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 성남FC 감독은 시민구단 전환 첫 해부터 위기에 빠진 친정팀의 지휘봉을 잡아 FA컵 우승의 새 역사를 이뤘다. 윤성호 기자
"우리에게는 '학범슨'이 있다."
성남FC의 주장 박진포는 FC서울과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을 앞두고 짧은 출사표를 던졌다. 박진포가 뱉은 한 마디의 짧은 문장은 많은 뜻을 품고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감독을 믿고 따르겠다는 분명한 의지뿐이었다.
결국 성남은 학범슨과 함께 FA컵 역사상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에서 연장까지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했다.
천안 일화 시절이던 1999년과 성남 일화였던 2011년에 이어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첫해인 2014년에 다시 한 번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FA컵에서 시민구단이 쟁쟁한 기업구단을 물리치고 우승한 것은 2001년 대전 시티즌 이후 두 번째 기록이다. 특히 이날 경기장에는 이재명 성남 시장이 2000명 가량의 성남 팬과 함께 직접 응원에 나서며 시민구단 첫해의 첫 우승 감격을 나눴다.
사실 김학범 감독은 성남 팬들에게는 좋은 기억을 안겼던 감독이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성남 지휘봉을 잡아 2006년 리그 우승과 리그컵 준우승, 2007년 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명장 대열에 합류했다. '승부사'의 이미지와 함께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서 가져온 '학범슨'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바로 이때다.
이후 허난 젠예(중국)와 강원FC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성남은 위기 상황에서 김학범 감독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기업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첫해 성남은 잦은 지도자 교체로 구설에 올랐고, 김학범 감독이 위기의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김학범 감독은 빠르게 성남을 수습했고, 결국 FA컵 우승의 새로운 역사까지 이끌었다.
"서울에는 미안하지만 이번 우승이 우리 선수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김학범 감독은 "시민구단으로 처음 출발하는 해에 좋은 결실을 맺었다. 성남 시민구단의 발전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순위가 내려올 팀이 아닌데 여러 요인 때문에 내려와 있다"고 리그에서의 부진한 성적을 설명한 김 감독은 "경기는 못 이겨도 내용은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내가 오늘 경기에서는 '내가 서울을 어떻게 잡는지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선수들이 나를 믿고, 나도 선수들을 믿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활짝 웃었다.
성남은 FA컵 우승으로 기업구단에 비해 재정적으로 열악한 시민구단이지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게 됐다. 선수 구성이 제한적인 시민구단에는 재정적 출혈이 큰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김학범 감독의 뜻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