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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박해민-구자욱, 너희들이 삼성의 미래다

    [임종률의 스포츠레터]

    '우리, 제법 잘 어울려요?' 지난해 삼성의 히트 상품 박해민(왼쪽)과 올해 기대주 구자욱이 29일 SK와 경기를 앞두고 올 시즌 선전을 다짐하며 포즈를 취한 모습.(대구=임종률 기자)

     

    지난 주말 프로야구가 긴 겨울잠을 깨고 기지개를 켰습니다.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10개 팀이 화창한 날씨 속에 열전을 벌이며 7개월 간 대장정의 막을 열어젖혔습니다.

    저 역시 공식 개막전이 열린 대구로 내려와 주말을 보냈습니다. 4년 연속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KS)를 제패한 삼성과 삼성 이전 최강팀으로 군림했던 SK의 2연전이었습니다. 모처럼 본격적인 야구의 재미와 긴장감을 만끽한 선수, 팬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대구구장 뒤편 벌써 피어난 벚꽃과 푸른 빛이 완연한 주변 가로수들도 좋았지만 그라운드에서 푸릇푸릇 싹을 틔운 신인급 선수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삼성의 미래로 꼽히는 박해민(23)과 구자욱(22)입니다.

    박해민은 지난해 삼성의 히트 상품이었고, 구자욱은 2015년형 히트 기대주입니다. 둘 모두 호타준족을 자랑하는 선수들. 이제 막 사냥을 시작해 고기의 맛을 알게 된 아기 사자들입니다.

    지난해 박해민은 군 입대한 배영섭과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정형식의 공백을 말끔하게 메워준 선수입니다. 119경기 타율 2할9푼7리 65득점 36도루 31타점 1홈런과 안정적인 외야 수비로 삼성의 통합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2012년 신고 선수로 입단해 1군 무대까지 감격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특히 넥센과 KS에서는 부상 투혼까지 펼쳤습니다. 2차전에서 도루를 시도하다 왼손 약지 인대가 50% 이상 손상되는 부상에도 3차전 1루 대주자로 나와 천금의 질주를 펼쳤습니다. 8회 2사에서 후속 타자의 평범한 뜬공이 나왔음에도 전력질주했고, 상대 실책성 수비로 안타가 되면서 동점 득점을 올렸습니다. 류중일 감독이 "보통 그 상황이면 슬슬 뛰는데 전력으로 뛰어 어려운 득점을 올렸다"고 칭찬했을 정도입니다.

    '왼손가락이 4개뿐?'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왼손 약지 인대 손상 부상을 입은 박해민(왼쪽)은 5차전에서 벙어리 장갑을 키고 대주자로 나와 천금의 동점 득점(오른쪽)을 올렸다.(자료사진=박종민 기자)

     

    구자욱은 어쩌면 2015년판 박해민으로 부를 만합니다. 물론 박해민보다는 상대적으로 순탄한 길을 걸어온 듯 보입니다. 구자욱은 박해민과 같은 2012년 2라운드 12순위, 계약금 1억3000만 원을 받고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구자욱도 3년 동안 2군에서만 구슬땀을 흘리며 기량을 갈고 닦았습니다. 지난해 상무에서 뛴 퓨처스리그에서 75경기 타율 3할5푼7리 48타점과 득점, 27도루 3홈런을 기록했고, 비로소 올해에야 1군 기회를 얻었습니다. 삼성 구단이 '트레이드 불가' 선언을 할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지난 주말 개막전은 둘 모두에게 생애 첫 경험이었습니다. 2013년 1군에서 단 1경기에 나선 박해민은 지난해도 4월12일에야 1군으로 올라와 개막전은 치르지 못했습니다. 28일 SK와 개막전은 구자욱에게는 심지어 1군 공식 경기 데뷔전이었습니다.

    가슴 떨렸던 순간입니다. 박해민은 "지난해 1군에서 많이 뛰었지만 개막전은 처음이었다"면서 "설렜고, 짜릿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날 박해민은 7번 중견수로 나와 3타수 2안타 2득점 1볼넷 2도루로 펄펄 날며 생애 첫 개막전을 의미있게 치렀습니다. 2회 볼넷과 도루로 상대 선발 밴와트를 흔들었고, 이지영의 적시타 때 선제 결승 득점을 올렸습니다.

