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선배처럼 될래요' 3일 포항 롯데전에서 나란히 홈런포를 쏘아올린 이승엽(왼쪽)과 '리틀 이승엽' 구자욱.(자료사진=삼성)
우상의 대기록을 더그아웃에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TV를 통해 관중석에서 봤지만 한 팀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한 경험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다.
'라이언 킹' 이승엽(39)을 꿈꾸는 '아기 사자' 구자욱(22 · 이상 삼성) 얘기다. 구자욱은 야구 인생의 롤 모델로 꼽는 대선배의 대기록을 직접 눈에 담는 감격을 누렸다.
이승엽은 3일 경북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롯데와 홈 경기에서 3회 솔로 홈런을 쏘아올렸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뒤 첫 개인 통산 400홈런 대기록이었다.
상대 선발 구승민의 2구째 시속 140km 직구를 이승엽이 받아치는 순간 삼성 더그아웃에서는 모두들 일어나 타구를 바라봤다. 모두가 간절히 바랐던 400번째 아치였다.
구자욱 역시 오른쪽 담장으로 쭉쭉 뻗는 백구의 궤적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도는 우상에게 박수를 보냈다.
'저도 안아드리고 싶네요' 3일 류중일 삼성 감독이 대기록을 세운 이승엽을 안아주는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구자욱(빨간 원)의 모습.(자료사진=삼성)
이승엽은 구자욱에게 신적인 존재다. 어린 시절부터 이승엽의 홈런을 바라보며 야구 선수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왔다. 입버릇처럼 "이승엽 선배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같은 1루수에 장타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구자욱은 별명도 '리틀 이승엽'이다.
올해는 1군에 합류해 대선배와 함께 그라운드에서 뛸 영광을 안았다. 지난 3월 28일 SK와 시즌 홈 개막전에서는 데뷔 첫 안타를 2타점 2루타로 2루 주자 이승엽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경기 후 구자욱은 "선배와 유니폼을 입고 같이 뛰는 게 꿈이었는데 첫 번째 꿈은 이뤄졌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그랬던 구자욱은 드디어 역사에 남을 이승엽의 홈런을 본 것이다. 경기 후 구자욱은 "이승엽 선배의 400호 홈런을 눈앞에서 봐서 영광이고 한 팀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뿌듯한 소감을 밝혔다.
더욱이 구자욱은 이날 모처럼 홈런을 날렸다. 7회 대타로 나와 우중월 1점포를 쏘아올렸다. 이승엽의 대기록에 묻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대선배 앞에서 날린 홈런이었다.
특히 구자욱은 지난달 21일 두산전 이후 9경기 만에 처음 맛본 손맛이었다. 시즌 초반 주전으로 출전했던 구자욱은 기존 1루수 채태인과 우익수 박한이가 복귀하면서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가운데 대타로 나와 장타를 날린 것이다.
이승엽(왼쪽)과 구자욱의 훈련 모습.(자료사진=삼성)
구자욱은 "사실 첫 1군이라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다"면서 "입맛이 없어 많이 먹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서 최근에는 억지로라도 많이 먹어서 체력을 보충하려고 한다"면서 "출전 기회가 적지만 언제라도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승엽은 선수 생활을 정점을 찍고 의미 있는 마무리를 준비할 시기지만 구자욱은 이제 시작이다. 구자욱은 "나도 이승엽 선배처럼 기록을 세우고 싶다"면서 "하지만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 올 시즌에는 일단 두 자릿수 홈런을 목표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올 시즌 찾아온 슬럼프 때 구자욱은 이승엽의 조언으로 벗어난 바 있다. 지난 4월 구자욱이 부진하자 이승엽은 "중학교 야구도 아니고 프로인데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면서 "고비가 오는 게 당연하니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넘기라"고 애정어린 충고를 했다. 이번에도 고비가 왔지만 이승엽의 400홈런으로 구자욱은 다시 자극을 받았다.
3일까지 팀이 53경기 전체 일정의 36.8%을 소화한 가운데 구자욱의 홈런은 시즌 7호였다. 50경기를 뛰면서 시즌 2할8푼9리에 24타점째다. 1995년 데뷔 시즌 이승엽은 121경기 타율 2할8푼5리 13홈런 73타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