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마음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에서 학술세미나 '세월호 참사와 문화연구'가 열린 이유입니다. 한국언론학회와 언론과사회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이 자리에서 발표된, 1주기를 앞둔 세월호 참사를 바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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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주기 앞둔 '세월호 참사' 왜 해결은 커녕 논쟁만 격해질까
② "세월호 참사 경유해 온 '대학'은 이윤추구 '공장'"
③ "세월호 참사에 '공분'했던 여론…'양분'된 이유 있다"
④ 왜 잊히나, 끝까지 세월호 승객 구하다 목숨 잃은 노동자들
⑤ "세월호 수업 때는 '영포자' '수포자'도 안 졸아"(끝)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인양을 촉구하며 열린 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참가자들이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학술세미나 '세월호 참사와 문화연구'에서 발표된 네 가지 주제는 '문화연구'라는 학문이 거리 현장의 목소리와 어떻게 결합할지를 깊이 고민한 데 따른 결과물이다. '실천' 없는 '구호'는 공허한 법이다. 이 자리의 마지막을 장식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현장 목소리를 듣는 원탁회의 역시 구호를 실천으로 꽃피우려는 시도였다.
원용진 서강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영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 정책국장,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박성훈 JTBC 기자가 토론을 벌인 원탁회의를 기록했다.
원용진 교수(이하 사회자):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학생들은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진영효 국장: 엄청난 상처를 받았던 교사들은 아이들이 상처받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정작 학생들은 어떤 문제인지를 잘 몰라 상처가 덜하더군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세월호 참사의 실체를 알려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 이유입니다.
사회자: 기자들은 어땠나요?
박성훈 기자: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시스템의 문제로 바라봤습니다. 참사가 일어나고 진도 팽목항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수색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팽목항 부두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은 해역까지는 배로 30여 분이 걸립니다. 거리가 꽤 먼 만큼 첫날 대대적인 수색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부의 공식적인 말을 듣고 보도를 했죠.
그런데 취재를 진행할수록 어디서부터 문제라고 얘기할 수조차 없었어요. 사고 다음날 희생자 가족이 된 한 아버지께서 "수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하면서 문제가 촉발됐죠. 배가 가라앉은 뒤 72시간이 골든타임인데, 그 시간대에 수색을 벌인 해경이나 해군, 잠수인력은 100여 명이 채 안 됐어요. 결국 그때 정부는 선체에 공기를 넣어서 부양시키는 작업만 했던 거죠.
사회자: 기자들은 시스템 문제로 접근했다는데, 교사들은 어땠나요?
진영효 국장: 교사들 역시 왜곡된 정보, 잘못된 뉴스로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죠. 교사들이라고 모두 균질적이지는 않습니다. 미디어에서 하는 말과 다른 경로로 이야기를 접했던 교사들은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전교조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게 지난해 희생자 가족들이 청와대에 가서 따지겠다며 철야행진을 했을 때죠. 막연하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간다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싶었죠. 그래서 그 다음 주에 전교조에서 실명으로 대통령 퇴진 선언을 하고, 조합원 100여 명이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걷는 여정 등을 통해 가족들로부터 얘기를 많이 들으려 애썼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인양을 촉구하며 열린 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참가자들이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사회자: 세월호 집회 현장 등을 다니면서 영상을 만드시는 입장에서 전규찬 교수님은요?
전규찬 교수: 먼저 짧은 영상을 하나 보시죠. (그가 보여 준 영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인 세월호 집회 현장의 풍경과 참가자들의 발언들이 담겨 있다. 영상 속 발언자들은 욕설을 섞어가며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행태를 맹비난한다.)
부조리한 현장에서 유가족들은 더 이상 피해자로만 머물 수 없습니다. 이분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가여운 분들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헛짓하고 딴짓하는 겁니다. 뭘 청취합니까. 욕설을 청취해야죠. 욕설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된 그분들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저분들의 욕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죠.
사회자 : 우리는 참사 이후 세상의 민심이나 태도가 퇴행하는 모습을 봐 왔습니다. 언론이나 학교 현장에서는 느낌이 어땠나요?
