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땅콩 회항’ 사건 조사에서 대한항공의 꼼수에 농락당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건의 결정적 증인인 일등석 승객으로부터 국토부에 전화번호 등 인적사항을 전달해도 좋다는 동의를 지난 12일 구해놓고도 실제 국토부에 통보한 시점은 3일 뒤인 15일이었다.
그나마 국토부는 대한항공이 이메일로만 보내고 별도의 통보는 하지 않는 바람에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국토부는 결국 대한항공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 등 10명만 조사하고 승객들에 대한 조사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지난 16일 대한항공 제재조치 등을 포함한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토부는 “항공사가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지만, 그 시각에 승객들의 명단과 연락처는 국토부 이메일 수신함에서 잠자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국토부가 일등석 승객 외에 일반석 승객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함께 요구해 이를 취합하다 보니 발송 시점이 늦어진 것일 뿐 고의로 늦춘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어느 경우이든지 국토부는 부실 조사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다.
승객들에 대한 조사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대한항공 측에 하루에도 몇 번씩 채근했어야 했고, 그랬다면 최소한 조사결과 발표 하루 전인 15일에는 승객들의 신변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미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해놓고 추가로 승객들을 조사하겠다고 하는 코미디는 없었을 것이다.
회사 측의 회유와 강압으로 기장과 승무원들 내부에서도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제3자인 승객들의 증언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이런 상식이 무시된 것이다.
일등석 승객이 지난 13일 검찰에 출석해 조현아 씨의 기내 소동에 대해 진술했고 언론 인터뷰까지 했는데도 누구 하나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도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당장 대한항공에 연락해 '검찰에 출석한 일등석 승객은 도대체 누구냐'고 따져 물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국토부가 대한항공에 휘둘려 조사를 편파적으로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은 또 있다.
국토부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 격인 박창진 사무장을 조사하며 대한항공 임원들을 동석시킨 사실이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서도 처음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다 참여연대가 구체적 정황을 제시하자 19분 정도는 동석시킨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국토부의 조사 결과에 공정성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내부 감찰은 물론 검찰 수사를 요구했다.
국토부는 또 지난 12일 조현아 씨를 김포공항 인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불러 조사할 당시 대한항공 임직원들에 밀려 현장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엄연히 정부기관 사무실인데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직원이 나서 여자 화장실 청소를 다시 시키는가 하면 언론의 취재활동을 일부 제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