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호텔 신관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건설 비화가 공개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을 총괄했던 손정목(88)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통해서다.
모두 5권으로 이뤄진 이 책에 따르면 1970년 11월 13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고 한다.
이 날은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돼 제조 정지 명령이 내려진 날인데 박 대통령이 이를 '조치'해주며 호텔롯데를 지어 경영해달라고 신 회장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 날을 '롯데재벌 탄생이 결정된 날'로 기록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신 회장의 만남이후 불가능했던 호텔롯데 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손 교수는 당시 민주공화당 실세이자 권력의 핵심이었던 김종필 의원과 양택식 서울시장이 자신을 불러 호텔롯데 건설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신 회장의 막대한 재산을 부동산 상태로 모국인 한국에 투자해 남겨두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손 교수의 주장이다.
호텔롯데 건립은 신 회장의 소공동 반도호텔 인수에서 구체화됐다.
신 회장은 1974년 박정희 정부의 반도호텔 민영화 계획에 따라 이 호텔을 42억원에 사들였다.
신 회장은 이어 반도호텔 옆에 있던 국립중앙도서관까지 매입했다. 이 역시 국립도서관을 신 회장에게 매각하라는 윗선의 지시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내 중심에 있던 국립중앙도서관은 교통편이 나쁜 남산으로 옮겨가야 했다.
손 교수는 뿐만 아니라 신 회장이 소공동에 둥지를 틀었던 동국제강, 아서원, 반도조선아케이드 부지까지 정권의 비호아래 몽땅 사들였다고 주장했다.
7천여 평에 이르는 막대한 부지였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은 거액의 부동산취득세와 재산세, 소득세 등을 면제받았다고 한다.
외자도입법 덕분이다. 당시 외자도입법은 외국의 자본을 유치하기위해 각종 세재 혜택을 파격적으로 제공했는데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신 회장이 외자도입법의 적용 대상자였다.
호텔과 백화점 건립에 사용된 각종 자재 역시 관세와 물품세를 면제해 주던 외자도입법 덕분에 모두 세금 부과 없이 반입됐다.
당시 강남 개발에 한창이었던 박정희 정부는 강북 개발 억제를 위해 강북일대에 백화점 건립을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이를 비켜가기 위해 지금의 롯데백화점을 '롯데쇼핑센터'라는 이름을 붙여 개장했다.
한편, 손 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는 유하 감독의 영화 '강남1970'의 토대가 됐던 책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강남 개발의 흐름을 타고 넝마주의에서 조폭으로 변신해 간 두 형제의 우애와 배신을 얼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 개발 과정의 이면을 낱낱이 드러내는 역사물이자 시대 고발물의 노릇도 한다.
강남 개발전 과정이 당시 청와대와 안기부가 주도한 '박정희 대선자금 프로젝트'라는 점을 암시하거나 이를 위해 박정희 정부가 몰래 땅을 사놓은 이후에 개발계획을 발표해 막대한 차익을 거두는 장면 등이 그 것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는 서울시 각종 용역보고서, 판결문, 속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기록됐다.
저자인 손 교수는 1970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