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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이준우 어머니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경남

    단원고 이준우 어머니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수학여행 가기 싫다던 준우에게 "추억남겨야" 설득해 보내

    -딸 같았던 아들, 떠나기 전 날 밤 시시콜콜 수다

    -4월 3일 준우 생일, 준우 좋아하던 김밥 싸서 나눠먹어

    -동생 태준이 "형이 못탄 개근상 내가 탈거야"

    -"준우야. 지금 벚꽃이 활짝 핀 봄이란다.
    엄마는 늙지 않고 18살 준우의 청춘을 살아갈거야.
    준우야 사랑해. 준우야 많이 사랑해. 보고싶다"

    -같이 아파하고 진상규명에 함께하는 모든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손성경 PD, 이혜인 실습작가 FM 106.9MHz)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팀장)
    ■ 대담 : 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이준우 군 어머니 장순복 씨

     



    김효영 : 단원고등학교 이준우군의 어머니이십니다. 장순복 어머니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나와계십니까?

    장순복 : 네. 안녕하세요.

    김효영 : 아휴.. 저희가 안녕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장순복 : 네. 괜찮습니다.

     

    김효영 : 준우는 몇 반이었습니까?

    장순복 : 준우는 2학년7반이었어요.

    김효영 : 그런데 준우가 수학여행 가기 싫어했다면서요?

    장순복 : 네. 준우가 좀 1학년 때는 1학년 공부할 때 자기주도학습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던 애거든요. 그래서 자기주도학습을 3년 해보고 고등학교 때 그걸 써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그걸 1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해가지고 준우가 2등급까지 받아가지고 나왔어요. 모의고사가. 그래서 2학년 때부터 치고 올라가기 위해서 작전을 폈던건데 1등급을 받아야 되는데 수학여행이 끼어있다고 실망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더 해야되는데 시간이 없다고..

    김효영 : 그런데 어머니께서 보내신거에요?

    장순복 : 네. 아빠랑 같이 상의를 했어요. 그런데 이제 다 좋은데 공부는 또 할수있으니까 다음에 하고 추억이라는건 한번 가는 시절, 고등학교 시절에 저희도 수학여행을 가봐서 아는데 너무 추억이 많이 남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제일 기억에 남더라고 해서 우리 준우도 그런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했거든요. 그래서 등을 떠밀었죠.

    김효영 : 수학여행 가기 전날 준우랑 이야기를 좀 많이 하셨나요?

    장순복 : 네. 저희 준우는 저희 집안의 큰 아들이다보니까 제가 좀 많이 외로워 하니까.. 딸이 없어서 외로워해서 준우가 딸 노릇을 많이 해줬거든요.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다 해줬었어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오늘 뭐 야자 끝나고 시간을 놓쳐서 밥을 못 먹어서 수돗가에 가서 물을 마셨다, 뭐 매점 문 닫을 때 갔더니 지갑이 없다고 핑계를 댔더니 아저씨가 큰 빵을 하나 주더라, 애들이 피곤해 할까봐 창문 너머로 돌멩이를 던졌는데 그게 고3 학생들 교실로 들어갔는데 고3 학생들 몰래 가서 보니까 공부 하느라고 다행히 안들켰다고 그런 이야기.. 참새 잡아 가지고 박스로 참새를 잡아서 애들 공부하고 있는데 날려줬다는 등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줬었어요. 하루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김효영 : 남자애들이 그런 이야기를 잘 안하는데 말이죠.

    장순복 : 엄마가 말하는걸 좋아하고 듣는걸 좋아하고 이제 직장에 다니다보니까.. 딸 둔 엄마들은 되게 이야기를 많이 해줘요. 그러니까 준우가 그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줬었어요. 계속 동화같이.

    김효영 : 준우 동생이 태준이죠?

    장순복 : 네.

    김효영 : 태준이는 지금 몇 살 입니까?

    장순복 : 지금 중학교 3학년이에요.

    김효영 : 태준이도 형 이야기를 지금 많이 합니까?

    장순복 : 최근들어서 했던 것 같아요. 형아는 마음 속에 있는데 자꾸 이런 날이 다가오는 게 싫은거에요. 그래서 오늘도 학교를 안 보내고 할랬는데 형아가 못 다닌 학교 내가 개근상이라도 타서라도 형아 앞에 갖다 준다면서 학교를 또 가더라고요. 난 좀 안갔으면 좋겠는데. 같이 형을 보러갔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이제 드문드문 이야기해요. 자기가. 먹을 것 있으면 형아 사진 앞에 먼저 갖다주면서 '형아가 좋아했던거지?' 이러고. 그 전에는 말을 절대 안했었어요.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니까 좀 미안한 감정이 생긴 것 같아요. 자기도 모르게.

