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보셨죠' 3일 KBO 리그 사상 최초로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이승엽(왼쪽)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있게 해준 스승들에게 공을 돌리며 김성근 한화 감도의 이름을 빼놓지 않았다.(자료사진=삼성, 한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또 다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국민 타자' 이승엽(39 · 삼성). 전인미답의 통산 400홈런 고지를 밟으며 홈런의 대명사로서 또 한번 우뚝 섰다.
이승엽은 3일 경북 포항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롯데와 홈 경기에서 3회 고대하던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상대 선발 구승민의 2구째 시속 140km 직구를 통타,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겼다.
1995년 프로 데뷔 후 13시즌 만의 400홈런, 더욱이 일본에서 뛴 8시즌을 빼고도 이룬 대기록이라 더 값졌다. 역대 2위는 양준혁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351홈런, 현역 중에는 이호준(NC)의 299홈런으로 당분간 이승엽의 기록은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라이언 킹'의 홈런 기록이 또 하나 늘었다. 역대 한 시즌 최다이자 전국에 잠자리채 열풍을 일으킨 당시 아시아 신기록인 2003년 56홈런, KBO 리그 최초 50홈런 돌파(1999년 54홈런), 역대 최연소 10, 20, 30, 40, 50홈런 등 일일이 세기조차 어렵다.
불멸의 대기록을 세운 이승엽의 홈런 비결은 무엇일까.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일단 성실함과 철저한 준비성을 꼽았다.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나보다 좋은 스승들 만난 까닭"이승엽은 공을 은사들에게 돌렸다. 400홈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이승엽은 "좋은 지도자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면서 "어릴 때부터 실력은 그렇게 뛰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스승들의) 꾸지람과 칭찬도 많이 들었고, 많은 훈련량 속에 야구가 늘었다"고 돌아봤다.
일단 현재 사령탑이자 선배 류중일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류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사령탑까지 이승엽의 일본 진출 시절과 복귀까지를 모두 함께 했다. 400홈런을 달성한 이후 류 감독은 이승엽을 꼭 껴안고 축하와 격려를 동시에 보냈다.
'장하다, 승엽아' 삼성 류중일 감독이 3일 롯데전에서 400홈런을 달성한 이승엽을 끌어안으며 격려하는 모습.(사진=삼성)
이승엽은 "감독님과 포옹하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말했다"면서 "학교 선배(경북고)시기도 하지만 정말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이 원하지 않았으면 (2011시즌 뒤) 일본에서 그만 둬야 하는 상황인데 지금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해 (김인) 사장님과 함께 정말 감사한다"고 강조했다.
박흥식 KIA 코치도 마찬가지다. 박 코치는 이승엽의 프로 초창기부터 홈런 신기록을 세운 2003년까지 삼성 타격코치로서 일본으로 떠나기 전 '라이언 킹'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인물이다. 이승엽은 "박흥식 코치님도 그렇고 정말 좋은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다"고 꼽았다.
▲"야신의 지옥 훈련 없었다면…"그런 이승엽이 잊지 않은 이름이 있다. 바로 '야신' 김성근 한화 감독이다. 화려한 그의 야구 인생에도 그늘졌던 시절을 함께 했고 역경을 극복하게 해준, 야구는 물론 인생에 있어서도 진정한 스승이었던 까닭이다.
2003년 당시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이승엽은 2004년 일본으로 진출했다. 지바 롯데에서 대한민국 홈런왕의 자존심을 세울 부푼 꿈을 안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2007년 왼손 엄지 수술을 받은 뒤 붕대를 감은 채 8개월여 만에 귀국한 당시 요미우리 이승엽(왼쪽)이 10월 29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SK-두산의 경기에 앞서 스승인 김성근 SK 감독을 찾아 인사를 나누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이승엽의 야구 인생에 큰 시련이 찾아왔다. 일본투수들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5월 2군 강등의 수모까지 맛본 이승엽은 2004년을 타율 2할4푼 14홈런 50타점으로 마쳤다. 국내 9시즌 타율 3할5리, 324홈런(시즌 평균 36개), 948타점(평균 105개)를 올린 국민 타자의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이승엽은 그러나 이듬해 달라졌다. 당시 지바 롯데 타격 인스트럭터로 온 김 감독은 만나면서부터였다. 부상과 부진으로 2005년을 2군에서 출발한 이승엽은 김 감독과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면서 타율 2할6푼 30홈런 82타점으로 부활했다. 당시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 속에서도 거둔 성적이었다.
특히 이승엽은 그해 한신과 재팬시리즈에서 3홈런을 치며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최고 명문 요미우리에 입단, 2006년 타율 3할2푼3리 41홈런 108타점을 올리며 거인 군단의 4번 타자로 군림했다. 이후 4년 최대 30억엔(약 300억원)의 대박 계약까지 터졌다.
시련을 이겨내고 거인 군단 4번 타자로 우뚝 섰던 이승엽.(자료사진=노컷뉴스)
김 감독의 지도가 없었다면 이승엽의 부활도 불가능했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힘들었을 때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서 해보지 못했던 훈련, 상상도 못할 훈련을 해봤다"면서 "내 인생에 가장 많은 훈련량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그때 (감독님이) 만약 잡아주시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그냥 그저 평범한 선수, 한국 최고가 일본에서 실패하고 돌아가는 최악의 경우가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자문하면서 "그때 김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난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승엽은 한국에 복귀해서도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김 감독은 이승엽은 물론 박찬호(은퇴)까지 해외 무대에서 부진한 한국 선수들에게 맞춤 지도는 물론 인생의 조언까지 해주며 든든한 멘토 역할을 했다. 김 감독은 최근 "지금 이승엽의 몸 상태라면 500홈런도 가능하다"며 옛 제자의 건승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승엽의 400홈런에는 김성근이라는 이름도 빠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