박성훈 기자: 참사 1주기 기사를 준비하기 시작한 게 한 달 반 전입니다. 분량이 두 시간 반인데, 사람들이 지닌 세월호에 대한 식상함, 기시감 때문에 분량이 점점 줄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진영효 국장: "잊으라"는 압력은 위로부터 많이 받고 있죠. '학교에서는 노란 리본 배지를 달지 말라는 공문까지 내려왔어요. 한 개인이 자기 몸에 다는 것까지 못하게 하는 나라인 셈이죠.
올해에는 '세월호 추모기간을 전국적으로 가지라'는 공문도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월호 참사의 핵심 문제를 '안전사고'로 바꾸려는 꼼수가 엿보입니다. 학교에서 안전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수업을 하라는 거죠. 교사들 사이에서도 학생들을 두고 보이지 않는 담론 싸움을 해 왔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그 프레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이 사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영상을 만들어내면 엄청난 무기가 되겠죠. 짦지만 강렬한 영상 하나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수업할 수 있으니까요.
사회자: 전규찬 교수님은 어떠십니까?
전규찬 교수: 문화연구는 개인적으로 재미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도 저는 실패라고 봐요. 중간발표 때보다 숫자도 줄고 자기 시간 끝나면 가는데, 세월호 특집 토론을 이렇게 해도 되는지 불쾌합니다.
피해자, 유가족 대책위의 아버님들도 욕을 하세요. 자해를 하기도 하고 상대를 때리기도 해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순수하지 않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순수한 존재로 규정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어요.
저널리스트 미디어몽구는 꾸준히 현장과 밀착해서 주류 바깥에 있는 목소리와 깊이 사고하고 있어요. 미안하지만 JTBC에서는 보기 어려운 점이죠. 그가 만든 영상에 10분 만에 4만 5000명이 붙더군요. 기성 체제를 뒤져 희망을 찾기 어려운데도 1시간짜리 영상을 만들겠다는 소망만 품지 말고, 미디어몽구에게서 배우자는 겁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인양을 촉구하며 열린 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참가자들이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최루액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사회자: 진영효 국장님과 전규찬 교수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세월호 교재를 만들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두시나요?
진영효 국장: 학교 현장에서 참사 1주기를 염두에 둔 수업 지도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이 '왜'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시위 현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이 "가만히 있으라" "이게 나라냐"는 거였죠.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셈이니까요. "우리는 제대로 대접받고 살고 있는가"와 같은 물음은 그 어떤 소재보다 아이들이 현실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왜'라는 방법론을 활용하는 거죠.
전규찬 교수: 칸트에서 푸코로 이어지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돌아볼 수 있는 반성적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가 돌아봐야 할 지점은 '문화연구의 참사'라는 이 지점을 어떤 감각과 정치성으로 공론화할 것이냐죠.
언어, 관점 없는 대학이 지식 생산의 출처로서 제 역할을 못하다보니 공공부문의 구멍, 소위 경고음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구멍이 보이면 "구멍이 있다"고 말을 해야죠. 이 구멍을 하나 하나 발견할 수 있는 언어를 지난 1년 동안 찾아냈어야죠.
사회자: 현재 대학이 만들어내는 지식체계나 담론을 일선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진영효 국장: 전교조에서 제가 맡고 있는 분야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수업을 할지, 교과서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교사로서 학생들도 가르쳐야 하니 일이 무척 많죠.
학교 현장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교육학자가 거의 없어요. 토론회를 하면 매번 보는 사람만 초청하게 되니 말 다했죠. 솔직히 대학에는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하고 말지'라는 마음입니다.
전규찬 교수: 제가 언론개혁시민연대도 맡고 있어요. 언론운동이 미디어 공공성과 저널리즘을 지키는 것인데, 과거에 비해 언론 정책·제도 연구를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활동가 스스로 정책 철학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니 가랑이가 찢어지는 겁니다.
저널리즘의 빈구멍이 큰 상황에서 미디어 공공성을 지키려니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금은 학계도, 언론도 경고음을 못 내는 구조여서 '사태가 반복 가능하다'는 공포를 낳고 있어요.
