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왼쪽), 이운재(사진=KBS 제공)
“잔혹한 서바이벌이 펼쳐집니다.” “민낯을 가감 없이 공개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말 뿐이다. 대본이 없을 수 없고, 악마의 편집은 필수다. 논픽션 리얼버라어티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하 ‘청춘FC’)’은 다르다. 축구라는 스포츠종목에 청춘들의 인생을 녹여 진정한 리얼을 추구하려 한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는 KBS 2TV ‘청춘FC’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연출을 맡은 최재형 PD와 각각 감독과 코치로 선임된 안정환, 이운재가 참석했다.
‘청춘FC’는 좌절을 경험하고 축구를 포기할 위기에 놓은 유망주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논픽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 “‘진짜 이야기’ 다루고 싶었다”
(왼쪽부터) 이운재, 안정환, 최재형 PD
연출을 맡은 최 PD는 이미 스포츠와 예능의 접목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축구 꿈나무들의 이야기를 그린 ‘날아라 슛돌이’ 연예인들의 야구 도전기를 그린 ‘천하무적 야구단’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날 최 PD는 “예능 PD로 십수년 동안 일해오면서 그동안 해왔던 것과 다른 이야기, ‘진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면서 “특히 좌절한 축구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뤄보면 어떨까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의 생각이 적중한 걸까. ‘청춘FC’ 1차 테스트에는 무려 2천 3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 중 500여 명이 2차 테스트를 거쳤고, 최종 22명의 선수단이 꾸려졌다. 이들은 오는 7일 벨기에로 6주간의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다. 또 향후 다양한 팀들과 평가전을 치를 계획이다.
아픈 사연을 지닌 참가자도 정말 많다. 최 PD는 “지금 현재까지 남아있는 친구들이 모두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며 “‘누구의 사연이 더 절박한가’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프로그램을 정말 잘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이들의 앞날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 “억지 웃음 아닌 희망 주고 싶어”22명의 ‘축구판 미생’을 위해 축구계 전설적인 선배들이 나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주역 안정환과 이을용이 감독, 이운재가 코치, 신태용 올림팀축구대표팀 감독과 최진철 U-17 청소년축구대표팀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힘을 보탰다.
제작발표회 현장에 참석한 안정환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강한 의지에 차 있었다. “‘청춘FC를 위해 K리그, 해외 팀들의 감독직 제의도 거절했다”는 그다.
안정환은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임할 생각이다. 스포츠는 거짓말이 없어서 웃길 수 없다. 경기장에서도 웃기려고 축구하는 사람 없다”며 “축구를 하면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이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 평범한 인생을 보는 것과 똑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운재의 존재도 큰 힘이다. 그는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잠재력을 봤다. 숨어있는 잠재력을 끌어올려야할 듯하다. 지금 현재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 키가 183cm다. 신체조건이 좋지 않음에도 골키퍼로는 K리그 최초로 MVP를 받았다. 선수들이 나를 보면서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억지로 웃길 생각은 없다. 정말 진지하게, 현실적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주고 싶을 뿐이다. 제작진도 인위적인 웃음효과 빼고, 시청자들에게 판단을 맡길 생각이다.
안정환은 “이 친구들 데리고 웃기고 싶지 않다. 힘들게 도전하고 있는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을 뿐”이라며 “시청자 여러분들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웃음 없는 방송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을용이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웃길 때가 있다”며 특유의 유머감각도 뽐냈다.
◇ “이 시대 청춘들을 위하여”
최 PD는 ‘청춘FC’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생을 오롯이 담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단순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연예인을 섭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명단에 연예인은 없다.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도전이다”라며 “특정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이름표를 떼거나 까나리를 먹지 않아도 된다. 우리 옆 동생, 형이 먹고 사는 과정에서 나오는 재미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실 ‘청춘FC’는 내세운 최종 목표가 없다. 물론, 특정 구단과 협의를 통해 입단을 약속할 순 있다. 하지만 제작진과 코칭 스태프들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으로 이들의 인생이 성공하길 바랄 뿐이다.
최 PD는 “프로그램에 끝에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 답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우린 가장 잘하는 사람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다. 재기를 도와보자고 시작한 것”이라며 “방송을 통해 이 친구들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낙오됐던 선수들이다. 받아주는 것은 구단의 몫이다”이라고 설명했다.
안정환과 이운재는 “‘청춘FC’를 위해 도와달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스타 선수가 된 안정환은 “고민 끝에 결정을 하게 됐다. 진짜 많이 봐주셔야 한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이 친구들이 다른 길을 가고자할 때 좋은 팀에 갈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 달라”며 “불쌍하다는 표현을 하면 안 되지만 정말 불쌍한 친구들이 많다. 도와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