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행과 영화, 공연 등 문화 산업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CBS 노컷뉴스는 '메르스 사태'가 문화 산업에 미칠 파장과 이를 바라보는 문화연예계 내부의 목소리를 전하는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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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통제불능 '메르스'…'영화'보다 참담한 '현실'
② '탄탄대로' 걷던 극장가…'메르스' 직격탄에 '벌벌'
③ '작년엔 세월호 올해는 메르스'…공연계 덜덜덜
④ '메르스', 한류에 찬물…아이돌도 中서 '찬밥신세'
⑤ '메르스' 재앙…철학자 강신주에게 묻다
⑥ 밀집된 군중을 피하라…메르스에 떠는 연예계
⑦ '메르스' 공포에 얼어붙은 '극장가'…"이 정도일 줄이야"
⑧ '반토막' 난 명동…메르스 관광 재난 보고서
⑨ 작가 정유정 "메르스 사태…생명은 도구가 아니다"
작가 정유정(사진=박종민 기자)
"답답합니다." 작가 정유정은 8일 이 짧은 말로 '메르스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재난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하려면 의사, 방역전문가, 철학자 등을 아우르는 전문가 집단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국민과 소통해야만 그나마 동요가 적을 테니까요."
그는 지난 2013년 발간된 장편소설 '28'(은행나무 출판사)을 쓰기 위해 취재를 벌일 당시 "한국의 재난 매뉴얼이 주먹구구식으로 허술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소설 28은 원인불명의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한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재앙과 맞닥뜨린 공동체와 그곳 사람들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이번 메르스 사태와도 맞닿아 있는 셈이다.
"국내에 전염병 거점병원 들이 있다고 해서 취재차 찾아갔던 일이 있어요.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이후 만들어졌다더군요. 그런데 격리실의 침상이 많아야 15개에서 20개였어요. '이렇게 해서 선제적인 조치가 이뤄질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죠. 이번 메르스 사태 역시 재난에 대한 정부의 대비가 부족했다고 봐요. '설마' 했던 거겠죠. 간호학과를 나온 저로서는 신종플루가 유행하기 오래 전부터 감염학자들이 전염병의 대유행을 예고했던 걸 여러 차례 접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이 여태 반영되지 않았는지, 왜 오히려 '사스' 창궐(2003년) 때보다 퇴보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 2010년 겨울 '구제역 파동' 당시 생매장 당하던 소와 돼지의 영상을 접한 뒤 소설 28을 구상한 것으로 아는데, 완성된 작품은 더 나아가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존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그리고 있다.= 작은 의미에서는 소수에 대해 다수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행사하는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전체주의라고 본다. 집단 행동을 강요하면서 그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악으로 규정하는 행위 말이다.
큰 의미에서는 소설을 통해 생명의 평등성을 말하고자 했다.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도덕과 무관한 특성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것이 평등"이라고 정의했다. 장애, 전염병 등은 개인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인데, 이에 대해 소위 '정상'이라고 분류된 사람들이 가하는 격리, 외면 등의 폭력은 부당한 것이다. 소설 속 국가는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를 물리적으로 고립시킨다.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철학조차 지니지 못한 무지한 국가인 셈이다.
정부가 메르스의 첫 확진환자가 나오거나 거쳐 간 병원 24곳에 이어 5곳을 추가로 공개한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인근 초등학교에 휴업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메르스 사태를 통해 접하게 된 '생명의 대상화'는 소설 28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생명을 도구화해 버린 인간의 시선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 이 소설이다. 최고 포식자인 인간이 모든 생명을 도구화해서 바라보면 결국 같은 인간조차 도구가 된다. 이러한 사고는 결국 생명경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우슈비츠 같은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제가 길고양이 밥을 주러 다니는데, 주변 사람들이 보면 굉장히 싫어한다. 왜 싫어하는지를 물어보면 "쓰레기를 파헤치니까" "텃밭의 배추를 뜯어먹으니까"라고 답한다. 그렇게 쥐약 섞인 먹이를 먹고 고양이들이 죽어간다. 인간에게 불편함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생명을 앗아가는데, 천벌 받을 짓이다. 이는 먼 나라의 동물들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사고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언젠가 '내'가 동물처럼 취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번 사태로 다시 한 번 민낯을 드러낸 한국 사회, 어떻게 바라보나.= 소수의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 집단주의가 강화되는 느낌이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주인공이 사적 복수를 일삼는, 배우 찰슨 브론슨 주연의 영화에 대해 누군가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글쓴이는 "사적 복수가 만연한 세상을 혐오하지만, 이런 영화가 나오는 사회는 건강한 곳"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집단의 기준을 강조하는데, 그것에서 벗어나면 맹비난한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인생을 망치는 사회인 셈이다. 집단에 속해 있지 못하면 불안해 하는 것도 그 영향이 아닐까. 그러한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적 사고는 무서운 것이다.
▶ 메르스와 관련한 정보를 통제하는 정부의 모습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공포, 불안이 생기는 이유는 상대의 정체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국민들이 정보를 통해 메르스의 실체를 아는 것은 결국 생존의 문제 아닌가. 정부가 처음부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이렇게까지 불안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 소설 28의 물음인 "다수를 위해 소수를 버리는 것이 맞냐"는 질문조차 던지기 힘들 정도로, 입이 벌어질 만큼 부실한 대응이었다고 본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정치적인 이해관계, 알력 다툼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의 늑장 대응도 다분히 이러한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 중앙정부의 방침과 달리 정보를 공개한 서울시의 조치를 어떻게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선제적 조치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이러한 문제의 경우 과잉으로 대처해 철저하게 막는 게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정보 공개 이후 그나마 정부 등이 후속조치를 내놓으면서 사회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느낌이다.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한 병원 관계자가 응급실을 찾은 시민들의 체온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목소리가 높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게 불과 1년여 전이다. 그런데 "지겹다" "그만하자"는 말들이 나온다. 이러한 일에 피로도를 빨리 느끼는 탓일까. 메르스 사태도 그렇게 될까 불안하다. 불편하더라도 바라봐야 한다. 진실을 외면하면 학습할 수 없다. 학습하지 못하면 반복할 수밖에 없다. 눈감아 버리면 결국 자기 일로 돌아온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불편한 감정을 이겨내고 진실을 봐야 한다. 그리고 요구해야 한다. 안 그러면 결국 역사는 되풀이된다.
▶ 소설 28의 주인공인 수의사 서재형은 속죄를 위해 재앙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이를 통해 자신은 물론 적대자들마저 구원한다. 그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서재형의 행위는 결국 생명에 대한 속죄다. 인간이 다른 생명들에게 가해 온 것, 더 넓게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일들에 대한 속죄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역사 속에도, 현실 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은 없으니까.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도 맨 끝의 '서재형,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다'라는 문장이다.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때 생명을 파괴해 온 행위도 멈출 수 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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