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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광한과 함께한 봄날…내 생애 '첫 인터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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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광한과 함께한 봄날…내 생애 '첫 인터뷰'의 기억

    지난 2013년 4월 29일 목동 C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DJ 故 김광한이 방송준비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처음'인 기억들은 언제나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80년대와 90년대 '3대 DJ'로 명성이 드높았던 고(故) 김광한. 그는 지난 9일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에게 유명 DJ였고, 청춘의 한 자락이었을 그가 기자에게는 첫 인터뷰 상대였다. 2년이 훌쩍 넘어도 흐릿해지지 않는 그 기억을 고인을 추모하며 되새겨 보려 한다.

    2013년 4월, 나는 봄을 누릴 새도 없이 인턴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는데 특명이 내려졌다. CBS 표준FM '김광한의 라디오 스타' 첫 방송일이니 가서 김광한을 인터뷰하라는 것이었다.

    머리가 띵했다. 들어온 지 한 달도 안된 새내기 인턴인 내가 인터뷰라니. 그러나 그보다 앞서 든 생각은 '유명한 DJ라는데 대체 김광한이 누구지?'라는 의문이었다. 90년대 태어난 내가 그의 전성기 시절을 알리 만무했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정보를 모아보니 그는 내 예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팝의 시대가 저물었어도 그는 여전히 전설적인 DJ였다. 한 마디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을 막 군에 입대한 신병이 만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야속한 시간은 빠르게도 흘렀다. 나는 노트북 하나를 덜렁 든 채, 막막한 발걸음으로 라디오 스튜디오로 향했다. LP판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아늑한 스튜디오에서 기자는 그렇게 고인을 처음 만났다.

    당당하자고 주문을 걸었지만 내심 마음 한 구석이 떨렸다. 정식 기자도 아닌 초짜 인턴기자가 첫 방송이라고 와서 불쾌하지 않을까. 인사를 나누는 순간, 그런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김광한은 넉넉한 웃음과 함께 기자를 반겼다. 방송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아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아마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 웃음 한 번이 꽝꽝 얼어붙은 초짜 인턴기자에겐 훈풍과도 같았음을.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스튜디오 안에 자리를 잡았고, 곧 방송이 시작됐다. 오랜만의 라디오라 언뜻 긴장한 기색이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노장의 연륜대로 김광한은 금방 방송에 녹아들었다.

    원래 라디오라는 것이 그렇다. 평화롭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도 막상 스튜디오 안은 시간과의 전쟁이다. 1초라도 어긋나면 안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숨막히는 긴장 속에서, 김광한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동료 DJ 김기덕과 '마돈나' 발음으로 논쟁을 할 때도, 가수 조용필의 팬과 옛 시절을 추억하며 담소를 나눌 때도 그랬다. 시간이 흐를 수록 그의 눈은 반짝임을 더해갔다.

    대단했던 시절의 그를 만나본 적도 없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면서도 만면에 소년같은 미소를 그린 그가, 지금 가장 어울리는 자리에서 빛나고 있음을.

    1시간 30분 간의 라디오가 끝나고 김광한은 잠시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열기가 식지 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모든 긴장이 풀어져 피곤할 텐데도 그는 지친 기색 없이 명랑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오직 열정만이 그를 움직였다. 1년 전 접은 라디오 생방송을 다시 결심한 이유도 '라디오 스타' 손근필 PD의 열정 때문이었고, 뜨거운 사람들과 스튜디오는 그에게 감동을 안겼다.

    한 때 최고의 인기를 누린 DJ였던 그에게는 인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아무도 다루지 않는 이야기'였다. 무전여행을 떠나는 청춘처럼 김광한은 내게 "우리는 겁없이 남들이 하지 않는 것들을 한다"고 선포했다.

    고인은 그 약속을 지켰다. 라디오 방송으로, 음악으로, 재능 기부를 위해 지방으로 떠나려 했던 마지막 행보로.

    그로부터 5개월 뒤. 정식 기자로 회사에 입사한 나는 우연히 복도에서 그를 만났다. 머뭇거리며 인사를 하고, 이제 정식 기자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멋 모르는 인턴인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그에게 꼭 그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역시나 제 일처럼 기뻐하며 웃어준 그는 "열심히 하라"며 진심어린 응원을 건넸다. 그것이 고인과의 마지막 기억이다.

    어느 새 입사 2년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 나는 꽤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당연히 내 인터뷰 실력은 더 능숙해지고, 유연해졌다. 그러나 아마 첫사랑과도 닮았던 생애 '첫' 인터뷰의 두근거림은 이제 다시 느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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