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넘어서라' 9일 막을 내린 피겨종합선수권대회에서 선수가 아닌 시상자로 나선 '피겨 여왕' 김연아(왼쪽)와 여자 싱글에서 나란히 1~3위를 차지한 박소연(오른쪽 위부터), 최다빈, 안소현.(사진=박종민 기자)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제 69회 종합선수권대회)이 열린 9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 이날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 관심을 모은 여자 싱글에서는 박소연(18 · 신목고)과 최다빈(15 · 강일중), 안소현(14 · 목일중) 등이 1~3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이른바 '김연아 키즈'다. '피겨 여왕' 김연아(24)의 영향을 받아 피겨에 입문했거나 우상으로 삼아 더욱 정진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김해진(18 · 과천고)을 비롯해 더 어린 김예림(양정초), 유영(문원초) 등도 마찬가지다.
수상자들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란히 김연아를 언급했다. 지난해 소치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데다 같은 소속사(올댓스포츠)인 박소연은 "연아 언니가 지도해준 것을 떠올렸더니 한결 연기를 부드럽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연아처럼 초등학교 시절 3회전 점프 5가지를 완성했다는 최다빈도 "연아 언니가 보는 앞에서 연기를 펼쳐 영광이었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안소현은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소치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썼던 '아디오스 노니노'를 사용해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날 김연아는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고 시상자로도 나섰다. 피겨 복장 대신 말끔한 정장 차림의 김연아에 2000여 관중석에서는 오히려 선수들의 경기 때보다 더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시상하는 김연아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반대편 객석의 팬들이 뛰어와 몰리기도 했다.
▲"김연아 따라하기 넘어 개성을 찾아야"
최다빈과 박소연, 안소현 등 9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입상자들이 김재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피겨 여왕 김연아(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등 시상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모두 김연아가 한국 피겨에 미친 광대한 영향력을 실감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피겨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천부적인 재능과 초인적인 노력으로 세계신기록과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값진 결실을 안겼고,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김연아는 한국 피겨의 커다란 우산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유망주들이 자라날 수 있도록 거센 비바람과 폭양을 막아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김연아의 손을 붙들고 박소연과 김해진은 올림픽이라는 최고의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김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출전권을 따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김연아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현역에서 은퇴한 김연아 이후 한국 피겨를 이끌어갈 인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김연아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야 가능한 일일 수 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방상아 SBS 해설위원은 "3회전 점프 등 유망주들의 기술은 세계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좋아졌다"면서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선수만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며 다소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연아를 롤모델로 삼는 것까지는 좋으나 기술과 연기가 천편일률로 비슷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선수의 상황에 맞게 개성과 연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방 위원은 "(신체 조건부터 타고난) 김연아처럼 되기는 쉽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그렇다면 자신에 맞는 프로그램과 표현력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연아는 이날 시상식에서 "후배들이 국제대회에서 밀리지 않을 실력을 갖춘 것 같아 기대가 된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김연아 키즈들이 한국 피겨를 가꾸고 키워갈 또 하나의 우산을 펴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