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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승엽을 '국민 타자'로 부르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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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승엽을 '국민 타자'로 부르는지 아십니까

    [임종률의 스포츠레터]

    '국민을 위해 날린다' 삼성 이승엽이 3일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롯데와 홈 경기에서 3회 400홈런을 날린 뒤 타구를 응시하고 있다.(포항=삼성 라이온즈)

     

    여러분들은 왜 이승엽(39 · 삼성)을 '국민 타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아마도 그동안 워낙 국내외 무대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짜릿한 홈런을 터뜨리며 전 국민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안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 역시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이승엽이라는 이름 앞에 '국민 타자'라는 별명을 붙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해왔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홈런으로만 KBO 역사를 몇 번이나 새롭게 써온 데다 2002년 한국시리즈 등 가슴을 졸이는 승부처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해온 때문일 겁니다.

    그뿐인가요?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제무대는 또 어떻습니까? 2000년 시드니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6년 WBC 등에서 이승엽이 만들어낸 '약속의 8회' 명장면은 지금 봐도 짜릿한 전율이 등뼈를 타고 흐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승엽이 KBO 리그 최초로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3일에야 비로소 이승엽이 '국민 타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가 날린 숱한 결정적인 홈런, 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숫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국민 타자'가 갖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이승엽의 홈런

    이승엽은 3일 경북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롯데와 홈 경기에서 역사적인 홈런을 쏘아올렸습니다. 상대 선발 구승민의 2구째 가운데 몰린 시속 140km 직구를 놓치지 않고 힘차게 방망이를 돌려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20m 아치를 그려냈습니다.

    1982년 출범한 KBO 리그 역사에 남을 최초의 개인 통산 400홈런. 일본에서 활약한 8시즌을 빼고도 달성한 대기록입니다. 13시즌 만에 날린 400개의 아치, 당분간은 깨지지 않을 금자탑입니다. 이승엽이 후계자로 지목한 넥센 박병호(29)가 172개, 40홈런씩 친다 해도 6년은 걸립니다. 그러나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죠.

    이승엽은 숱한 홈런 중에 1개라면서도 400호 홈런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이승엽은 "40살 이후 첫 기록이라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선수 황혼기에 접어든 불혹의 나이에도 수립한 기록이라는 겁니다.

    특히 이승엽에게도 닥쳐온 역경을 이겨낸 결실이라 더 값졌습니다. 일본 시절 찾아온 슬럼프, 은퇴를 생각해야 했던 이국에서의 번뇌를 이겨내고 마침내 오른 400홈런 고지였습니다.

    '이겨냈기에 국민 타자다' 요미우리 등 힘겨운 일본 생활을 이겨내고 부활한 이승엽.(자료사진)

     

    이승엽은 2003년 당시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56홈런을 날린 뒤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시련에 부딪혔습니다. 2004, 05년 지바 롯데에서 2군에 내려가는 등 한국에서는 겪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요미우리 4번 타자로 부활했으나 부상으로 오릭스로 팀을 옮겼고, 예전 명성을 찾지 못하던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복귀한 2012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오르는 등 보란 듯이 부활했습니다. 2013년 타율 2할5푼3리 13홈런 최악의 부진에 빠졌지만 지난해 타율 3할(.308)-30홈런(32개)-100타점(101개)을 올리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몇 번이고 고난을 이겨낸 이승엽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 충분했습니다. 그가 숱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아치는 인고의 세월을 극복해낸 특별함이 있었던 겁니다. '국민 타자'라는 별명에 녹아든 고뇌와 번민, 극복과 승리의 의미가 있는 겁니다.

    ▲이승엽의 진정한 가치는 홈런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무수한 홈런이나 그의 고뇌, 역경의 극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 타자'라는 명성에 걸맞는 그의 인성(人性)입니다. 마음가짐에서부터 그는 뼛속까지 '국민 타자'인 겁니다.

    이날 경기 후 이승엽은 자신이 날려온 홈런에 대해 일단 "내 이름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던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홈런의 의미는 사뭇 달랐습니다. 자신보다는 국민의 이름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이승엽은 "지금은 많이 못 치지만 (90년대 후반) IMF 때 홈런을 많이 쳤던 기억이 있다"면서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박수를 쳐주시고 내 홈런 하나로 힘을 받는다고 말을 해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IMF가 시작된 97년 이승엽은 역대 최연속 홈런왕과 MVP에 올랐고, 99년에는 최초의 50홈런 돌파(54개)를 이뤄냈습니다.

    '국민들의 힘 때문이었죠' 당시 KBO 리그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하며 54개의 아치를 그려냈던 1999년 이승엽의 모습.(자료사진=삼성)

     

    그때를 돌아보며 이승엽은 "그게 정말 고마웠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더 많은 홈런을 쳐야겠다 생각을 했다"면서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웃음과 행복을 줄 수 있고, 어린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힘을 냈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 타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고 보니 56홈런 신기록을 세운 2003년 한국은 신용카드 대란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올해 역시 대한민국은 경기 침체와 실업률 증가에 최근 메르스까지 창궐해 있습니다. 이승엽은 "우리나라가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힘들다"면서 "(국민들이) 워낙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점이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곧이어 '국민 타자'의 정의와 본분을 올곧으면서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제가 도움을 드릴 것은 그저 야구장에 나와서 열심히 플레이해서 관중에게 웃음을 주고, TV를 보시는 팬들과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안 좋은 기분을 좋은 기분으로 손톱만큼이라도 바꿔준다면 그게 만족이고 도움입니다. 어른도, 어린이들도 있지만 나태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설렁이라고 하기보다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어린이들에게 꼭 가르침을 줄 수 있는 플레이를 하고 싶네요."

    왜 여러분들이 이승엽을 '국민 타자'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유일 겁니다. 홈런에 앞선 그 심성과 사람됨이 그를 위대한 선수로 추앙받게 하는 까닭일 겁니다. 국민 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준석아, 미안하다고 전해줘' 3일 포항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삼성-롯데의 경기 3회말 2사에서 삼성 이승엽이 400홈런을 친 후 롯데 최준석에게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는 모습.(자료사진=삼성)

     

    p.s-이승엽은 누구나 칭찬할 400홈런을 쳐놓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된, 1군 등판이 이제 4번째인 상대 2년차 투수 구승민(25)이 행여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봐서였습니다.

    이승엽은 "구승민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면서 "타석, 마운드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가 가져야 할 마음이고 승부해줘서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어 "비운의 투수 캐릭터를 가지지 않도록 좋은 선수로 커줬으면 좋겠다"고 격려했습니다.

    이승엽이 또 미안한 대상은 팀 동료들이었습니다. 이승엽은 "삼성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 8년 동안 없어진 존재였는데 다시 돌아와 관심과 스포트라이트 많이 받는데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는 게 이유입니다.

    이어 이승엽은 "400홈런이 안 나와서 부담이 아니라 내게 집중된 관심에 대한 후배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면서 "묵묵히 평상시대로 해준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선배가 좋은 기록을 보여줬기 때문에 후배들이 큰 목표 위해 뛰어준다면 하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 타자'는 마음 씀씀이부터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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