장 변호사는 이외에도 보수단체에 의한 총 5건의 고발사건에 연루돼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공안 사건 무죄 등으로 수세에 몰린 검찰이 민변 길들이기에 나선다는 것은 법조계의 중론이다. 검찰도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민변에 쌓여왔던 불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변호사들이 실정법을 위반하거나 고소고발되면서 검찰도 원칙에 따라 적극 수사에 나서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 "수사권 강화 여론 뛰우기"… "세월호 진상규명 사전단속"민변 변호사들의 징계 요구가 단순히 길들이기 차원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검찰이 수사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론 띄우기 차원에서 이슈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최근 수요일마다 주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공안사건의 주요 증거가 잇따라 기각된 점 등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공안 검사들은 특히 현행 형사소송법이 지나치게 인권침해 방지 등에 집중하다보니 수사권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변호사들에게도 더 엄격한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의뢰인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거나 진술거부를 강요했다며 징계 신청을 당한 장경욱, 김인숙 변호사의 경우도 이같은 맥락이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진술을 거부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일반적인 방위권을 넘어선 것이다"며 "이 두 사건은 변호권과 진실의무가 충돌하는 부분에 있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의 한 공안 부장검사는 "7,80년대 독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검찰의 강압 수사에 대한 전국민적 트라우마 때문에 인권 보호 차원에서만 형사소송법이 강화돼 온 측면이 있다"며 "수사권을 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내부적으로 있다"고 주장했다.
{RELNEWS:right}특히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다음카카오에서 감청영장 집행을 거부하면서 검찰 수뇌부에서도 수사권이 축소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어느때보다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다음카카오의 감청영장 집행을 강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는 상황이다.
민변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검찰의 민변 겨냥은 수사권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인권침해가 여전한 상황에서 더 큰 반발을 낳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민변 때리기가 세월호 진상규명과 연관돼 있다는 해석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유가족이나 야당 측 추천 몫으로 민변 변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민변에 대한 색깔 씌우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추천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검찰이 무더기 징계요구를 해 대한변협이 곤혹스러워진 측면이 있다"며 "검찰이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세월호 진상규명을 앞두고 민변 단속에 나섰다는 의구심이 들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