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에 언급된 정치인들,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이완구 국무총리 (자료사진)
대선자금 수사로 치달을 수도 있는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의 최종 기착지는 어디일까?
일차로는 관련자들의 개인 비리 수사이고 최종 탄착점은 대선자금 수사일 지도 모른다.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일단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의 개인적 금품수수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고 성완종 전 회장의 비서 출신과 자금 담당 임원들을 소환해 성 전 회장의 정치권 금품 로비와 비자금 32억원의 흐름을 추적한다.
8명의 정치인 가운데 가장 먼저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건넸다는 1억원의 실체 규명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돈의 중간 전달자가 있는 등 다른 사안보다 증거가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중간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언론인 출신)이 검찰의 첫 소환 대상자로 꼽힌다.
다음으로는 김기춘,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홍문종 의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물론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이 한꺼번에 수사를 받겠으나 사법처리를 우선시하는 검찰로서는 구속이나 기소를 할 수 있는 대상자부터 먼저 선별할 개연성이 있다.
김기춘 실장이 지난 2006년 받았다는 10만 달러는 정치자금법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로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공소시효가 지났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의 경우 전달받았다는 7억원이 정치자금법으로는 공소시효를 넘겼으나 뇌물수수죄(공소시효 10년)를 적용하면 기소가 가능하다.
문제는 뇌물죄를 적용할 증거 확보다.
검찰이 성 전 회장이 작성했을지도 모를 추가 문건(?)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관련 진술이 나오지 않을 땐 기소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김·허 전 실장의 자백이 있으면 모르되 지금까지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딱 잡아떼고 있는 마당에 자백을 끌어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는 게 뇌물과 정치자금법 수사 관행이다.
故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 (사진=윤성호 기자)
검찰 수사의 두 번째 타깃은 홍문종 의원의 2억 수수설이다.
성 전 회장이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인 홍 의원에게 "대선 조직을 관리하라는 명목으로 현금 2억원을 줬다"고 밝힌 만큼 검찰이 2억원과 관련된 최소한의 물증만 확보하면 홍 의원을 사법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홍문종 의원과 홍준표 경남지사의 사법처리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홍 지사나 홍 의원은 성 전 회장으로부터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으며 검찰 수사에서 시인할 것 같지도 않다.
돈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이 세상을 떴기 때문에 대질신문도 불가능할 뿐더러 전달한 돈과 시점, 장소 등을 특정할 수도 없어 홍 지사와 홍 의원의 자백을 받아내기란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렵다.
돈을 주고 받는 장소 또는 둘의 만남을 지켜본 목격자를 찾아내는 것만이 검찰 수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수사보다 더 어려운 것이 유정복 인천시장(3억)과 서병수 부산시장(2억)의 정치자금법과 뇌물 수사다.
성 전 회장이 메모지에 유 시장과 서 시장에게 각각 3억원과 2억원을 줬다고만 적었을 뿐 시점과 장소, 돈을 전달한 이유를 특정하지 않았다.
유, 서 두 시장이 현재처럼 부인해버리면 수사의 일보도 진척할 수 없다.
더욱이 이름만 거론된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수사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한 법조인은 "이 총리와 이 실장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해서 뭘로 그 사람들을 수사하느냐"며 "성 전 회장과 이들과 관련한 뭐가 나오면 몰라도 현재로선 수사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참으로 어려운 수사다.
성 전 회장이 살아서 진술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부인해버리면 쉽지 않은 수사인데 더 이상 진술도 할 수 없고 추가 물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예견이 벌써부터 검찰 주변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검찰이 수사를 벌이지 않고 버틸 수도 없다.
권력 실세 8명의 이름과 돈 액수가 기록된 '유서같은' 메모지(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지 않는다면 국민적 의혹은 더 증폭될 것이고 자칫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번질 수 있기에 여권으로서도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도, 서청원 최고위원도 이구동성으로 성역 없는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걸로 털어내자는 속셈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바람대로 간단하게 끝날 사안이 아니기에 여권에서는 최소한 한 두 명의 사법처리를 하지 않고서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일단락 짓고 마무리할 수 없다는 견해가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는 김진태 검찰총장의 명예와 함께 검찰의 명운, 더 나아가 정권의 운명이 걸린 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직 검찰 출신 법조인은 "수사 증거란 死者(사자-성 전 회장)의 메모지만 있는데다 권력의 실세들이고 국민과 야당은 벌써 다 잡아넣으라고 요구를 하는, 성과를 내기 참으로 힘든 수사"라고 말했다.
특히 검찰 수사의 종국엔 대선자금 수사로 연결될 개연성도 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초대형 부정부패 사건이며 불법 대선자금 일단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 도입과 대선자금 공세를 펼 게 불을 보듯뻔하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의 후폭퐁은 리스트 등장 인물 8명의 도의적, 정치적 책임과는 별개로 그 이상의 수습 대책을 요구하는 길로 갈 지 모른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어디로 튈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