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내 이름은 386…욕망 잃은 꼰대 되느니 벼랑 끝으로"

문화 일반

    "내 이름은 386…욕망 잃은 꼰대 되느니 벼랑 끝으로"

    [청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下> 작가 정유정

    이 시대 청년들에게는 왜 비상구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한국 사회 2030세대의 처지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인간관계와 집 장만을 추가로 접은 '오포세대'로까지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지금 '우리'라는 변혁의 힘을 잊은 채 '개인'이라는 파편에 머물고 있다.

    강도 높은 경쟁 사회에 순응할 것을 강요받으면서, 갈수록 자기 안에 고립되는 탓은 아닐까. 이미 청년 시절을 보낸 기성세대가 "우리 땐 더 힘들었다"는 꾸지람 섞인 조언을 넘어, 후배들의 상처를 다독일 공감의 말을 건넬 수는 없는 것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벌인 두 차례의 닮은꼴 인터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작가 정유정이 최근 서울 서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이 시대 청년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과 세상에 '왜?'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종민 기자)

     

    자기 삶이 없는 청춘…"내 20대는 '어둠'이었다"
    '내 심장을 쏴라' 분투하는 청춘에 위로와 격려
    기성세대, '꼰대근성' 버리고 청년들 이해해야"
    "원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우자"
    '왜?'라는 물음이 낳는 욕망, 실천으로 이어져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49)은 오롯이 타인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의 20대 시절을 '어둠'에 비유했다.

    "20대에 간호사로 일했어요. 대학을 마치고 1년쯤 됐을 때 어머니는 간암으로 제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3년 반 정도 투병하셨죠. 가세는 기울고 밑으로 동생들은 줄줄이 있고…. '나는 언제 내 인생을 살까'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하루는 짬을 내 찾은 극장에서 '길버트 그레이프'(1994)라는 영화를 보는데, 젊은 나이에 가장 역할을 하는 주인공의 처지가 자신과 너무 비슷해서 통곡을 했단다.

    "저는 스스로를 강하다고 여겨 왔죠. 눈물도 잘 흘리지 않는데…. 그때 가장 간절했던 건 제 등 한 번 두드려 줄 사람이었어요. 너무 힘들어 울고 싶을 때 그런 사람만 옆에 있다면 어둠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을 테니까요."

    정유정이 2009년 발표한, 정신병원에서 만난 스물다섯 동갑내기 두 청춘의 끈임없는 도전을 담은 소설 '내 심장을 쏴라'의 머리글에 '분투하는 청춘에게 바친다'라고 적은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그는 자신의 글이 어둠 속 청년들의 등을 토닥이는 위로와 격려의 손길로 다가가기를 바랐단다. 28일 개봉한,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동명의 영화에도 이 짦지만 강렬하고 따뜻한 문장은 그대로 쓰였다.

    최근 서울 서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정유정은 "흔히 말하는 '꼰대'로 살지 않으려 애쓴다"고 했다. 이는 자신이 속한, 정치 민주화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 온 386세대가 기성세대의 부조리한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데 대한 자성이요 분노로 다가왔다.

    "갈수록 사회가 분절되고 세대 갈등도 심해지고 있어 염려스러워요. 청년 세대 가운데 소위 말하는 '루저층'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분노가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압축적으로 드러나고 있잖아요. 기성세대가 '우리 땐 더 힘들었다'는 꼰대 근성을 버리고 청년들을 이해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특히 청년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왜?'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물음에서 욕망이 생기고, 그 욕망을 동력 삼아 결국 행동까지 이어지는 까닭이다.

    ▶ 영화 내 심장을 쏴라, 어떻게 봤나.

    = 제가 소설을 통해 던지고 싶었던 물음은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로 압축된다. 저는 '침몰'에 소설 전체 분량의 3분의 2를, '무엇을'에 나머지를 할애했다.

    영화로 옮겨진다면 소설의 비율로 가기는 힘들 거라 봤다. 관객들이 지쳐서 나가떨어질 테니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침몰' 분량을 최대한 압축하고 '무엇을'에 방점을 찍은 모습이더라. 그 과정에서 소설 속에서 가지로 뻗어나간 이야기는 과감하게 생략됐다.

