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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각국의 잇따른 금리 인하…한국은?

    섣부른 금리 인하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어

     

    올 들어 세계 주요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통화확장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U, 인도 등 15개 국가에서 기준금리나 양적완화를 단행했고, 중국도 지난 4일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낮추는 방식으로 양적완화에 동참했다. 지급준비율은 은행이 고객 예금의 일정 비율을 중앙은행에 맡기는 제도로 이 비율을 낮추면 통화량이 그만큼 증가한다.

    중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기부양을 위해 머지않아 위안화 절화와 금리인하 조치를 취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마치 경쟁을 벌이듯 금리를 낮추고 양적완화에 나서는 것은 경기부진 때문이다.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지난달 GLI(세계경기선행지표) 증가율은 전년 대비 2.1%로 전월(2.3%)보다 0.2% 포인트 떨어졌다. 2013년12월부터 1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고, 통화량을 늘리는 것은 돈을 풀어서 소비를 진작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또한 자국의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다른 나라 통화에 대한 환율 절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국의 통화확장정책이 무역 상대국 입장에서 보면 환율을 이용한 무역전쟁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우리와 교역량이 많고, 세계경제에서 비중이 큰 중국, EU, 인도 등이 잇따라 통화확장정책에 나서고 있는 사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이런 상황은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을 곤혹스럽게 한다.

    올들어 이주열 한은총재는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추가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데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왔다. 지난해 두차례 금리인하로 금융완화가 확대됐고, 가계부채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기준금리 인하는 없을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국제금융시장 흐름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채권시장 등 금리인하를 원하는 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각국의 확장적 통화정책을 명분으로 금리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 각국의 확장적 통화정책만을 보면 금리인하가 당연해 보이지만 지금 우리 경제를 둘러싼 변수들은 고려하면 결코 그렇게 단순히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게부채 문제다. 한은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9월말 현재 가계부채는 1천60조3천억원으로 6월말보다 22조원 증가했다. 분기 증가폭으로는 2007년 이후 최대다. 기준금리 인하에 DTI(총부채상환비율), LTV(담보인증비율) 완화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다.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등을 고려하면 4분기에도 가계 부채는 큰 폭으로 늘었다.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 전반에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준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자칫 시한폭탄의 뇌관을 건드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주열 총재가 지난달 22일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기준금리를 인하한 지난해 10월 이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커져 금융안정 리스크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을 만큼 가계부채 가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 관계자들도 설령 기준금리를 인하할 필요가 생기더라도 가계부채 문제에 걸려 운신의 폭이 좁다고 말한다. 해외에서도 우리금융시장의 가장 큰 잠재적 위험으로 단연 가계부채 문제를 꼽는다.

    또한, 금리인하는 경기부양에도 별로 도움이 안된다. 즉 투자나 가계부채로 인해 수요진작으로도 연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해 8월과 10월 두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했음에도 4분기 성장률이 0.4%에 그친 것은 하나의 시사점으로 볼 수 있다.

    실물경제에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차가 있는 만큼 좀 더 두고볼 필요는 있겠지만 지금의 경기흐름에서 가시적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금리 인하 주장을 하는 쪽에서조차 경기부양을 그 이유로 제시하는 경우는 확연히 줄었다.

    한은이 통화확장정책에 쉽게 뛰어들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환율을 낮추어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 수는 있지만 실제 그 효과는 커지 않은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해 11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환율과 통화정책 간의 관계를 언급하며 "환율이 급변했을 때 물가나 경기 쪽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금리 정책을 하는 것이지 환율 수준을 타겟팅(표적) 해서 금리정책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환율 방어를 목표로 금리정책을 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간과해선 안될 점이 통화정책의 여력을 가급적 아껴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현행 2%인 기준금리는 거의 제로 금리에 가깝다. 물론 국제 유가 하락으로 올들어 물가상승률이 더 낮아지면서 인플레 측면에서만 보면 추가 인하의 여력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미 두차례 금리를 인하했고, 올들어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더욱 증대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여력을 비축해 두는 것이 위기 대응 능력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가계부채, 세수부족에 따른 재정악화의 위험 속에서 무리한 금리인하를 추진할 경우 일본식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결국 한은으로서는 섣불리 금리를 인하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데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어떤 결정을 하든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와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자기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 시장의 안정과 통화당국의 위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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