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문화·예술·언론·연예계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이 '세월호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④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⑤ "단상 위 대통령과 무릎 꿇은 母…내겐 충격적"
⑥ 배우 최민수, "세월호 참사는 미래에 대한 수장식"
⑦ '세월호 1주기'…다큐 영화 '다이빙벨'이 남긴 것
⑧ 형제자매들…"부모님 앞에서 슬픈 내색 못해요"
⑨ [르포] '아고라' 된 광화문 광장…꿈틀거리는 시민들
⑩ 배우 정진영 "세월호는 '비극'…유가족 발언 '경청'해야"
⑪ '표현의 자유'…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다
⑫ '제자리서 맴맴' … 세월호 이후 '재난보도’는 그대로
⑬ "세월호를 연극으로? 도저히 못하겠더라"
⑭ 임형주 "세월호 1주기, 발언 주저하는 상황 슬퍼"
⑮ '추적 60분' PD "그 분들은 매일 4월 16일입니다"
⑯ 슬픔 토해내세요"…세월호 아픔 치유하는 공연 무대에
⑰ 김미화 "정치인은 말장난…코미디언이 쓴소리
⑱ '세월호' 직시한 카메라…'진실' 건져 올리는 '진심'
⑲ 세월호 1년 '비극'…상처 입은 공동체 부둥켜안는 '기록'(계속)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추모 촛불을 켜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오이디푸스 왕' 등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가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극의 주인공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사건'과 운명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무대 위에 선 이 비극적 인물의 삶을 지켜보며 처참한 슬픔과 두려움을 경험한다. '카타르시스'라 불리우는 그 정화의 경험은 자기네 공동체에 닥친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의지를 뇌리에 심어줄 것이다.
1주기를 보낸 4·16 세월호 참사는 '비극'으로 불리운다.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경험한 우리는 더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는 그 자리에 주저앉든지, 앞으로 나아가든지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참사 1주기 당일인 16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는 5만여 명의 시민이 국화꽃 한 송이씩을 손에 쥐고 자리를 지켰다. 시민들이 무대에 오른 유가족들의 "함께해 달라"는 외침에 눈물을 흘리고, 거리로 나서 구호를 외친 것은 결국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진 결과인 셈이다.
앞서 이날 저녁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는 연극인들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연극제 '기억할게, 잊지않을게'가 열렸다. 참사를 오래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다양한 창작극을 상연한 이 자리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이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낭독극 '내 아이에게'(작·연출 하일호)였다.
세월호 희생학생의 부모 입장을 담은 40분 가량의 이 작품은 특별한 소품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는 배우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자리했는데, 이마저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이 당장에 거리로 나서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이 모인 곳 어디에서든 선보일 수 있는 연극인 것이다.
이 낭독극에 참여한 배우 장용철(연극미래행동네트워크 대표)은 "오늘 이 자리에서 (대본을) 두 번째 읽어보는데, 모두 같이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잔인하게, 너무 잔인해서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라며 "세월호 가족들을 인터뷰해 실제 증언을 끄집어낸 것인 만큼 이 기록이 전국 각지에서, 전 세계에서 계속 읽혀 오래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낭독극을 관람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비가 갠 뒤의 마로니에공원에는 매서운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닥쳤지만, 시민들은 자리를 지켰고 눈시울을 붉혔다. 낭독극 내 아이에게의 내용을 일부 전한다.
◇ 엄마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었어… 생명줄이 끊어지고 있었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1년 범국민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그날은 아침부터 새소리가 청명하게 들릴 정도로 맑은 날이었어. 어제 밤에 안개가 많이 껴서 출항이 늦어진다는 전화를 받아 걱정했는데 맑은 하늘에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니 제주의 하늘을 만끽할 너희들이 부러웠단다. 늘 하던 데로 우유를 가지고 들어와 부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냉장고를 열어 국거리를 꺼내놓고 새하얀 쌀에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연두색 완두콩을 띄워 밥을 얹혔다. 전화가 울렸다. "엄마, 엄마. 배가 기울어졌어. 엄마." 다리가 풀려 한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학교에 도착하니까 나 같은 어머니들이 안절부절 소리치고 발을 동동 거린다. 강당으로 올라갔더니 스크린에 '전원구조'라고 뜨더구나.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거기 있는 부모들이 다 박수를 치고 나도 박수를 쳤단다. 그럼 그렇지! 어서 우리 아이를 데려오자.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한 학생이 사망했다는 뉴스 속보가 뜬다. 그리고 전원구조가 오보라고, 이게 무슨 일이냐? 응?"