    재밌었다. 욕심을 낼 법도 했을 텐데 절제와 균형이 돋보이더라. 원작자로서 마음이 놓였다.

    ▶ 영화에도 그대로 쓰인 '분투하는 청춘에게 바친다'는 머리글이 인상적이다.

    = 제가 20대 때 간호사로 일했다. 대학 졸업하고 1년쯤 지났을 때 어머니는 제가 일하던 병원에서 간암으로 3년 반 정도 투병하셨다. 당시 어린 동생들이 줄줄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기대는 분이셨는데, 절망감에 빠져 계셨다. 그렇게 저의 20대는 오롯이 가장 역할에 바쳐졌다. 막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어둠뿐인 청춘 안에서 '나는 언제 내 인생을 살까'라는 생각을 했다. 현실을 박차고 나가려 하면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투병으로 가세는 점점 기울고, 동생 하나는 유학을 가 있느니 돈을 벌어야 했다. 밖에서 커피 한 잔 사서 먹을 수 없었다.

    하루는 극장에서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면서 주인공의 처지가 저와 너무 비슷해 통곡을 했다. 그때 든 생각이 '이렇게 힘들어서 울고 싶을 때 누군가 내 옆에서 등을 두드려 준다면 어둠을 견뎌낼 힘을 얻을 텐데'였다.

    내 심장을 쏴라는 이러한 제 청춘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러한 청춘을 저만 보낸 것은 아니다. 청춘을 평온하게 보내는 청춘은 없을 테니 말이다. 제 소설이 청춘들의 등을 토닥이면서 "금방 끝날 테니 조금만 더 분투하라'는 의미로 다가가길 바랐다.

    ▶ 작품의 무대인 정신병원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으로 읽히더라.

    = 억압적인 사회 체제를 나타낸 알레고리다. 그래서 병원을 예쁘게 그린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분위기가 음산하다. 제 작품이, 마찬가지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켄 키지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알레고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사실이니까.

    '내 심장을 쏴라'의 소설 표지(왼쪽)와 영화 포스터.

     

    ▶ 집필에 앞서 실제로 정신병원을 취재했다고 들었는데.

    = 문을 열어 주지 않아 힘들었다. 제가 전업 작가로 나서기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일했는데, 그때 함께 일한 선배의 주선으로 폐쇄병동에서 일주일 동안 환자들과 생활할 수 있었다. 당시 병원 측에 "환자복을 입고 들어가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환자들이 속았다는 생각에 상처받는다. 솔직하게 '당신들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이야기하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사복을 입고 그들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정신병원에서 주는 약은 몹시 독하다. 이를 중화시키는 게 담배인데,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하루에 담배 '디스'를 한 갑씩을 나눠 주는 이유다. 그 말을 듣고 '말보로'를 사갖고 들어가 나눠 준 덕에 환자들로부터 빠르게 신뢰를 얻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주인공인 승민과 수명만 빼고 소설 속 인물들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헤어지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 정문을 나서면서 뒤를 돌아보니 흡연실에 모두 서서 손을 흔드는데 울컥하더라.

    ▶ 그곳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나.

    = 절반 이상이 젊은 친구들이었다. 스물여섯, 스물일곱 살이 대부분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해 들어온 친구는 목소리가 들린다더라. 환청인지 알면서도 저항을 못한다는데,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병원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단다.

    그곳에 있는 청년들은 군대도, 학교도, 직장도 못 다니는 것에 대한 울분과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병동 내부에서 자살 시도가 많은데, 특히 해거름이면 자살 충동이 강해진다더라.

    ▶ 성격이 극과 극인 주인공 수명과 승민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 사실 둘은 한 인물로도 읽을 수 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승민은 소심한 승민의 이상적인 자아다. 이 두 자아가 한 몸 안에서 서로 부딪치고 갈등을 일으킨 끝에 승민의 자아를 갖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수명의 모델은 간호대학 3학년 때 정신과 실습에서 만난 환자다. 당시 실습에서는 간호사, 학생, 환자가 1명씩 들어가 팀으로 활동했다. 한 달 동안 함께 생활한 과정을 과제로 제출하는 4학점짜리 중요한 실습이었다.

