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를 위시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강공에 한껏 움츠러든 한국영화가 대반격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그 중심에는 대단위 가족관객들이 움직이는 겨울 성수기 극장가를 겨냥한 상업영화 '빅4'가 있다. 줄줄이 개봉을 앞둔 '빅매치' '국제시장' '상의원' '기술자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서울 도심 전체가 오감 자극 게임판 '빅매치'
영화 '빅매치'의 한 장면. (사진=보경사 제공)
대반격의 물꼬를 틀 선봉장은 26일 개봉하는 이정재 주연의 '빅매치'(감독 최호, 제작 보경사)다. 오락 액션을 표방한 빅매치는 도심 전체를 무대로 천재 악당 에이스(신하균)에게서 납치된 형(이성민)을 구해야 하는 파이터 익호(이정재)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상암 월드컵경기장, 서울역, 행주대교, 한강 고수부지 등 서울 도심 한복판을 배경으로 흥미로운 미션들이 펼쳐지는데, 카메라는 게임판이 된 도심을 휘젖는 익호의 목숨 건 질주를 뒤쫒으며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이 영화는 짜릿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고자 다양한 시도를 벌였다. 하이라이트인 상암 월드컵경기장 시퀀스의 경우 경기장 전체를 3D로 구현해내 익호의 액션에 생동감을 더했다.
국내 액션영화로는 처음으로 모션캡처 프리비주얼을 도입하고 비주얼 감독을 투입한 것도 손에 꼽을 만하다. 실제 배우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액션과 카메라가 촬영할 수 없는 다양한 앵글을 구현하는 데 쓰인 모션캡처 프리비주얼은 액션의 쾌감과 타격감을 살리는 데 큰 몫을 했다.
비주얼 감독은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데도 무술·CG·특수효과·촬영·조명·미술 등 담당 스태프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전체 그림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를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기술적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고, 각 팀별 촬영 준비에 있어서도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여기에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액션 쾌감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모든 출연작을 흥행작으로 만들며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입증한 이정재는 극중 파이터로 분한 만큼, 촬영 5개월 전부터 훈련에 돌입해 복싱, 레슬링 외에도 다양한 킥 동작을 빠른 속도로 익혔다. 그는 격투기 선수의 몸을 만들고자 오전에 개인 운동으로 몸집을 키우고, 오후에 격투기 훈련을 하는 등 끊임없는 노력 끝에 7㎏을 늘려 근육질 몸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천재 악당으로 분한 신하균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드라마틱한 감정을 표현해야 했는데, 이를 출중한 연기력으로 소화했다. 익호의 하나뿐인 형 영호 역을 맡은 이성민을 비롯해 라미란 김의성 배성우 보아 손호준 최우식 등 신구 조화를 이룬 배우들도 극에 신뢰감을 더한다.
◈ 고단한 삶 위로하는 밑바닥 정서를 품다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제공)
다음달 17일 개봉을 확정짓고 일찌감치 숨고르기에 들어간 황정민 주연의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제작 ㈜JK필름)은 빅4의 주력부대로 꼽힌다. 삼대로 구성된 가족관객층을 극장에 불러모을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는 까닭이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고단하고도 치열한 삶을 이어온 한 가족의 일대기를 담았다. '해운대'(2009)로 1,000만 영화 감독 반열에 오른 윤제균 감독이 황정민 김윤진 등 믿고 보는 배우들과 손잡았다. 이를 통해 폭넓은 시공간을 배경으로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우리네 아버지의 눈물과 위안을 이야기한다.
덕수 역을 맡은 황정민은 극중 혈기왕성한 20대 청년의 모습부터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모습, 세상 풍파를 이겨낸 70대 노년의 모습까지 한 작품 안에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의 변화를 폭넓게 표현해냈다.
영화는 덕수가 그의 영원한 동반자 영자(김윤진), 덕수의 아버지(정진영)와 어머니(장영남), 고모(라미란), 사고뭉치 여동생 끝순(김슬기),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 달구(오달수)와 만들어내는 사건을 통해 '메러디스 빅토리'호 탈출, 피란민의 터전 국제시장, 파독 광부·간호사의 삶, 베트남전 등 7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부산 서울은 물론 태국 체코에 이르는 3개국 로케이션을 통해 기존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확장된 공간을 선보인다는 점도 이 영화의 특징이다.