390㎞, 3시간 30분, 그리고 60만원. 10시50분 출발 2시20분 도착. 진도실내체육관. 보통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 '시속 200㎞가 맞아? 차가 왜 이리 늦어!' 열흘 뒤 6장, 총 60만원의 과속 벌금스티커가 날아왔어. 그렇게 너를 만나러 갔다.
시간이 멈춘다. 이제 시간이 죽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그때부터다. 지옥은. 디엔에이 검사를 받았다. 시신이 올라오면 맞춰봐야 한다면서. 아니야. 아냐. 난 핸드폰을 들어 너의 모습을 본다. 너에게 전화를 건다. 받아라. 제발. 받아라. 아직 살아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엄마는 너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제발 받아라. 내 아이야.
아홉 집에서 돈을 걷어. 사비를 내서 현장에 갔어. 따로 배를 빌려가지고 어선을 타고 그 사고 현장… 그 배 바로 옆까지 간다. 현장은… 이런 어떻게… 이런… 오 하나님… 현장은… 현장은…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아무 것도. 팽목항에서처럼… 거긴 너무나도 허술하게… 너무나도… 어이없게… 고무보트 몇 개 그냥 빙빙 돌고… 뭐 하냐?고 물으니 기름 걷고 있다고… 아이를 구하지도 않으면서… 기름을 걷고 있다고… 거…짓…말!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어. 그렇게. 그리곤 잔잔한 바다에 소용돌이가 시작됐단다.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었어. 생명줄이 끊어지고 있었어.
◇ 아빠 "도대체 언제까지 너를 저 차가운 바다 속에 남겨둬야 한다는 말이냐"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10일이 지났다. 오늘 TV 뉴스에서 기상캐스터가 "남쪽에 시원하게 비가 내린다"고 방송하더구나. '비가 또 오는구나.' 마음이 아팠다. 비가 오면 실종자 수색이 어려워지니까 말이다. TV 뉴스가 끝나고 탤런트 이순재가 선전하는 상조회사 광고가 나왔다. 채널을 돌렸다. 하지만 그날 내내 '장례'라는 단어가 떨어지는 빗소리에 걸터앉았다.
얘야, 며칠 전에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를 묶은 아이들 시신이 나왔단다.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렇게 했을까.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어. 나도 그럴 수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원통하고, 원통하구나. 그 아이들처럼 너와 함께 공포에 맞서고, 너와 함께 살려고 내 몸과 너의 몸을, 서로의 몸을 묶지 않았겠니? 억울하고, 억울하고 마음이 아프구나.
6월 들어서 하루 걸러 하루씩 술잔을 입에 댔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마셔댔어. 누구 같이 마시자고 할 수가 없어 나 혼자. 그렇게 한 주가 가고 두 주가 가고 세 달이 되고. 혼자 중얼중얼 웃다가 울다가 국정조사 보다가 "이런 개새끼들" 욕하며 또 마시고 제 얼굴을 막 때리는 나를 봤단다. 이래서는 안 되지, 이래서는, 아이 올 시간 됐는데 이런 나쁜 모습 보이면 안 되지 창피하게….
6월 들어 3반 승희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어. "힘내세요! 여기 부산인데 서명운동 하러 내려왔어요. 국정조사 하는 꼴을 보니 특별법이 꼭 만들어져야 진상규명에 조금이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신이 번쩍 들더구나. 미안하다 얘야. 술 그만 먹을게. 이제.