    저와 짝이 된 환자는 3선 국회의원의 유폐된 자식이었다. 그는 말을 걸어도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제 눈동자를 보지 않는다. 한 달 동안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가끔 엄마가 찾아와 데리고 나가서 기분을 달랜 뒤 다시 들어오는 식으로 1년을 지냈다더라.

    결국 과제는 제출하지 못했다. 속이 상하면서도 '자아가 얼마나 강하길래' '겹겹이 얼마나 많은 막을 쳤으면 그럴까' '저 사람도 머릿속으로 무언가 생각하는 게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그는 소설 속 수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 청년세대의 현실을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 갈수록 사회가 분절되고 세대 갈등도 심해지고 있어 염려스럽다. 그러다보니 자기를 표출할 수 없는 소위 청년 루저층이 늘어나고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압축된 분노로 드러나고 있다. 제가 속한 386세대가 정치 민주화라는 신념을 품고 살았다면, 지금 청년세대는 개개인의 삶이 피폐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뚜렷한 해답을 내놓을 사람이 없다. 제 세대쯤 되면 '우리 땐 더 힘들었다'는 꼰대 근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청년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청년들 역시 자기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살아가는 것은 결국 자기 몫이다. 그점을 인지하기 바란다.

    요즘 진화심리학 쪽에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들 말하지만, 최소한 자기 인생의 주권은 쥐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던졌을 때 얻는 결과는, 그것이 실패이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다. 청년들이 자기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봤으면 한다.

    물론 지금 청년들의 삶은 그러는 것조차 힘들 만큼 팍팍할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자기 삶을 살려면 스스로 행동과 결정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갈구해야만 한다.

    ▶ 예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어떻게 다가오나.

    = 저희 때도 졸업하면 취직해서 먹고 살 걱정이 컸다. 다만 상고 나와 은행 들어가는 식으로 전문성은 있었던 듯하다.

    지금은 청소부를 지원하더라도 대학을 나와야 한다. 학벌이 필요한 직업이 아닌데도 학벌을 요구한다. 직업을 선택할 때는 자기 욕망과 행동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함에도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을 쌓으려는 노력이 절대적인 것이 됐다. 말 그대로 학벌 사회인 셈이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새벽 7시에 집을 나서 밤 12시가 돼야 들어오는 생활을 시작한다더라. 우리 시절에는 그대로 사복 입고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보러 다니고, 음악다방에 가서 낭만을 즐길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요새 학생들은 잠시라도 방심해 못 쫓아가면 탈락이다. 이는 결국 양극화로 이어진다. 요새 학교에서는 공부 못하면 사람 취급도 안한다고 하지 않나.

    '어떻게 그렇게 힘들게 사니'라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지금 고등학생으로 태어나지 안은 게 천만다행이다. 지금 시절에 다시 10대로 돌아가라면 사양할 것이다.

    작가 정유정은 "기성세대가 '우리 땐 더 힘들었다'는 꼰대 근성을 버리고 청년들을 이해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제도권 안에서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 자기 꿈을 이루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제 아들 역시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 뒀다. 해커가 되고 싶은데 학교가 안 맞는다더라. 당시 "그 공부를 하려면 대학을 가야 하는데 어찌할 거냐"고 물으니 "검정고시를 보고 일본 오사카공대를 들어가 공부를 하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해보라고 했다.

    남편은 아이가 제도권 교육을 그만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편에게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인생을 사느라 내 인생을 못 살았다"는 말로 결국 설득했고, 아들은 두 달 뒤 검정고시에 합격해 열여섯 살에 일본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1년간 어학 공부를 마치고 결국 자기가 말하던 오사카공대에 들어갔다. 지금은 스무 살이다.

    자식이 원하는 게 있다면 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부모의 용기가 필요하다. 저 역시 학교를 그만두게 한다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오히려 아이 인생을 본인에게 통째로 맡겨두니까 책임감을 갖고 임하더라. 대견할 뿐이다.

    ▶ 이미 청년 시절을 보낸 기성세대가 현재 청년들의 삶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높은데.