    김효영 : 네... 준우 생일도 지났죠?

     

    장순복 : 네. 준우 생일은 엊그저께 4월3일날 지나갔어요.

    김효영 : 어떻게 보내셨어요?

    장순복 : 그 때 아침에 일찍 김밥을 많이 쌌어요. 준우가 원래 편식이 심했거든요. 178에 몸무게가 50kg 좀 넘었어요.

    김효영 : 말랐네요.

    장순복 : 네. 삐적 말랐는데 손도 길고 발도 길어서 컴퓨터 같은 거는 진짜 3단까지 올라갈 정도로 정자세에서 손가락이 움직일 정도로 아주 잘했었고 준우가 매일 하는 말이 키 크는 방법이 주위에서 뭐냐고 하면 안먹고, 안자고 편식하는 거라고 했거든요. 웃으면서. 그런데 야채를 너무 안 먹다보니까 김밥을 싸면 준우가 그거는 또 맛있게 먹어요. 준우가 제일 좋아하는 게 김밥하고 볶음밥이었어요. 남은 재료로 볶음밥을 해주면 그걸 모르고 또 먹더라고요. 그 날은 아침에 한 2~3시에 일어나서 김밥 한 40줄 싸가지고 부모님들 좀 갖다드리고. 그때 이제 광화문에서 삭발하신 날이었거든요. 거의. 그래가지고 떡이랑 해가지고 광화문에 올려 보내고 그래가지고 준우 덕분에 사람들이 맛있다고 먹고 그랬었어요. 좀 슬픈 날인데 그래도 기쁘게 보냈어요. 의외로.

    김효영 : 잘하셨습니다. 걱정되는게요. 우리 어머니,아버님들 생계는 어떻게 하고 계실까.. 아까 직장다닌다고 하셨잖아요?

    장순복 : 네. 많은 분들이 직장을 많이 못 다니고 계세요. 다녀도 집중을 못한다고 회사에서 안 좋아하고 자주 빠지니까 더.. 일을 못하니까 회사에서 많이 안 좋아하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태준이를 보면서 다녀요. 왜냐하면 태준이가 엄마,아빠가 직장을 안다니니까 나도 형아를 위해서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학교를 안 다녀야되겠다고. 형이 공부를 좀 잘했거든요. 그렇게 잘하는 형아도 갔는데 나 공부 안해도 될 것 같다고 옛날엔 형을 모델로 삼았는데 지금은 롤모델이 없어졌다고 많이 힘들어 하길래 '아,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아침,저녁 패턴을 계속 잡아줬어요.

    그래서 지금도 많이 힘들어요. 제가 6개월을 다녔는데 하루에 한번도 준우를 생각 안한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좀 힘들긴한데 그 작은 월급이나마 태준이 학원도 보내고있고..아 태준이가 학원을 못 다니고 있어요. 왜냐하면 같은 학교 형아 친구들이 다녔었나봐요. 그래서 자꾸 교복 입은 모습이 생각이 나서 지금은 과외를 집에서 시키고 있어요. 혼자. 준우하고 상당히 닮은 어투로 생긴 사람하고 뭐.. 말투같은 것 준우랑 비슷한 사람 골라가지고 과외를 하는데 또 형처럼 잘 따르더라고요. 우리한테 이야기 못하는 뭐 축구 이야기, 만화 이야기를 계속 수업시간에 하는 것 보니까 또 과외를 좀 해야 되니까 계속 직장을 다녀야 될 것 같고.

    그래서 엄마가 일찍 일어나니까 태준이도 그 시간에 일어나서 가고. 그러다보니까.. 생활은 그렇게 하고 있고. 예전엔 준우가 있을 때는 대학 보내려고 등록금 마련 하다보니까 적금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사고가 나고나니까 그런게 의미가 없어져 가지고 그걸 적금 같은 거 깨가지고 생활비로 많이 쓰고 있고 대부분 가족들이 그러는것 같고. 아빠가 일을 알아보고 있는데 조금 지금 일들이 좀 많아요. 제가 직장을 다니다 보니까 같이 부모님들하고 협조를 많이 못 해줘가지고 아빠가 일에 많이 나서고 있거든요. 아빠도 조금 일을 알아보고 있는데 잘 안되는 것 같아요. 해야지,해야지 하면서 다들 넘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에 아빠 일이 좀 잘 되면 같이 해보려고요.

