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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영화계는 퉁퉁 불어터진 국수 꼴

    [변상욱의 기자수첩]사전검열의 시대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박재홍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자료사진/ 황진환기자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났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잔치는 그렇다 치고 우리 영화계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시쳇말로 ‘돈 되는 영화’만 틀어주고 있다. 영화를 보긴 보는데 늘 할리우드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 낸 우리 영화만 잔뜩 걸려 있다. 외국인들이 묻는 ‘왜 한국 영화관에는 미국 영화랑 한국 영화만 상영하는가?’라는 질문이 우리 영화계를 설명한다.

    우리에게 문제의식을 일깨우고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독립영화.예술영화들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외면당한 채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와 그 아류들이 판치는 영화시장이니 독립예술영화와 이 영화들을 상영하는 전용관들은 우리 문화의 다양성과 시대성을 지키는 보루인 셈이다.

    배곯으며 만들고, 돈 못 벌어 빚을 지며 상영하지만 소중한 우리 문화의 한 장르이다. 그런데 영화진흥위원회가 나서서 독립예술영화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어 문제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원하는 사업과 다양성영화의 극장개봉 지원 사업을 통폐합 해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지원 사업’을 펼치겠다며 기회를 보고 있다. 간추려 이야기하자면 줄거리는 이러하다.

    ◇ 영화가 기가 막혀 예술이 기가 막혀

    영화진흥위원회가 사업자를 골라 독립예술영화 우수작 선정을 위탁한다. 그 사업자가 26편의 영화를 골라내면 그 영화들은 전국 30개 스크린에서 의무적으로 상영한다. 예술영화관과 지역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각각 1주일에 2일이나 1일간 26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영화진흥위는 좌석점유율 15%에 해당하는 금액을 극장과 배급사에 지원한다. 이 모든 절차는 위탁업자가 담당한다. 이런 사업의 배경은 독립예술영화에 관객이 더 많이 모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이 사업으로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과 독립예술영화에 관객이 모일 거라고 기대하는 영화인은 만나기 어렵다. 영화진흥위 방식대로 하면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편성될 수밖에 없다. 다양성이 되레 위축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또 중간유통업자가 고르려면 수익을 생각해 고를 것이고 영화진흥위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고르게 될 것이다.

    독립예술영화는 시대비판과 실험정신이 배어 있고 이런 가치를 인정해 모여드는 관객에 의해 나름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이를 무시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그리고 그 뒤에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정부가 규제위주의 정책을 내놓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정책들의 결과는 독립예술영화계가 기관과 관권에 종속되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작품이라면 개봉 및 상영 기회가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맞서 저마다의 차별화된 철학과 운영방식을 수립해 작품을 골라 상영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진흥위가 위탁한 업자의 작품선정대로라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고 특색 있는 기획 영화전도 어려워진다. 그나마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는 관객마저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결국 이야기는 하나로 모아진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만든 영화가 정부나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게 껄끄럽고 기분 나쁘니 규제와 감시 장치를 만드는 것이라는 의혹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문제가 될 때부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꺼림직 하던 바로 그것이다. 공적 지원을 정부 돈 받아 하는 정부 용역사업처럼 인식하는 것은 정말 유치하다. 그런 의식으로 KBS, MBC라는 공영방송을 휘잡아 다루더니 이제 독립예술영화에까지 찬바람이 분다.

    관권과 금권의 갑질에 의해 팽 당하고 있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예측은 보다 뚜렷해진다. 한 젊은이의 제주 강정마을 여행을 담은 영화 '미라클 여행기'는 돈 내고 영화관 빌려서 하는 언론시사회까지 거부당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 故 황유미 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약속’은 대관 요청과 광고 집행까지 거부당하다 시민단체가 나서 공정위원회에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신고까지 해야 했다.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고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소수의견’도 완성된 지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언제 상영될지 아무도 모른다. 독립예술영화는 그 특성상 입맛대로 골라 지원하지 말고 지원규모가 적더라도 두루 고르게 지원해 다양성과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 기관과 업자의 코드에 맞추는 게 아니라 주류에 저항하며 새 시대를 준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 국가를 선동하고 국민을 검열한다

    문제는 또 있다. 영화제의 사전 검열이다. 영화는 상영되기 전 영화등급위원회의 등급판정을 받는다. 예외적으로 영화제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상업적 영화관에 내걸려 관객을 모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상 영화제 기간 중엔 상영등급을 면제받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등급 면제를 추천해 등급판정을 면제받고 상영해도 영화제를 꾸려 가기란 시간적으로 늘 벅차다. 그런데 영화진흥위원회가 면제 추천을 거부하면서 등급심사를 모두 거치라고 한다. 과거에 영화제 작품들에 대한 등급판정은 문제도 많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커 사실상 철폐된 정책이다.

    이 규제를 되살려내겠다니 독립예술영화나 기획된 영화제에 대해 몰라도 이리 모를 수 있는가 싶다. 그러다보니 대학교 영화학과의 졸업 영화제가 가장 먼저 등급 심의판정에 막혀 버렸다. 그것도 영화진흥위윈회 산하에 있는 영화아카데미에서 졸업영화제를 열려던 것이 그리 됐다.

    등급 규정을 바꾸려는 중이니 기다리라고 해 영화제가 연기돼 버렸다. 우리나라에서 열릴 숱한 영화제들이 모두 지구촌 각국의 영화작품들을 일찌감치 모아다 기관에 체출하고, 등급심사를 받고자 줄을 서 기다리고, 판정이 오래 걸리고, 판정으로 불허되는 작품들이 생겨날 때 온전히 치러지는 국제영화제는 몇 개나 될지 알 수 없다.

    모든 영화제 출품작들에 대한 기관의 사전판정을 국제 영화계가 어찌 볼 지 그 반응도 걱정이다. 이대로 추진한다면 영화진흥이 아니라 영화진압에 다를 바 없는 조치가 된다. 이렇게 가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도 헛되고, 영화를 자유롭게 관람할 국민의 권리도 반토막이 나려는 게 우리 영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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