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이 장기적인 수출 부진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1990년대 일본과 비슷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5일 '추격 관점에서 살펴본 한·중·일 수출경쟁력 변화' 보고서에서 "1990년대 일본이 후발국의 추격으로 주요 수출품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던 모습이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도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까지 세계시장을 주도하던 일본의 수출 점유율을 끌어내린 것은 한국을 포함한 후발국이었다.
연구 결과 한국의 수출잠재력이 높았던 품목에서 일본의 시장점유율은 1993년부터 6년간 14%가량 떨어졌다. 레코드플레이어의 점유율은 77%나 하락하기도 했다.
1990년대 내내 거세게 일본을 따라잡았던 한국은 이제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
중국의 수출잠재력이 큰 품목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2010년을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점유율 하락 폭은 1990년대 일본보다 더 크다. 2005년부터 6년간 21%가량 떨어졌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품목에서 중국의 잠재력이 점차 확대된다면 수출 경쟁력 유지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1990년대 초반 2% 내외에서 지난해 12.4%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일본의 점유율은 9%대 후반에서 3.6%로 떨어졌다.
한국의 전체 수출시장 점유율은 아직까지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1990년 초반 2% 정도에서 지난해 3.02%로 확대됐다.
그러나 일본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해가는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발국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창의적 역량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게 중국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한 과제로 지적됐다.
일본은 후발국의 추격을 받아 수출시장 점유율이 전반적으로 떨어졌지만 특수산업용 기계, 자동차, 사진장치·광학용품, 시계 등 고급 기술이 필요한 부문에서는 선방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선진국을 모방·추격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기술개발을 선도하면서 후발국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보유한 한정된 생산자원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산업으로 신속히 이동하지 못한다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산업 간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