    김효영 : 그래도 우리 태준이 때문에 어머니,아버님이 생활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죠?

    장순복 : 네. 감사하더라고요. 그런데 1년동안 준우만 바라봤지 태준이에 대해서 해준 게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김효영 : 국민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구할 수 있었는데 못 구했다는거에요. 그걸 우리가 지켜만보고 있었단 말이에요.

    장순복 : 네. 저도 그 날 바다만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이렇게 서울에서 연락이 와요. 왜 그렇게 있냐고. 언니 왜 그렇게 있었냐고. 자기들은 그 생방송을 계속 봤대요. 배가 넘어지는걸. 아침에 사고가 났으니까 내가 점심먹고 오면 애들 구해주겠지. 쟤들 수학여행 정말 재밌겠다, 수학여행 가다가 물에서 건지고 정말 좋았겠다.. 이렇게 다 생각을 했대요.

    그런데 나중에 애들이 구할 수 없었단 걸 알고 많이 힘들어했고. 저희 같은 경우도 아빠가 거의 가자마자 우리 갈 때는 천막 밖에 없었어요. 그래가지고 배합실 있잖아요. 사람들 기다리는 배합실에서 의자를 다 꺼낸다음에 상황실을 만들었었거든요. 아빠가. 그래서 아빠가 4주일동안 밥도 못 먹고 계속 바지선에 있고 저는 애타게 아빠가 계속 기다리라고 준우가 언제 올지 모르고 문자도 올 지 모르니까 너 꼭 핸드폰 들고 있으라고 그래가지고 준우를 계속 기다리는 상태였고. 애는 나오지 않았었고. 그리고 배 타고 갔었는데 너무 멀더라고요. 너무 차갑고.. 배가. 상당히 놀랬죠. 너무 안구해줘서.

    그 한참 18살이면 수영도 잘하고 키도 크고 얼마나 좋아요. 우리나라 대한민국 18살이면 공부도 열심히 했었고 뭔가를 바꾸고 싶어했는데 그런 아이들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거에서 어차피 준우는 떠났지만 남아있는 아이들이 그걸 보고 자라가지고..설명을 지금도 못하고 있어요. 왜 형아가 그렇게 됐는지.. 태준이한테도 말을 못해주고 있어요.

    김효영 : 그러니까요. 진상규명만이라도 정말 됐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것이 우리 부모님들의 간절한 소망인데 제대로 안되고 있고.
    언론에 대해서도 불만 많으시죠?

    장순복 : 네. 부모님들이 언론에 대해서 좀 못 믿는거죠.

    저희가 나중에 안산에 올라가서 티비를 보니까 계속 똑같은 장면만 정지되어있는 화면만 돌리더라고요 화면에서. 저희가 직접 외치는 건 하나도 안나오고 배도 없었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도 없었고. 배가 나가지를 않았어요. 물앞에서.

    그런데 뭐 배를 구했다, 애들을 구하는데 많이 진행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정말 화가 나고요. 그런데 그거를 다 태준이가 지켜보고 있었어요. 안산에서.

    그런데 태준이가 너무나 힘들어하는 게 해경이 우리 엄마들.. 우리 형아도 못 구해줬는데 왜 지금 진상규명도 우리 엄마,아빠가 나서서 하는데 왜 이렇게 경찰들이.. 그땐 해경인데 왜 경찰들이 이렇게 안산이고 서울에 벽을 막아놓고 우리 형아도 구해주지 못했는데 왜 우리 엄마도 자꾸 일을 막냐고 엄마,아빠를 막냐고. 그 아이가 너무 막 분통을 터트려요. 그 어린 게. 중학교 2학년짜리가.. 우리 엄마,아빠까지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가냐고. 왜 우리 엄마한테 이렇게 보여주기 식으로 하냐고. 태준이가 한번은 광화문 시위하는걸 봤었어요. 처음으로 시위하는걸 봤는데 거기에서 너무 애가 답답해 하는거에요 가슴을. 도저히 엄마 나도 모르겠다고 이제 엄마,아빠 없으면 난 어떡하냐고. 왜 경찰은 우리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냐고. 우리 형도 못 구해줬는데 엄마까지 데려갈거냐고. 얘가 너무 많이 울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아닌데. 이 애한테 보여줄 게 이런게 아닌데.. '그동안 부모들이 많이 못 보여줬잖아요. 우리 아이들한테. 좋은 걸 보여줘야 하는데 이런 첫? 태준이 앞에 눈앞에 펼쳐진 사회가, 서울이라는 그 도시가 이렇게 보여진게 너무 힘들었고. 진상규명을 빨리해서 태준이가 학교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태준이 같은 경우는 3학년이 되었는데. 1년이 지나고 학기가 지나서 3학년이 되었는데. 자기 반에 움츠려있다고 그래서 왜 움츠려있냐 그랬더니 '엄마 우리반에 세월호가 나 혼자 있는 것 같아' 이랬어요. 한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애가 웃어 가지고 오는거에요. 왜 그러냐 했더니 '엄마 나 혼자인줄 알았더니 한명 더 있어. 너무 위안이 되는거야' 그런데 애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틀린가봐요. 자기도 그렇고 떳떳하게 진상규명이돼서 우리 형아가 이렇게 죽지 않았다고 말을 하면 이해를 해줄건데 자꾸 세월호라는 구석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가지고 진상규명이 부족한것 같아요 아직도. 우리도 원하지만 태준이라던지 앞으로 많은 동생들을 위해서도 빨리 진상규명이 확실히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효영 : 그럼요. 반드시 그래야됩니다. 어머니 아마 준우가 지금 어머니 방송을 듣고 있을 겁니다. 그죠?

