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 징크스가 재연될 조짐이다. 확산일로에 있는 메르스 사태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을 거쳐 간 사람들 중에서도 감염자가 나와, 수도 서울에서의 대규모 감염 가능성이 우려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다.
이에 따라 오는 14일로 예정된 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앞두고 여권에서도 ‘가야한다, 재고해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메르스가 진정되지 않는 한 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 논란은 다음 주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가장 뜨거운 곳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상에서이다.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 비상시기에 대통령이 꼭 미국에 가야만 하느냐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최고위원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우선인가, 미국 방문이 우선인가"라며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취소할 것을 5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정치공세를 펴기도 했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재로서는 예정대로 가는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얘기이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 순방과 관련해 그것을 중단하라든지 새로 검토하라든지 그런 얘기는 현재 전혀 없다”며 “혹시라도 대통령의 순방이 중단되면 의도와 달리 대외적으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고, 국가 이미지 추락과 대외 신인도 하락 등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여권 전체로 보면 논의 구도가 청와대와는 다르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자료사진)
새누리당 비박계로 분류되는 김성태 의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며 “방미 시기까지 메르스가 진정되지 않으면 (방미여부를) 대통령이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역시 비박계에 속하는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메르스 상황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미 정상회담까지 미루는 것은 별개”라면서 ”왜냐하면 국가는 국가대로 작동해야지 모든 것이 메르스 때문에 안된다고 하면 불안 심리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방미에 대해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셈이다.
문제는 다음 주에도 메르스가 계속 확산될 경우이다. 정부의 강력한 대응에도 메르스가 병원기관 내 감염에서 대도시 등 지역 사회 감염으로 확산될 우려를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럴 때라도 “우리에 가장 중요한 나라인 미국 방문인 만큼 매우 신중한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에 따라 미일 신밀월시대가 예상되고, 중국의 부상, 북한 김정은 체제의 공포정치, 북핵 문제 등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 국익을 위해 한미동맹의 역할과 중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바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것이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에 미국에 못가면 올해 안에 더는 일정을 잡기 어렵고, 내년으로 넘어가면 미국이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 통상적으로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며 “그런 점에서 올해가 사실상 마지막 정상회담이 될 수 있는 만큼, 메르스 상황이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전체 국익을 감안해 매우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4%로 주저앉았고,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박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참모는 “메르스 사태에 대해 정무적으로 판단한다고 해도 미국 순방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익보다 포퓰리즘에 경도된 견해”라고 일축했다.
현 시점에서 청와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는 비상시기 대통령의 외국 순방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우리 사회에서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메르스 확산 여부에 못지않게 다음 주 박 대통령이 메르스 방역에 얼마나 진정성있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안심시키느냐가 미국 순방의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미국 순방 기간 중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것은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로, 이번 건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만큼 국민들이 양해를 해야 할 사안”이라면서도 “다만 박대통령은 청와대와 행정부, 여당, 지자체가 메르스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특별하고도 강력한 조치를 취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한 뒤 순방 길에 오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NEWS:right}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여야는 물론 17개 광역 지자체 단체장까지 아우르는 초당파적 협조체제를 가동해 메르스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 뒤 미국 방문에 나선다면 누가 무엇이라고 하겠냐”며 “그러나 정부는 메르스 초기대응에 실패했고, 이후 메르스 대응과정에서도 박 대통령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국가비상사태에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박 대통령의 부재시 메르스 등 국가 비상 상황에 대해 충분한 권한을 갖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조성하는 것이 순방의 전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