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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선동은 했지만 내란음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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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기, 내란선동은 했지만 내란음모는 없었다"

    RO 실재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 부족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이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2일 내란음모·내란선동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지난 2013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이 이 전 의원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 압수수색으로 촉발된 이른바 '혁명조직RO'사건은 1년 4개월여만에 사법적 절차를 마무리짓게 됐다.

    대법원 판단은 표면적으로 서울고법의 항소심 판결을 확정짓는 것이었지만 핵심쟁점에서 서너명의 소수의견이 제시되는 등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법리공방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석기 전 의원 등이 이른바 RO회합에서 한 발언이나 행동이 내란선동과 내란음모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법원의 최종 선고가 내려지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으로 이 전 의원이 들어오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 '내란선동' 쟁점: 국헌문란의 목적성이 있는지와 실제 내란선동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법관들은 이 전 의원 등의 행위가 '내란선동'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피고인들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는지와 RO회합에서 피고인들의 발언들이 내란의 실제행위인 '폭동'에 해당하는지를 따졌다.

    이 전 의원 등에게 폭력행위를 통한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는지 부분에 대해 다수의 대법관들은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RO회합에서 발언은 회합참석자 130여명 이상이 조직적으로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선전전·정보전 등 다양한 수단을 실행하기 위한 행위이고 이같은 행위는 내란죄 성립에 필요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전 의원이 이같은 폭동을 하는 이유로 "한반도 내 전쟁 발발시 미 제국주의의 지배질서를 무너뜨리고 통일과 민족 자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국헌문란의 목적성'도 인정된다고 봤다.

    법리적으로 어떤 행위가 '내란 선동'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정치사상이나 원리를 옹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란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폭력적인 행위를 선동해야만 한다.

    하지만 선동은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법리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선동의 내용이 구체성을 띌 필요는 없다.

    대법관 대다수는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상태가 아닌 점을 감안할 때 이 전 의원 등의 발언이 전쟁 상황을 전제한 것이었다 해도 내란의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선동행위는 선동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해지고 그 이후 선동에 따른 범죄의 결의 여부 및 그 내용은 선동자의 지배영역을 벗어나 피선동자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다고 봤다. 즉, 선동의 실현 여부와는 별개로 선동 행위 자체만으로 유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따라서 "선동에 따라 피선동자가 내란의 실행행위로 나아갈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돼야만 내란선동의 위험성이 있다고 할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은 내란선동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폭동의 주요부분인 시기, 대상, 수단 및 방법, 역할분담 등 윤곽이 어느 정도 특정되야 하는데 이 전 의원 등의 발언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이같은 요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이 전 의원의 선동이 '폭동'에 해당한다 가정하더라도 당시 회합 참석자들과 이 전 의원 사이의 관계등을 감안하면 실제적인 폭동의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으로 들어 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내란음모' 쟁점: RO의 실체와 RO회합 참석자들이 내란 실행을 합의했는지 여부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해서는 검찰이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혁명조직 RO'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문제의 RO회합 참석자들이 이 전 의원등과 구체적인 내란 실행을 합의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다.

    'RO'의 실재 여부에 대해서 다수의 대법관들은 'RO'라는 조직이 실체가 있고 회합에 참석한 130여명이 이같은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제보자의 진술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고, 회합참석자 130여 명이 RO조직에 언제 가입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RO가 존재하고 RO회합의 참석자들이 "RO의 구성원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내란음모'가 실재했는지에 대한 판단에서는 이른바 RO회합 참석자들이 내란에 합의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내란음모가 성립하려면 개별 범죄행위에 관한 세부적인 합의가 있을 필요는 없으나, 공격의 대상과 목표가 설정되어 있고, 그 밖의 실행계획에 있어서 주요 사항의 윤곽을 공통적으로 인식할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합의"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따라서 RO회합이 1회적인 토론의 정도를 넘어 내란의 실행행위로 가겠다는 의사합치에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막연한 합의나 단순한 의견교환까지 범죄실행의 합의가 있는 것으로 봐 음모죄가 성립하다고 한다면 음모죄의 성립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돼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음모죄의 성럽범위도 이런 확대해석의 위험성을 고려해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RO회합 참석자들이 사전에 내란을 모의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으며 회합 참석 이후에도 구체적으로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을 실행하기 위한 추가 논의를 했다거나 준비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재판부는 봤다.

    이에 대해 신영철, 민일영, 고영한, 김창석 대법관은 "내란음모죄의 성립에 있어서 반드시 구체적인 공격의 대상과 목표, 방법 등이 설정되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며 소수 의견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회합 참석자들이 전쟁 발발시 북한에 동조해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폭동으로 나아간다는데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기 때문에 내란 실행행위로 나아갈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 RO 실체·내란 실체성에 물음표…헌재 정당해산 결정 논란 커질듯

    이번 대법원 판결의 쟁점을 살펴보면 이 전 의원등의 국헌문란 목적성과 내란의도는 인정하면서도 내란음모가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는 의문부호를 달았다.

    내란선동 혐의를 인정한 것도 '내란선동'은 구체적인 계획과 실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RO조직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심은 가지만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쟁점사안에 대한 대법원의 이같은 판단은 지난해 말 나온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RELNEWS:right}

    당시 헌재는 "이석기가 경기동부연합의 수장으로서 지위 및 사건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옹호 및 비호 태도 등을 종합해보면 이 회합은 피청구인의 활동으로 귀속된다"며 이석기 전 의원의 활동을 통합진보당의 활동과 동일시 했다.

    하지만 내란음모의 현실성과 RO조직의 실체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헌재가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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