그나마 연극, 문학하시는 분들의 작업이 눈에 띕니다. 제가 대학로에 사는데 지난 1년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촛불을 밝혔어요. 작가들 역시 집요한 성찰로 체제의 불안을 짚어 주는 글을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사회자: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으로 JTBC가 선정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코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부적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박성훈 기자: 내부적으로는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한국 언론의 구조가 관성화된 부분이 있습니다. 기존 보도를 답습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생생함이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 생긴 언론사이다보니 이 점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전규찬 교수님은 매번 학회를 떠난다고 말하면서 계속 옵니다. (웃음) 제안이나 부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전규찬 교수: 앞서 토론하신 분이 "과연 우리는 세월호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가"라고 했는데 그런 말 안 들어보고, 그런 고민 안해본 사람 없습니다.
"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 입 닥칠 수도 있지만, 문화연구자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이 현장에 동참하도록 하고 현장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이 공동체는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동일한 사람이 시간 차이만 두고 동일한 언어를 말할 때는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사회자: 진영효 국장님, 어떤 간섭과 탄압도 없다면 학교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기억될 세월호는 어떤 모습일까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인양을 촉구하며 열린 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참가자들이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며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진영효 국장: '없다면'이라는 단서를 많이 다셨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런 것이 있다 해도 하렵니다. (웃음)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에게 인간의 죽음뿐 아니라, 이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 줄 수 있는 사건입니다. 세월호만으로도 1년 내내 수업이 가능할 겁니다. 세월호를 통해 우리 교육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던질 겁니다.
사람을 성장시키지 못하는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내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보도록 하고, 토론할 수 있게 도울 겁니다. 이것 하나만 잘 돼도 큰 공부일 테니까요.
사회자: 박성훈 기자는 다른 미디어에 있다가 JTBC로 옮겼는데, 언론사 분위기에 따라 기자로서 본인이 바뀌었다고 보나요?
박성훈 기자: 언론사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회사의 보도 방향이 눈에 보이지 않게 정해집니다. 어느 언론사에 소속됐느냐에 따라 기자의 성향과는 다른 기사가 나오는 묘한 구조, 생리인 거죠.
사회자: 청중 가운데 질문하실 분 계신가요?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젊은이들이 '이민계'까지 들어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한답니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데, 세금 내면서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거니 나무랄 수도 없어요. 이 지점에서 세월호는 학생들에게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교육일 텐데 현장에서는 어떤가요?
진영효 국장: 고등학교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학생)도 많아요. 3학년이 되면 수업 시간에 5명가량만 공부하고 나머지는 잡니다. 중학교는 학교폭력 때문에 힘들어하죠. 아무리 다양한 기법과 수업 자료를 가져와도 안 되는 아이들이 반은 되는 게 한국 학교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수업 시간에는 한 명도 졸지 않고, 영상이 5분이든, 20분이든 집중하더군요. 아이들과의 관계도 굉장히 좋아졌어요. 기본적으로 교사는 학생들에게 '꼰대'로 불립니다. 하지만 세월호 수업을 하고 나서는 아이들이 먼저 와서 자기 느낌을 말합니다.
"세월호? 애들 죽은 거 아냐?"라고 말하던 학생들이 수업 이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랬구나'라는 놀라움을 갖게 되는 듯해요. 제가 보기에 세월호 수업이야 말로 학생들에게 '배웠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사회자: 토론자들께서는 마지막으로 정리 발언을 해 주시죠.
박성훈 기자: 현실에 발을 딛고 분석한 발표들을 들으면서 '밖에서는 이렇게 보고 있구나'라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민의 99%에게 던져야 할 화두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기회였습니다.
전규찬 교수: 어젯밤에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완독했습니다. 굳이 세월호라는 말을 직접 꺼내지 않아도 적절한 포맷으로 대중과 교섭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를 볼 수 있도록 돕는 글쓰기가 있습니다. 여전히 그 지점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반성의 계기를 함께 가져가야 합니다.
진영효 국장: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이론이 아닌 행동이 필요할 때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은 정치적 애도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기보다는 진실을 왜 찾아야 하는지를 전달하고, 많이 모이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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