    구자욱도 기억에 남을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2-0으로 앞선 3회 1사 2, 3루에서 생애 첫 안타를 2타점 쐐기 2루타로 장식했습니다. 5타수 1안타 2타점, 수비도 실책이 1개 있었지만 까다로운 타구를 여러 개 잡아내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경기 전 "잠은 푹 잤지만 설렌다"던 구자욱은 경기 후 "첫 안타가 나와서 기분은 좋았지만 나머지 타석이 아쉽고 아까웠고, 실책은 부끄러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데뷔 첫 안타의 순간' 삼성 구자욱은 28일 SK와 개막전이자 자신의 1군 데뷔전에 앞서 설렘 속에 필승을 다짐했고(오른쪽), 이날 3회 데뷔 첫 안타를 2타점 2루타로 장식하며(오른쪽) 팀 승리를 이끌었다.(자료사진=임종률 기자, 삼성 라이온즈)

     

    어쨌든 둘은 선제 득점과 쐐기 타점을 올리며 팀의 개막전 6-1 낙승에 힘을 보탰습니다. 류 감독은 "구자욱의 중요한 2타점이 초반 경기 흐름에 도움이 됐다"고 칭찬했습니다.

    2차전에서도 나름 활약을 이었습니다. 박해민은 3타수 1안타 1득점, 구자욱은 2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두 차례 출루해 도루까지 해냈습니다. 팀은 3-7로 졌지만 두 꿈나무들에게는 잊지 못할 개막 2연전이었습니다.

    특히 구자욱은 2회 첫 타석이 아쉬웠습니다. 상대 선발 윤희상과 11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좌익수 파울 플라이로 잡혔는데 앞서 데뷔 첫 홈런이 나올 뻔했기 때문입니다.

    작심하고 당긴 타구는 파울 폴대 바깥으로 살짝 휘어져 나갔습니다. 구자욱은 경기 후 "맞는 순간 넘어간다고 직감했는데 폴대 안으로 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곱씹었습니다.

    '이제는 1군에서 수상할 겁니다' 릭 밴덴헐크, 김상수, 안현호 단장, 박해민, 구자욱(왼쪽부터) 등 삼성 선수단이 지난해 MVP, 최우수 신인 및 각 부문별 시상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한 모습.(자료사진=삼성)

     

    하지만 둘은 얄궂게도 서로 경쟁을 해야 할 처지입니다. 현재는 주전 1루수 채태인의 재활로 구자욱이 선발 출전하고 있지만 언제 밀려날지 모릅니다. 한 달여 뒤쯤 채태인이 복귀하면 구자욱은 아마도 박해민과 외야 한 자리를 다퉈야 할 겁니다.

    이에 대한 둘의 생각은 어떨까요? '박힌 돌' 박해민은 "사실 자욱이가 최근 잘 하고 주목을 받으면서 신경이 쓰였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기량은 물론 스타성을 갖춘 구자욱의 성장이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는 까닭입니다. 더욱이 박해민은 일단 지난해는 훌륭하게 보냈지만 기량이 이어질지 검증이 아직 덜 끝난 상황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경기에만 신경을 쓰겠다는 각오입니다. 박해민은 "신경을 쓰면 나만 손해"라면서 "내가 내 실력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해민은 올해 목표에 대해 "내 역할은 많이 출루하고 도루해서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만약 출루만 많이 할 수 있다면 도루왕도 노려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굴러온 돌(?)' 구자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자욱은 "해민이 형이 워낙 잘 해준다"면서 "솔직히 둘 다 잘 됐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올해 목표는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가는 것"이라며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습니다.

    대구에서 만난 삼성의 한 열성팬은 "나는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 등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의아해서 물어보니 이 팬은 "이 친구들은 이미 자랄 대로 자란 선수들"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어 "박해민, 구자욱이 훨씬 좋다"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클지, 삼성의 미래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올 시즌 아기 사자들이 펼칠 호타와 질주, 그리고 선의의 경쟁. 이들이 서로 부딪혀 가며 성장해갈수록 삼성도 더욱 강해질 겁니다. 올해 삼성 팬들은 여러 차례 외칠 겁니다. "박해민-구자욱, 너희들이 삼성의 미래다!"

    '사진은 정말 각도가 중요하다' 29일 SK와 경기를 앞두고 박해민(왼쪽)과 구자욱이 포즈를 취한 모습. 다른 각도에서 찍으니 조금 앞에 있는 박해민의 얼굴이 상대적으로 더 커보인다. 기사 맨 앞의 사진과는 차이가 적잖다.(대구=임종률 기자)

     

    p.s-29일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박해민과 문답하던 도중 구자욱이 지나가길래 불러 세웠습니다.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둘의 모습을 사진에 한번 담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박해민이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짓더군요. "자욱이, 네 옆에 서면 내가 오징어가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어 "자욱이, 네가 앞에 서라"며 한사코 뒤쪽으로 자리를 잡으려 했습니다. 구자욱은 189cm, 75kg의 휜칠한 몸매에 연예인급 외모를 갖췄습니다. 180cm, 75kg의 박해민도 작은 체구는 아니지만 구자욱 옆에 서니 일반인이 되는 모양새였습니다.

    결국 구자욱이 한 계단 아래에 서자 키가 엇비슷해졌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성장할지 실력에 있어서 그들이 펼쳐낼 키재기의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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