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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기록단 "직장인 된 언론인 안타까워"

    [문화연예 세월호 기획③]이승구 PD "기억할 수 없는 건 기록해야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문화·예술·언론·연예계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이 '세월호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계속)

    416기록단 이승구 PD. (유연석 기자)

     

    지난달 29일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천막 주변. 만연한 봄기운을 느끼며 시내를 거니는 인파 사이에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노란 피켓들이 가득하다.

    사람, 천막, 피켓 등으로 복잡한 이 틈바구니에 한 남성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세월호 인양 촉구 서명지에 서명하는 사람들을 촬영하던 그는 세월호 실종자인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어머니 박은미 씨를 발견하더니 카메라를 내린 채 재빨리 좇아간다.

    서로를 발견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부여잡는다. 이어 다윤 아버지 허흥환 씨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고 광화문 광장을 걷는다. 그렇게 2~3분을 얘기 나누더니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승구 PD. (유연석 기자)

     

    카메라를 든 이는 이승구 PD. 그를 포함해 총 6명의 독립 PD가 '416기록단'이라는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부터 지금까지 세월호 가족(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기성 언론이 팽목항을 떠나던 그 순간에도 416기록단은 팽목항을 지켰고, 이제는 '가족'이라 불릴 정도로 그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지난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기까지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에도 세월호 가족 곁을 지키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416기록단의 이승구 PD를 만났다.

    416기록단 이승구 PD. (유연석 기자)

     

    ◇ 세월호 가족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된 카메라

    "띵동", "띵동" 인터뷰를 위해 만난 순간에도 그의 휴대전화에선 시종일관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다른 PD들하고 계속 상황을 공유해야 해서." 바쁠 건 예상했지만 만난 지 20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이야기 하나 못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문자를 계속 주고받던 이 PD는 결국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러 나갔다. 결국 덩그러니 남은 나는 그의 촬영 장비만 10여 분을 쳐다봐야 했다. '파나XX 루믹스 DMC - GH3'. 생각보다 왜소한 장비라 의아했다. 그의 장비를 카메라로 찍던 중 그가 돌아왔다.

    ▶ 이 카메라가 촬영 장비인가요.
    = 예. 사실 세월호 가족 분들이 카메라를 피하세요. 이 분들은 금방 어떤 일이 생기면 언론사에서 와서 계속 묻거든요.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강요당하는 거예요. 가족들 곁에서 보니까 카메라가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지만 어떤 때는 폭력이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나마 이 장비는 방송 카메라 같이 안 생겨서 덜 불편하신 것 같아요.

    ▶ 416기록단은 몇 분이, 어떻게 활동하시나요.
    = 박봉남, 이승구, 한경수, 박정남, 임유철, 서재권. 이렇게 한국독립PD협회 정회원 6명이 '416기록단'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사고 초기 진도 현장에서부터 현재 광화문까지를 기록하고 있죠. 가족대책위에서 진행하는 공식적인 활동 위주로요. 특히 진도 체육관에서 수색 종료 이후 실종자 가족들을 좇으며 그들의 삶과 처한 환경들을 기록 중입니다.

    ▶ 그러면 6명이 전부 뿔뿔히 흩어져 촬영 중인건가요.
    = 초기에는 상황이 많았잖아요. 진도 체육관, 안산 분향소, 바지선과 다이빙벨, 서울서 진행되는 추모집회, 그리고 유가족들이 전국 각지를 돌며 받았던 서명운동 등. 각각의 위치에서 기록을 했어요. 그러다 6월쯤부터 포지션을 나눠서 하기로 했죠. 지금 3명은 <뉴스타파>하고 세월호 1주기에 맞춰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고요.

    ◇ "언론이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어. 네가 국민에게 진실을 전해줘"

    416기록단 이승구PD가 다윤 아빠 허흥환 씨를 인터뷰 중이다. (유연석 기자)

     

    ▶ 왜 세월호 사고를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됐나요.
    = 세월호 사고 다음 날 새벽 5시쯤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자기가 지금 팽목항인데, 조카가 세월호 안에서 아직 구조되지 못했다고. 그런데 '언론이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조명탄 몇 발 터트려 놨을 뿐인데, 조명탄 수백 발 발사, 잠수사 수백 명 투입, 항공기와 배 몇 대 등 대대적으로 구조 작전에 돌입했다는데 순 거짓말이다. 여기서 보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 네가 PD니까 와서 국민들에게 진실을 전해달라'는 거였죠. 그 친구가 독립 PD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했겠죠.

    진도에서 며칠 기록을 하던 박봉남 선배에게 연락이 왔어요. 세월호 사건을 우리가 기록하면 어떻겠느냐. 어느 방송사에서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제작 지원도 없으니 우리가 직접 제작비를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 있을 거라면서, 그래도 하겠느냐고 묻더라고요. 하겠다고 했죠. 누군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제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6명이 모였죠.

