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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500승에도 무덤덤했던 유재학 울린 동영상

    '뭐 이런 걸 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15일 SK와 홈 경기에서 승리하며 역대 최초 개인 통산 500승을 달성한 뒤 기념 유니폼을 전달받자 황송한 표정을 짓고 있다.(울산=KBL)

     

    '2014-2015 KCC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서울 SK의 시즌 6차전이 열린 15일 울산 동천체육관. 정규리그 우승의 향방이 갈릴 수 있는 1, 2위 맞대결이었다. 특히 유재학 모비스 감독의 역대 최초 정규리그 500승이 걸린 중요한 일전이었다.

    하지만 경기 전 유 감독은 대기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전날까지 통산 499승을 올린 유 감독은 500승에 대해 "감독을 오래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유 감독은 지난 1998-1999시즌 대우(현 전자랜드) 지휘봉을 맡은 뒤 2004-05시즌 모비스로 옮겨와 지금까지 17시즌 동안 사령탑을 맡고 있다.

    그것보다 유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유 감독은 "만약 오늘 지면 우승이 힘들 수도 있다"면서 "정규리그 1위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비스는 전날까지 1위였지만 SK에 1.5경기, 3위 원주 동부에 2경기 차로 쫓기고 있었다.

    상대 문경은 SK 감독도 이날 경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문 감독은 "만약 이기면 1위 싸움을 할 수 있지만 지면 3위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 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반 승부는 팽팽했다. 1쿼터 SK가 23-22, 1점 차로 앞섰지만 2쿼터 모비스가 40-35로 뒤집었다. 3쿼터에 승부가 갈렸다. 모비스가 양동근(22점 6리바운드 5도움)의 활약으로 58-45까지 앞서면서 승기를 잡았다. 70-60, 모비스의 승리. 여기에 유재학 감독의 통산 500승도 자연스럽게 달성됐다.

    경기 후 경기장 대형 스크린에서는 유 감독의 대기록 달성 관련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예전 대우 시절부터 모비스 우승까지 17년 세월이 담겼다. 현 모비스 주장 양동근을 비롯해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도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감독님, 저는 빼먹다니 서운해요' 2006-07시즌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첫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던 크리스 윌리엄스(오른쪽)와 크리스 버지스.(자료사진=KBL)

     

    특히 예전 모비스에서 뛰었던 역전의 용사들도 나왔다. 2006-07시즌 유 감독의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끈 우지원 SBS 스포츠 해설위원을 비롯해 크리스 윌리엄스, 2009-10시즌 정상의 주역 브라이언 던스톤이다. 이들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자 모비스 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사실 경기 전 유 감독은 가장 기억 나는 외국인 선수로 이들을 꼽은 바 있다. 우승을 안겨준 조력자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축하 메시지에 유 감독은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유 감독은 또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와 큰 여운이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첫 마디가 "오늘 이겼지만 LG, 동부 등 센 팀과 경기가 남았다"였다. 이어 "오늘 쉽지 않은 경기를 예상했는데 부감감을 극복해줘서 남은 경기와 플레이오프에서도 자신감이 반영될 것 같다"고 향후 일정을 언급했다.

    500승 소감을 묻자 그제서야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스럽다"면서 "여기까지 올 줄 생각도 못 했는데 굉장히 운이 좋은 남자"라고 건조하게 말했다. 대기록에도 다소 무심한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욕심이 있어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었다. 유 감독은 "200승, 300승 했을 때 기사를 보니 몇 년 사령탑을 했는지, 승률이 어떤지 나왔는데 되게 창피했다"고 털어놨다. "300승을 했지만 오래해서 이긴 거였고, 승률은 별로 좋지 않았다"면서 "창피했고, 그나마 모비스에 와서 승률이 좋아져 5할을 넘겼다"고 설명했다.

    '감독님, 저 잘 배워 갔어요' 2009-10시즌 모비스의 우승을 견인한 브라이언 던스톤. 이후 유럽 리그를 주름잡는 선수로 자라났다.(자료사진=KBL)

     

    그런 유 감독이었지만 축하 영상 얘기가 나오자 달라졌다. 특히 윌리엄스와 던스톤이 출연한 데 대해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치 생활까지) 19시즌을 하면서 많은 용병과 지냈는데 (이 둘은) 개인적으로 내가 고맙다고 하고 싶은 선수"라면서 "팀을 위해 헌신하고 녹아든 선수였다"고 칭찬했다. 이어 "구단에서 아이디어를 잘 냈다"고 칭찬했다.

    윌리엄스는 유 감독에게 우승을 안긴 주역이다. 05-06시즌 평균 25.4점 10리바운드 7.2도움으로 정규리그 정상을 이끈 윌리엄스는 이듬 시즌 22.9점 8.2리바운드 5.6도움으로 챔프전 우승까지 견인했다. 던스톤도 08-09시즌 평균 18.3점 10.6리바운드 3블록슛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 시즌 1.49점 8.1리바운드 2.2블록슛으로 챔프전 우승을 견인했다.

    유 감독으로서는 애틋한 선수들이다. 35살의 윌리엄스는 이후 중국과 터키, 이란 리그를 거쳤고 올 시즌에는 쉬면서 사실상 은퇴에 접어든 상황이다. 던스톤은 09-10시즌 이후 타국 리그로 진출했고, 올림피아코스 소속으로 유로리그를 주름잡고 있다.

    모비스가 500승에 맞춰 이들에게 연락했고, 휴대전화로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모비스 관계자는 "던스톤은 지금도 모비스에서 많이 배운 게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를 한다"고 귀띔했다.

    '고생했어' 유재학 감독이 리카르도 라틀리프를 격려하는 모습.(자료사진=KBL)

     

    사실 KBL 감독과 외국인 선수는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다. 성적과 순위를 결정할 핵심 선수인 만큼 잘 하면 감독에게 사랑을 받지만 못 하면 미움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현재 KBL 제도상 외국인은 한 팀에 3시즌만 뛸 수밖에 없다. 신뢰 관계가 구축돼도 오래갈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유 감독의 500승을 축하하기 위해 이역만리의 두 외인들이 기꺼이 나선 것이다. 유 감독의 인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경기 전 유 감독은 장수의 비결로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 등과 인간 관계"라고 꼽은 바 있다.


    (유재학 감독 KBL 최초 500승 달성 기념 영상 (출처-모비스 구단)
    ☞유재학 감독 KBL 최초 500승 달성 기념 영상 보러가기

    현재 모비스에서 뛰고 있는 리카르도 라틀리프 역시 마찬가지다. 2012-2013시즌 데뷔한 라틀리프는 갓 대학을 졸업한 햇병아리였지만 유 감독의 조련 속에 KBL 최고 외인으로 거듭났다. 라틀리프는 유 감독에 대해 "위대한 감독"이라고 짧지만 굵은 답변을 내놨다. 17시즌째 사령탑과 500승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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