    = 느끼고 있다. 말하자면, 발가락 끝 하나 댈 곳 없는 땅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분노가 젊은이들에게 있다. 우리 세대도 똑같았다. 청년 시절 '왜 이런 나라를 만들어서 피를 흘리게 하느냐'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런 불만과 불안이 없던 때는 없다. 각자 부딪히는 문제는 다르더라도 고통의 총량은 비슷하다고 본다.

    결국은 되풀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면 개인들에게 "통째로 네 책임"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내야 한다. 더욱 살벌한 정글이 된 느낌은 있다. 답답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경제적 안정을 위해 급박하게 달려 왔다. 이제는 사회가 개인의 삶을 뒷받침할 때다.

    제가 386세대에 속해 있지만, 우리 세대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아름다웠던 신념을 뒤로 한 채, 우리가 비판했던 기성세대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을 직시하고자 항상 고민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전문가가 와서 하루 종일 파고 들어도 될 법한 사안 같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이제 누가 그 한 걸음을 먼저 떼느냐의 문제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이를 북돋아 주는 사회 시스템이 균형을 이룰 때 청년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는 한 발 떨어져서 청년세대를 지켜봐 주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언덕이 돼야 한다. 결국 관건은 청년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이해와 인내가 아닐까.

    ▶ 그렇다면 본인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지켜 왔나.

    = 과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9년을 일했다. 병원을 상대로 갑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으로 인식될 만큼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일찍부터 결혼하고 집을 사면 전업 작가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기에 집을 사고 회사를 그만 뒀다. 다들 "돈 벌면서 작가하면 되지 않냐. 미쳤다"고 했다.

    제 성격이 뭘 하려면 벼랑 끝에 서야 한다.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으니까. 작가로 나서면 바로 성공하지 못할 건 알고 있었다. 공모전에서 11번째 떨어지니 패배감이 밀려 왔다. 그때 저 자신에게 '왜 글을 쓰고 싶냐'고 물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곧 욕망이다. 제 안에서 그 욕망이 들끓더라.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말이 공모전에서 11번 떨어진 것이지 그때마다 망치로 머리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결국 2007년 12번째 공모에서 청소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등단했다. 당선 발표 날이 됐는데, 통보가 안 오더라. 두려움과 불안을 떨칠 수 없어서 집 청소를 했다. 원래 계획은 우아하게 책을 읽고 있다가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감사하다"며 끊는 거였는데. (웃음)

    화장실 변기를 열심히 닦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아들이 "아니"라며 끊으려는 것을 낚아채 받아보니 당선 통보 전화였다. 소감을 묻길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고는 고무장갑을 벗고 욕실 바닥에 앉아서 엉엉 울었다. 벼랑 끝에서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저는 욕망이 사라지는 순간을 생각하면 두렵다. 욕망이 있는 한 삶의 동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 나중에 인생을 돌아봤을 때 "예스"라고 할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 '왜?'라는 물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 꼰대가 안 되려면 의문은 필수다. '왜'를 알아야 '어떻게'가 나온다. '무엇을'만 갖고는 답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왜라는 물음에서 욕망이 생기고, 그 욕망이 동기로 작용해 행동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왜'라는 물음 자체가 행동하기 위한 동기를 만드는 거니까.

    일생을 비장하게 살자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청년세대는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무거워지면 "손발이 오글거린다"고들 하더라. 그만큼 시각이 좁다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독서량이 줄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사회의 이면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극악무도한 사건을 접했을 때 그 가해자를 욕하는 것은 쉽다. 반면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행위는 그 당시에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타인과 사회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된다. 그런 통찰이 실천을 부르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는 독서와 사유에서 나온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이 점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 결국 행동, 곧 실천이 강조될 수밖에 없겠다.

    = 최근 배우 김의성씨를 보면서 느낀 게 많다. 서울 광화문에서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한 1인 시위를 시작한 그는, 전국 각지에서 손팻말을 들고 쌍용차 해고자들을 응원하는 '굴뚝데이 - 역전의 용자'라는 행동을 SNS 상에서 제안했고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며칠 뒤 쌍용차 노사가 해고자 복직 교섭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행동하는 양심에 감동받는 순간이었다. 배우로서 정치색을 드러내기 힘들었을 텐데, 용기를 낸 것이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