    ▶ 세월호 가족들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서 촬영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 카메라 자체를 싫어하시더라고요. 카메라만 들면 어느 언론사냐, 왜 찍느냐 등. 사고 초기에는 방송 카메라도 박살나고 기자들도 혼쭐이 났죠.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되게 조심스러웠어요.

    우선 제 친구 조카가 사고를 당했으니까 그 부모님을 만났죠. 독립 PD라 얘기하고 그 반 부모님들이 전체 모여서 얘기할 때 가서 소개를 했죠. "저는 독립 PD입니다. 지금까지 대구 지하철 화재, 중국 쓰촨 성 지진, 연평도 포격 사건, 태안 기름 유출 등 온갖 재난을 취재해서 '재난 PD'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제가 세월호 사고를 편협적인 시각이 아닌 사실적으로 기록하겠다"고 설명 드렸죠.

    그렇게 거기서 며칠 묵으며 천천히 관계가 좋아졌어요. 나중에는 옆에 와서 자라 할 정도로 신뢰도 쌓이고, 그렇게 진도 체육관에서 수색 종료가 된 7개월을 보냈어요.

    진도에서 촬영 중인 이승구 PD. (이승구 PD 제공 사진)

     

    ▶ 각자 생활도 있었을 텐데, 계속 진도에 계신 건가요.
    =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잖아요. 제작비 문제도 있고, 자기 삶도 있고, 개인이 자기 생활비를 벌어가며 기록해야 하는 부분이라 아르바이트도 하러 가야하고. 제가 3일 빠져야 하면 다른 PD가 3일 와서 머물며 기록하곤 했어요.

    그런데 실종자 가족들 입장에서는 PD들 얼굴이 바뀌니까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실종자 가족 대표께서 “PD들 얼굴이 자주 바뀌는 것 같은데, 한 분만 계시면 좋겠다”. 그러자 팀에서는 제가 가족과 가장 오래 있었으니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고, 저도 가족과 친분을 맺어놨으니 하겠다고 했죠. 길어야 2개월이면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7개월이 된 거죠. 그리고 아직도 해결이 안 된 상황이고요.

    ◇ "1년만 찍겠다고 했는데, 2년은 더 해야 할 것 같아"

    ▶ 이렇게 오래 기록을 하실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 이 상황(진상규명, 인양 작업 등)이 이렇게 오래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고요. 재난 현장을 주로 취재하다 보니까 우리 정부가 하는 방법 같은 게 비슷한 것 같아요. 재난이 일어나면 어느 확실한 지휘 체계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주무부처가 다 다른 거예요. 서로 책임이 다르다 보니 떠넘기는 그림이 보이더라고요.

    세월호 사고가 너무 큰 참사고, 안전 불감증 문제부터 풀리지 않는 의혹도 많고 하니까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5년에서 7년 정도 보고 있어요. 그래서 세월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사고 시점부터 딱 1년만 찍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주변에서 '1년씩이나?' 이러는 거예요. 제가 경험도 많고 하니까 1년은 쉽게 간다고 했죠. 하지만 그전까지는 방송국에서 했던 작업이라 생활에는 어려움 없었는데,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겠죠.

    416기록단 이승구 PD. (유연석 기자)

     

    ▶ 이 PD님도 가족이 계실 거 아니에요. 가족들에게 미안할 것 같은데.
    = 미안하죠. 그런데 제가 그랬어요. 1년이라는 기한을 뒀는데, 1년으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앞으로 2년은 더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1년은 여기에 올인했다 치면, 앞으로 2년은 한 50% 정도 집중하고, 나머지 50%는 저도 살아야죠. 반 정도의 힘으로 앞으로 2년은 세월호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여러 여건이 돼야겠죠.

    ▶ 제작비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 시작할 때 돈이 없다 보니까 박봉남 PD가 자신이 다음 번 다큐를 하기 위해 모아 놓은 제작비 1800만 원을 시드 머니로 사용하게 됐어요. 참 고맙죠, 그런 선배가 있다는 것도 자랑스럽고.

    그리고 이번에 416기록단에 있는 모든 PD가 저에게 있어서 참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이런 경우가 없거든요. 한국 방송 사상 PD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자기 비용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게, 아마 없을 거예요.

    ▶ 모금이라도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모금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모금은 쉬우나 명확히 어떤 영향력을 가진 돈이 우리에게 흘러왔는지 알 수 없다. 모금으로 인해서 역으로 우리에게 화살이 될 수 있다. 또 세월호를 기록한다는 목적으로 모금했을 때 우리의 순수했던 마음이 그대로 있을까. 돈 문제로 생기는 불상사도 많고, 결국 돈이 지배하는 세상 때문에 모금은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봐요.

    PD연합회 PD 중에 마음이라도 같이 하고픈 분들도 있고, 미안해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분들이 PD연합회 통해 모금해주신 건 받았어요. 어떤 돈인지 알기 때문에. 그런데 모르는 단체, 사람들, 시민단체가 감정에 의해 주려는 건 우려하고 있어요.

