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훈아, 나처럼 당하진 말아야지' 올 시즌 KBO 리그는 타자에 대한 스피드업 규정으로 개막 전부터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시범 경기 개막전에서 스피드업 규정 위반으로 삼진을 당한 LG 이진영(가운데)와 당시 바뀐 규정으로 탈삼진을 추가한 한화 투수 탈보트(오른쪽)의 역투 장면.(자료사진=LG, 한화)
시범 경기부터 구름 관중이 몰려 겨우내 식지 않은 인기를 과시한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단순히 선수들의 플레이뿐만 아니라 경기 규칙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다름아닌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한 스피드업 규정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역대 최장을 찍은 경기 시간(평균 3시간 27분)을 줄이기 위해 5가지 규정을 신설, 적용하기로 했다. 투수 교체시간과 타자 등장 시 배경 음악 시간 단축, 사사구 시 뛰어서 출루, 감독의 판정 항의 시 수석코치 동행 금지 등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타자에 대한 강제 조항이다. 배경 음악이 끝나기 전에 타석에 들어서지 않거나 들어선 이후 두 발이 모두 배터 박스에서 벗어나면 자동으로 스트라이크를 추가하는 부분이다. 이미 지난 7일 개막 이후 진행된 10경기에서 7번이나 나왔다.
여기에 당한 선수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LG 이진영은 "소련 야구인 줄 알았다"고 혀를 내두르면서 "승부에 영향을 많이 미칠 텐데 9회말 2사에서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어떻겠나"라고 반문했다.
▲"타석 신경 쓰다 투수와 승부 놓칠라"제재 방법을 떠나 이 규정은 일단 타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타자들이 투수와 상대할 때 갖는 일상적인 준비 동작, 이른바 루틴에 균열이 생겨 실제 승부도 자칫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재를 당한 앞선 두 선수를 비롯해 한화 김태균 등 적잖은 선수들이 투수와 승부 중 투구와 투구 사이에 타석을 벗어난다. 팽팽한 긴장감을 덜고 심호흡을 하고 다음 공을 예측하는 등 집중력을 키우기 위한 동작이다. 이게 원천적으로 막힌다면 타자들은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상대 투수와 승부가 제대로 될지에 대한 우려다. 한화 김경언은 "원래 타석 밖에 나가는데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면서 "여기에 신경 쓰느라 투수와 승부를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김성근 한화, 양상문 LG, 염경엽 넥센 등 감독들도 스트라이크가 아닌 다른 쪽으로 제재를 가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스피드업 규정, 이대론 안 돼' 김성근 한화(오른쪽), 양상문 LG 감독이 지난 주말 시범 경기에서 취재진을 상대로 의견을 밝히는 모습.(자료사진=한화, LG)
때문에 이번 스피드업 규정은 지난해 기승을 부린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에 대한 반대급부 차원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시간이 길어져 경기가 늘어지는 데는 난타 당하는 투수들도 한몫을 했기 때문인데 타자들을 조이면 자연스럽게 타고투저와 경기 시간 문제도 다소 해결될 수 있는 까닭이다.
KBO도 이같은 배경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KBO 관계자는 "이번 규정 개정이 타고투저 문제와 관련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고 밝혔다. 스피드업 규정이 경기 시간 단축이라는 대명제를 추구하지만 투수들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도 타고투저? 지켜봐야 한다
사실 KBO는 점차 떨어지고 있는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해 화끈한 타격전에 대한 장치를 마련했다. 스트라이크존 축소가 대표적이다. (공인구의 반발 계수에 대한 말들도 많았다.) 홈런과 안타가 양산됐지만 궁지에 몰린 투수들이 나가떨어져 핸드볼 스코어가 속출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과유불급, 점수가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경기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잖았다. KBO는 부랴부랴 후반기 스트라이크존을 소폭 조정, 방망이의 열기를 식혔다. KBO 관계자는 "전반기에는 사실 심판들이 타이트하게 볼 판정을 했지만 후반기는 융통성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난 안 당했지롱' 한화 김태균(가운데) 역시 지난 주말 LG와 시범 경기에서 투수와 상대하던 중 두 발이 타석 밖으로 나왔지만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사진은 7일 적시타를 때려낸 뒤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자료사진=한화)
올 시즌은 반대다. 지난해의 정점을 찍은 타자들의 여세가 있는 데다 신생팀 케이티의 가세로 역대 최다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일정이라 투수들의 과부하가 예상된다. 때문에 경기의 긴장감과 재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수들의 역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스피드업 규정이 강화된 또 하나의 이유다.
KBO는 이와 함께 스트라이크존을 지난해에 비해 위쪽으로 공 반 개 정도 높여 적용할 것을 검토 중이다. KBO 관계자는 "사실 10년 전만 해도 투수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 돼 스피드업 논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감독들이 '삼진 상황에서 볼넷이 남발된다'고 한숨을 내쉴 정도로 리그 전체적으로 제구력과 결정구가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타고의 장려와 투저에 대한 올 시즌 배려, 어쨌든 프로야구의 재미를 더하고 팬들을 모으기 위한 고심 끝에 나온 방안들이다. 과연 올해 KBO 리그의 투타 판도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