제작진은 현대사에 기록된 굵직한 사건들을 관통하는 서사 드라마를 재현해내고자, 각종 인터뷰 자료와 역사 다큐멘터리 등을 연구·검토하면서 가장 실제에 가깝게 사건을 담아내는 데 힘썼다고 한다. 스웨덴의 특수분장팀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 모두 4개 특수효과팀이 투입되는 등 기술적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
윤제균 감독은 "정말 힘들고 가난하고 어려웠던 그 시절에 가족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에 대해 언젠가는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며 "주요 무대로 부산 국제시장을 선택하게 된 데는 과거 피란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이자 현재 서민들의 일상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유일한 사극…궁중의상 향연이 낳은 암투 '상의원'
영화 '상의원'의 한 장면. (사진=㈜영화사 비단길 제공)
다음달 개봉하는 한석규 주연의 '상의원'(감독 이원석, 제작 ㈜영화사 비단길·상의원문화산업전문)은 빅4 가운데 유일한 사극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차별점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 왕실 의복을 만들던 기관인 상의원을 주무대로 두고 궁 안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그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천민 출신으로 왕실 최고의 어침장에 오른 조돌석(한석규)과 조선의 유행을 일으킨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고수)이 있다.
돌석은 궐밖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디자이너 공진이 입궐한 뒤부터 전통을 고수해 온 왕실 의복에 변화의 바람이 불자 불안감을 느낀다. 옷 본이 없으면 한복을 지을 수 없는 조선의 전통 방식과 달리 상상 속 의복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공진의 놀라운 능력은 모든 이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왕(유연석)과 왕비(박신혜)까지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 하나로 공진의 의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돌석은 심한 질투심에 휩싸이고 이는 거대한 사건의 시초가 된다.
영화 상의원은 '궁궐에서 입는 아름다운 옷들은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천민 출신 과학자 장영실을 관리로 배출한 기관인 만큼, 상의원은 천민이 양반이 될 수 있고, 왕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권력과 맞닿은 공간이라는 매력적인 설정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큰 힘이다.
캐릭터 포스터를 통해 공개된 배우들의 의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상의원은 아름답고 화려한 궁중의상의 향연을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다. 극중 선보이는 궁중 복식은 고증을 기반으로 전통 한복 라인에 현대적 감성을 더해 만들어졌다. 전통 염색 기법을 통해 고운 빛깔을 살리고,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들이 명품 의복을 탄생시킨 것이다.
충무로 최고 실력을 지닌 스태프들의 참여도 영화에 대한 믿음을 심어 준다. 흥행작 '늑대소년' '추격자' '음란서생'을 낸 제작사 비단길의 진두지휘 아래 '군도: 민란의 시대"로 올해 대종상 의상상을 탄 조상경 의상디자이너, '라스트 스탠드'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도가니' '화이'의 김지용 촬영감독 등이 합세했다.
지금까지 스크린에서 보지 못한 상의원이라는 공간에다 명품 배우, 흥행 제작진, 화려한 의상이 더해졌다는 점은 상의원에 대한 한 줄 설명으로 무리가 없어 보인다.
◈ "김우빈, 젊은 관객들 마음을 훔쳐라" '기술자들'
영화 '기술자들'의 한 장면. (사진=㈜트리니티엔터테인먼트 제공)
다음달 선보이는 김우빈 주연의 '기술자들'(감독 김홍선, 제작 ㈜트리니티엔터테인먼트)은 빠른 속도감과 지루하지 않은 볼거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도둑들'을 잇는 케이퍼무비(특정 물건을 강탈·절도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 주는 영화)로 빅4 중 가장 젊은 영화라는 인상을 준다.
뛰어난 두뇌의 금고털이로서 작전 설계는 물론 모든 위조에 능한 지혁(김우빈), 인력 조달 전문 바람잡이 구인(고창석), 어떤 보안 시스템도 순식간에 뚫어버리는 업계 최연소 해커 종배(이현우)는 기막힌 솜씨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보석상을 털며 순식간에 업계에 이름을 날린다.
이들을 눈여겨봐 온 재계의 검은손 조사장(김영철)은 자신이 벌일 큰 판에 지혁 일당을 끌어들인다. 조사장이 설계한 작전은 동북아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자랑하는 인천세관에 숨겨진 고위층의 검은돈 1,500억 원을 빼내는 것. 주어진 시간은 단 40분이다.
기술자들의 이야기 줄기는 크게 세 가지 사건으로 엮여 있다. 먼저 고층 빌딩에 있는 5억 원짜리 봉황상을 지혁이 홀로 빼내는 오프닝 시퀀스. 지혁은 삼엄한 경비를 뚫고 봉황상을 탈취하지만 이내 보안요원들에게 발각되는데, 로프 하나로 고층 빌딩 사이를 오가며 단숨에 요원들을 따돌린다.
다음은 지혁과 구인, 종배가 한 팀으로 보석상 거리의 30억 희귀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장면. 셋은 기막힌 솜씨로 보석상의 귀빈실 금고 위치를 파악하고, CCTV 기록까지 조작하는 팀워크를 과시한다.
마지막은 인천세관에 있는 검은 돈 1,500억 원을 빼내는 시퀀스. 중앙검문소, 야적장, 소각장, 전산시스템실 등 잠입조차 쉽지 않은 세관을 어떻게 들어갈지, 무게만 3톤을 웃도는 1,500억 원을 어떤 방법으로 옮길지에 대한 치밀한 작전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