먼저 아이를 찾아 체육관을 떠난 가족들의 자리로 매트를 옮긴다. 그 자리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흔히 명당이라고 하잖니. 얘야, 웃기지 않니, 어디로 가나 체육관 이곳이 그곳이고 그곳이 이곳인데. 그런데 마음이 편해지더구나. 내일은 너를 만날 수 있다. 그런 근거 없는 희망, 이유를 알 수 없는 낙관. 또 하루가 간다. 또 하루가 가. 의미 없는 또 하루가 간다.
7월 23일. 이제 내일이면… 100일이 된단다. 100이라는 숫자는 연애할 때, 아이가 태어난 뒤에, 기분 좋은 일에나 세는 건 줄 알았는데…. 100일이라니. 얘야, 이제 그만 돌아와. 이제 그만 집에 가자꾸나.
10월 6일에 정부에서 세월호 수사결과를 발표했단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왜 구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은 쏙 빼놓았다.
남은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아니? "내가 마지막 차례가 되는 건 아닐까?" 주검이 하나 둘 나올 때마다, 의지하던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날 때마다, 실종자가 3명으로 줄고 2명으로 줄고, 그래서 결국 내가 마지막까지 남지 않을까?
2015년 2월 9일 300일이 지나간다. 우리 실종자 유가족들은 길고 긴 고통스런 기다림 끝에 또 다른 수색의 차원에서 세월호 인양에 마지못해 동의했단다. 그런데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더니 단 한 명이라도 끝까지 수색하겠다는 정부와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가고 1000억이 드네, 세금 도둑이네 못할 소리를 하더니 세월호 인양을 미루고 있구나. 구하지 못했다면 시신이라도 찾아줘야 하는 거 아니니? 도대체 너를, 도대체 언제까지 너를 저 차가운 바다 속에 남겨둬야 한다는 말이냐!? 처음엔 구조를 안하더니, 아니 방해하더니. 우리 아이 시신이라도 찾으려는 마음 수색중단으로 대답하더니. 이젠 인양을 안하려고, 아니 방해하려고 하더니. 그것도 돈이라는 누명으로 흙탕물을 일으켜 숨을 조이는구나. 왜 이렇게 잔인하니? 왜 이렇게 잔혹해?
◇ "우리는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 있는 9명을 기억합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걸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아이들의 영정사진 앞에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걸려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아이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아이가 죽으면 가슴에 묻는 게 아니랍니다. 그건 틀린 말, 그건 틀린 말입니다. 가슴에 묻으면 너무 아파… 너무 아파 차마 묻을 수가 없답니다. 숨 쉴 때마다 생각난다, 네가…. 숨 쉴 때마다.
누가 들려준 이야기야. "후쿠시마는 2만명이 희생당한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죽음이 2만개 있는 사건이다." 그래 세월호는 304명이 죽은 사건이 아냐. 한 명의 죽음이 304개나 있는 것이지. 그 한 명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있고, 그리고 동생이 있고 오빠와 언니가 있지. 친구와 선생님도 있고 키우던 강아지가 있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 그 한 명에게는 이렇게 소중하고 많은 생이, 삶의 가지가 같이 있는 거야. 그들은 이 모두를 죽인 거야. 그걸 알아. 이젠. 왜냐하면 내 아이를 잃었으니까. 사랑하는 내 아이를 잃었으니까. 그런데도 그걸 모르면 바보잖아. 그렇지?
"사랑합니다. 모든 분들을" 네 친구 웅기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란다. 내 아이들아, 고맙다. 나는 너희들의 메시지를 보았다. 너희들의 핸드폰 영상들. 그리고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통해서 난 알았단다. 그리고 배웠단다. 너희들은 남 탓을 하지 않고 서로를 위했어. 내 아이들아. 살아남기 위해 허둥대지 않고 서로를 도와가며 서로를 배려했어. 내 아이들아. 자신의 구명조끼를 약한 이에게, 남에게 먼저 내줬어. 내 아이들아. 너희는 서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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