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 재개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 부채의 탕감(헤어컷) 필요성을 인정한 보고서를 발표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채권단인 IMF가 2일(현지시간) 공개한 '부채 지속가능성 분석 예비안'은 지난달 26일 작성한 보고서로 그리스 정부부채가 지속 가능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헤어컷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IMF는 줄곧 그리스의 경제성장률과 기초재정수지 전망을 근거로 채무 부담을 줄이지 않으면 정부부채를 상환할 수 없다며 유럽연합(EU) 측 채권단에 채무 부담 경감을 요구해 채권단 간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 IMF가 공식 문서에서 헤어컷을 명시한 것은 처음으로 그리스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2012년 총선 때부터 그리스의 국가채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탕감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난 1월 말 집권한 이후 채권단과 협상과정에서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전날 그리스 민방 ANT1과 인터뷰에서도 채무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IMF도 그리스 부채 20%를 헤어컷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3차 구제금융 협상이 5일 실시하는 국민투표 이후 시작된다면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그리스가 요구한 채무 재조정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최대 채권국인 독일 등은 자국의 납세자를 의식해 채무 재조정에 반대했지만 EU 채권단 역시 그리스 구제금융 프로그램으로는 부채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폭로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전날 공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도청 문건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지난 2011년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받아도 부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EU 채권단은 2012년에도 그리스가 재정수지 목표를 달성하고 구제금융 프로그램 정책들을 이행한다면 추가 '채무 경감'(debt relief)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다만 메르켈 총리와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 등이 국민투표 이후에 협상하겠다고 밝힌 것은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부와는 협상을 거부했다는 의미도 있어 IMF 보고서가 치프라스 총리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이밖에 IMF는 이 보고서에서 올해 그리스 정부의 정책 실패도 헤어컷의 배경으로 지적해 IMF와 EU 채권단 모두를 겨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협상이 재개되면 그리스는 3천억 유로 규모의 정부부채 일부를 경감받을 수 있겠지만 치프라스 총리와 합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분석가들은 전날 고객들에게 "채권단은 그리스의 정권 교체를 원하고 이번 일요일 국민투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 첫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EU 채권단은 국민투표 반대는 EU를 거부한 것이라고 규정해 반대로 결정된다면 협상 재개가 불투명지만 만약 반대로 결정되고 협상이 이뤄지면 EU 채권단은 채무 경감에 합의할 수도 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국민투표의 반대는 채무 경감이 포함된 협상안 타결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날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채무 경감이 없는 협상안에 서명하느니 팔을 자르겠다고 말했다.
독일 일간 디 차이트의 마르크 쉬리츠 기자는 트위터에 "이번에는 바루파키스가 맞을 수 있다, 반대 결정 이후에 채무 경감이 포함된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는 전날 인터뷰에서 반대로 결정된다면 바로 벨기에 브뤼셀로 갈 것이며 48시간 안에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IMF가 이처럼 파장이 큰 보고서를 민감한 시점에 공개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 유출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을 통해 입수된 채권단의 내부 보고서에서 부채 탕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