    장순복 : 네. 꼭 듣고 있을 거에요.

    김효영 : 해주고 싶은 이야기 다 하세요.

     

    장순복 : 준우야 얼마전에 너 생일이었지? 생일 날도 엄마한테 왔을거라고 생각해. 그때는 너무 기뻤어. 니가 꼭 온 것 같아서. 지금은 너 보낸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어젯 밤에는 그런 이야기를 너랑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 했던 것같아. 니가 없지만. 너하고 가방 쌌던거 너하고 수학여행가서 어떻게 할건지 용돈은 얼마 주고 옷은 언제 갈아입고 그 다음날은 어떻게 해야 니가 이쁘게 보일지. 양말도 많이 넣어줬고 혹시나, 혹시나.. 하루 이틀 더 걸려서 올지 모를까봐 엄마가 옷도 많이 챙겨줬잖아.

    그런데 가면서 준우가 동생 주라고 과자도 하나도 안 가져가고 아빠 드시라고 오징어도 다 꺼내놓고 가고 준우는 달랑 과자하나 물만 가져갔지? 준우가 엄마,아빠를 많이 생각해준것같아. 준우가 너무 보고싶어. 너무 사랑하고 니가 했던 꿈이 너무 많았는데 그 꿈을 펼쳐보지 못해서 너무 안타까워 엄마는. 그런데 니 마음을 알 것 같아.

    준우가 워낙 엄마한테 사랑을 많이 주고 엄마한테 너무 열심히 살아줘서 슬프지만 그걸로 지탱을하고 우리 준우가 너무 잘해줘서 고맙고 엄마 아들이어서 너무 고마워. 보이진 않지만 준우야 지금은 벚꽃이 활짝 핀 봄이란다. 항상 이 시간이 되면 니가 많이 그리울건데.. 준우야. 벚꽃을 보면서 니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다시 보고 니가 보지 못한 세계를 모든 사람들이 다 너를 통해서 많이 봤을거라 생각해. 힘들어하지 말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여기 사람들 잘 지낼거니까 준우가 잘 지켜주고 우리 모든 사람들 잘 지켜주길 바래. 준우가 항상 했던 그 이야기가 있잖아. '나 하나 공부하면 되잖아요. 나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100명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되잖아요' 항상 그렇게 멋지게만 준우가 말을 했었거든요. 준우가 지금은 그런걸 못 해주고 갔지만 앞으로 엄마, 아빠가 남은 우리 가족들이 준우의 그런 마음처럼 우리가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준우 니가 너무 해준 말이 많아서 정말 엄마는 평생.. 엄마가 18년동안 너를 키웠지만 18년 곱하기를 해서라도 엄마가 40년 50년 살 동안 니 이야기를 계속 하고 지낼거니까 이해해줘. 엄마 수다는 계속 될거고 니가 없어도 너 사진을 보고라도 엄마 수다는 계속 될거야. 엄마는 늙지 않을거고 너 18살 청춘을 엄마는 살아갈거야.
    준우야 사랑해. 준우야 많이 사랑해. 보고싶다.

    김효영 : 계속 수다 떠시는 모습을 저희도 바랍니다.
    세월호 우리 유족분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국민들이 훨씬 더 많다는거 아시죠?

    장순복 : 네.

    김효영 : 세월호 진상 반드시 규명이 되어서 준우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그래야 겠습니다.

    장순복 : 아, 고맙습니다. 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김효영 : 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단원고등학교 이준우군의 어머니 장순복 어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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