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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사내하청 한 노동자의 죽음…그리고 남은 과제

전남

    포스코 사내하청 한 노동자의 죽음…그리고 남은 과제

    [포스코와 사내하청업체의 후진적 노사관리 ①]



    양우권 분회장의 이름이 새겨진 EG테크 작업복(사진=전남CBS 고영호 기자)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업체이자 박근혜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가 회장인 'EG테크'의 유일한 노조 조합원이던 양우권 분회장이 지난 5월 10일 광양제철소가 내려다 보이는 자택 근처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을 거둘 때도 양 분회장은 그토록 생산 현장에서 일하고 싶던 회사의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채 였다.

    양 분회장의 죽음은 처음에는 단순한 변사 사건으로 보였으나, 그가 남긴 6년간(2010년~2015년)의 친필 일기장을 통해 사회적 타살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양 분회장은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업무를 부여 받지 못하거나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는 등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실상이 낱낱이 공개됐다.

    1998년 2월 5일 EG테크에 입사한 양 분회장은 2006년 노조 결성 당시만 해도 평범한 조합원에 불과했으나 53명의 동료 조합원들이 하나 둘 노조를 탈퇴해 2010년에는 결국 혼자 남으면서 자동으로 분회장이 됐다.

    노조 조합원으로서 회사 생활을 하며 사내 '왕따' 등 말 못할 외로운 고민의 흔적들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겼다.

    ◇ 2011. 1. 6(목)

    "오늘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업무 지시도 받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었다. 노조원이란 것이 기업이 볼 때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것인가?"

    ◇ 2011. 2. 8(화)

    "옻닭을 시켜 먹으면서 000 팀장이 노조를 탈퇴하면 ① 노조활동을 하면서 부당하게 받지 못한 임금 지급 ② 원하는 부서로 현장 복직 보장 ③ (회사 숙소에서 근무한) 아내가 받지 못한 퇴직금 지급 ④ 노조 탈퇴 후 어떠한 보복성 불이익 없이 신분 보장 등을 제시하면서 탈퇴서를 써 달라고 종용하길래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노조를 탈퇴하면 내일 있을 인사위원회를 취소한다고 했음"

    양우권 분회장은 2012년 11월 대법원에서 부당 해고 판결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불이익을 받는 심경을 일기장에서 밝혔다.

    양우권 분회장의 2014년 7월 10일 친필 일기 대통령 동생이 회장으로 있는 회사가 헌법상 보장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적혀 있다(사진=전남CBS 고영호 기자)

     

    ◇ 2014. 7. 10(목)

    "헌법에도 보장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가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동생이 회장으로 있는 기업이 이렇게 해도 된단 말인가"?

    ◇ 2014. 7. 17(목)

    "좌측 2m 위 천장에 감시 카메라가 있다. 날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미처버리겠다. 눈에서 계속 눈물이 나고 눈이 너무 아프다"

    ◇ 2014. 8. 5(화)

    "역시나 오늘도 점심식사 같이 하자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 게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그만 두면 당장 직장도 없고 미치겠다"

    양 분회장은 일기장에 적은 것처럼 기존에 하던 생산 업무 대신 다른 업무를 부여받지 못해 답답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가중됐다.

    순천지역 정신과와 한의원, 광주광역시 종합병원 등에서 입원하고 치료를 받았지만 투약 강도가 점점 높아져야 할 정도로 회사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양 분회장의 장남 양효성씨는 "올해 2월쯤 병원에 문병을 가니 아버지가 '병원에서는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있고 해서 병원이 회사보다 더 편하다'고 했다"며 울먹였다.

    또 양 분회장의 부인은 "그렇게 힘들면 다른 직장을 구하라는 주위의 조언에도, 어차피 노조 일을 했으면 끝까지 해 보겠다는 결연함을 보였다"고 흐느꼈다.

    양우권 분회장이 생산 업무를 부여 받지 못하고 사무실에 근무했던 광양시 중동 EG테크 앞에서 금속노조가 6월 8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전남CBS 고영호 기자)

     

    양 분회장과 함께 수 년 간 노조활동을 함께 한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허형길 전 수석 부지회장은 "고인이 한때는 노조활동을 같이 하며 호형호제했을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등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인권 유린과 인격 살인이 있을 수 있느냐"며 양 분회장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양 분회장의 죽음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지난 5월 21일에는 광양시내에서 2천 여 명의 동료 노동자와 시민 등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단식과 삭발 농성 등이 이어졌다.

    양 분회장은 노동청의 중재로 노사 간 협상이 타결되면서 숨진 지 37일째인 6월 15일에야 영결식을 치를 수 있었다.

    양 분회장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1문 앞에서 열린 노제를 통해 유서에서도 남겼듯이 모형으로 만든 흰 새가 돼 그토록 가고 싶던 광양제철소 쪽 하늘로 높이 높이 날아갔다.

    양 분회장은 한 줌의 재가 됐지만 그의 유지에 따라 포스코와 사내하청업체의 노무관리 혁신은 포스코와 하청업체, 노조, 지역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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