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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영화진흥위원회인가, 진상위원회인가?

칼럼

    [시론]영화진흥위원회인가, 진상위원회인가?

    베를린영화제 단편경쟁부문 금곰상에 부쳐

     

    나영길 감독의 단편영화 '호산나'가 지난 2월 15일에 폐막한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단편부문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영화가 단편 금곰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11년 박찬욱·박찬경 형제 감독의 '파란만장' 이후 두 번째입니다.

    32살 나영길 감독은 신학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 작품으로 25분짜리 단편을 완성했습니다. 다분히 예수의 생애와 죽음이 연상되는 호산나라는 제목의 이 처녀작은 성적 표현과 폭력 수위가 높아 관객들의 호불호는 갈렸지만 인간의 삶과 죽음, 구원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심사위원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지난 2월 7일에 폐막한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도 초청된 이 작품은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입증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호산나'는 지난해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 상영된 이후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고, 동시에 클레르몽페랑의 국제경쟁 부문에도 초청되었기에 월드 프리미어도 인터네셔널 프리미어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를린은 '호산나'에게 경쟁부문 최고상을 주면서 그 작품성을 인정했습니다. 이례적인 극찬이자 한국영화에 대한 헌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영화인들의 헌신이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가운데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해괴한 일들로 뒤통수를 치려고 했습니다. 영화제 상영작에 대한 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를 개정하겠다고 했다가 오해라면서 수습하는 코메디를 연출한 것입니다.

    등급분류면제추천제도는 영화제 출품작에 대해서는 극장 상영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등급분류를 면제해 주는 제도입니다.

    영화제의 콘셉트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표현도 수용하는 축제인 영화제에서 주최 측에서 추천을 하면 등급분류심의를 면제해 주는 이 제도는 무척이나 중요한 제도입니다.

    정식 수입을 거쳐서는 개봉할 수 없을 영화도 영화제에서는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제도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진위에서는 정부, 지자체가 주최·주관·지원·후원하는 영화제 등의 경우 심의를 통과해야 상영할 수 있는 쪽으로 바꾸려 한 것입니다. 사실상 영화제 상영작의 사전심의를 해 내겠다는 것입니다.

    영진위는 또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에서도 심사를 통해 인정한 영화만 상영해야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변경하겠답니다. 4월부터 시행 예정인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 개편안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지원 사업'은 1년 동안 한국 예술영화 26편과 이를 상영할 스크린 35개를 정하고, 정해진 회차 만큼 상영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입니다. 이런 방안들이 시행될 경우, 폭력과 성적 표현이 가득한 '호산나'는 과연 관객을 만날 수나 있겠습니까?

    영화진흥위원회는 어떻게 지원하고 북돋워야 영화가 진흥될 것인지를 고민하고, 영화인들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기관입니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작품만 영화제에 상영하려는 꼼수를 고민하는 곳이 아닙니다. 진흥을 하라하니 진상을 부린다면, 아예 기관이 없는 것이 낫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것이 정부 문화정책의 기본이라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이야기하고 다니는 전문가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말로만 '문화의 시대'를 외치며 실제로는 ‘문맹의 시대’를 만드는 그 진상짓들을 당장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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