    만약 정말 제작비가 부족해서 기록물을 만들기 어려울 때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모두의 동의하에 그분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하자고 우리끼리는 얘기했어요. 이건 정말 최후의 방법이에요. 가족들의 허락이 없으면 안 할 거예요. 그래서 돈이 부족하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우리 비용으로 해야죠.

    ◇ "직장인이 된 언론인 안타까워"

    416기록단 이승구PD. (유연석 기자)

     

    ▶ 최근에 언론인권상 특별상을 수상하셨던데.
    = 사고 100일 정도 됐을 때 '416기록단'과 <뉴스타파>가 '세월호 참사 100일 특집방송 -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를 제작했거든요. 저희가 채널이 없다보니까 대안 언론 <뉴스타파>가 채널 역할을 해주고 서로 합작을 했죠.그게 신청도 안 했는데 특별상을 받았어요. 심사위원들께서 추천을 해주셔서 만장일치로 선정됐다고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그 상이 부담되더라고요. 세월호의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가족들은 아직도 4월 16일을 살고 있는데, 상 자체가 기뻤다기보다 마음이 무거웠어요. 솔직히 PD가 언론인권상을 받는 일이 평생에 몇 번 있겠어요. 앞으로 평생 받지 못할 상일 수도 있는데. 그런 상을 받게 돼서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지만, 어쩌면 너희들 끝까지 잘해라 이런 상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심사평에도 "기존 방송 매체가 알려야 할 것을 축소하거나 왜곡하거나 사실상 (언론이) 죽은 상황에서 대안 언론인 <뉴스타파>와 '416기록단'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 같다며 상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는데 받았다는 생각이 드니까, 국민이 생각하기에 언론이 제 기능을 얼마나 못했나 싶기도 하고. 우리보다 뛰어난 방송인들도 많은데 세월호를 기록했다는 것만으로 받았다는 게 마음이 무겁기만 하죠.

    ▶ 동료 PD나 기자, 그리고 언론인들에게도 하시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 한 어머니가 저에게 그러시는데 '원래 그러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뭐가요?’ 그랬더니, 팽목항에서 봤는데 모 방송사 기자가 정박된 배에서 배를 흔들며 리포트를 하더라는 거예요. 저게 뭔가 싶었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 파도가 심해서 배가 흔들린다는 장면을 연출한 거죠. 나중에 그 기자 쫓아냈대요. 왜곡 방송했다고.

    민주화 이후에 언론이 자유화 되면서, 그래도 광우병 때까지만 해도 PD나 기자들이나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직장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하니까 그러겠죠. 물론 투철하게 사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바른 말을 하고 진실을 전하려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거죠.

    지금 PD나 기자들 보면 파업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요. 파업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잖아요. 그래서 조심하는 거겠죠.

    ◇ "기록, 그 자체가 진실"

    세월호 실종자 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좌)와 인터뷰를 마친 뒤 그의 어깨를 감싸안고 걷고 있는 416기록단 이승구 PD(우) .

     

    ▶ 세월호 1주기에 맞춰 나오는 결과물이 있나요.
    = 아뇨. 우선 <뉴스타파>하고 합작 중인 것 외에는. 그런데 1년을 기점으로 기록한 상황들을, 하나의 기록 다큐로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꼭 이번 4월 16일에 나올 건 아니고요.

    ▶ 지금 하시는 이 기록들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 저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은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종자 가족들 보면 이야기하시다가 시간 지나면 기억을 잘 못하세요. 그래서 꼭 말씀하세요, 이 PD가 잘 좀 기록해 달라고. 자기는 시간이 지나니까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다는 거예요. 매일 같이 4월 16일을 살다보니 언제 자기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도 가족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제가 더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 의미에서 기록 그 자체가 진실인 거죠. 사고의 진실을 밝힌다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이분들의 삶의 진실이 어땠는지를 기록하는 거죠.

    또 이런 참사의 기록들은 보통 사고 당시만 기록돼 있지, 가족들에 대한 게 없어요. 그래서 이분들이 허락하는 한 계속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국가적인 기록물에 좋은 기록도 있고 숨기고픈 기록도 있겠지만, 이건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기록물이 될 거라고 봐요. 또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후배들이나 어린 친구들이 세월호 얘기는 들었지만 잘 모를 거 아니에요. 20년 전에 큰 배가 침몰해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까지만 알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기록은 계속 돼야 합니다.

    ▶ 정부를 향해서도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은데.
    = 이 기록을 하는 목적이 정부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고 참사의 사실을 기록하려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가족 곁에서만 기록을 하니까 우려하세요. 좌우 비중 있게 다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우리는 일어나는 현장 그대로만을, 개입하지 않고 담담하게 담고 있어요. 억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유가족만 좋게 하려고 만드는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세월호라고 하면 이념으로 보시는 분들 많은데, 만약 그분의 부모님이나 자녀가 죽었다고 생각해봐요. 의혹이 풀리지 않고 4월 16일이 그대로라면, '이제 지쳤다, 그만하자'는 식의 말을 하는 건 제2의 폭력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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