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지는 않았지만 장기간 별거등으로 사실상 부부생활이 파탄난 상황이라면, 부부중 한쪽이 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남편 박모 씨와 처 이모 씨는 1992년 결혼해 가정을 이뤘지만 경제적 문제, 성격차이 등의 이유로 자주 불화를 겪어왔다.
결혼한지 10여년이 지난 2004년, 별거를 시작한 뒤로 박 씨와 이 씨의 가정생활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고 2008년에는 이혼소송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아내 이 씨가 이혼소송이 한창 진행중이던 2009년, 등산모임에서 알게된 남성과 집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하다 박 씨에게 들키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박 씨는 아직 이혼이 성립되지 않았는데 아내 이 씨가 외도를 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 씨와 부적절한 행위를 한 남성에게 위자료 3,000만원을 달라며 소송에 들어갔다.
1심 재판부는 아내 이 씨가 남성을 만날 무렵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남성과의 부적절한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남편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남성이 이 씨가 배우자가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입맞춤을 하는등 부정한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해 배상의무가 있다며 원고 승소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이같은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 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다수의 대법관들은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면,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두고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그 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이러한 법률관계는 재판상 이혼청구가 계속 중에 있다거나 재판상 이혼이 청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여 달라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상훈 ·박보영 ·김소영 대법관은 "다수 의견은 형사 처벌되는 간통행위가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때는 위법성이 부정되어 법체계상 모순되는 결과가 된다"며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부부 일방이 배우자로부터 이혼의사를 전달받았거나, 재판상 이혼청구가 민법에 따라 이혼이 허용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 재판상 이혼을 청구해 혼인관계의 해소를 앞두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불법행위의 성립을 부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이번 사건의 경우 부정한 행위를 한 쪽이 간통죄로 형사처벌 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