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범국민 추모제' 참석자들이 세월호 광화문 분향소로 행진 중 경찰병력과 대치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지난 4월 세월호 추모 집회 당시 경찰과 집회 참가자가 거세게 충돌한 것과 관련해 경찰이 '차벽설치'(경찰 버스로 집회현장을 둘러치는 행위)는 정당했다는 보도자료를 내 논란이 예상된다.
당시 폭력 시위에 가담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강모(47·남) 씨가 1심 재판부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경찰이 이를 '차벽' 정당화 논리로 이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당장 나온다.
앞서 지난 2011년 6월 헌법재판소는 "경찰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시민들의 통행을 전면적으로 통제한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한다"며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 "특수공무집행방해 유죄, 차벽은 적법?"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는 19일 '세월호 집회시 경찰 차벽 설치는 적법'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경찰은 자료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 재판부의 판결내용을 인용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는 지난 4월 18일 '세월호 1주기 범국민행동' 집회 때 경찰관 14명을 폭행하고, 경찰 안전펜스 등을 손괴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은 "'경찰의 차벽설치가 위법한 공무집행이기 때문에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가 성립하지 않고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강 씨 변호인의 주장을 법원이 모두 배척하고 유죄를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이번 판결은 특히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지난 4.18 집회 당시 경찰 차벽 설치의 적법성을 직접적으로 명백하게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강 씨는 실제로 다른 시위대와 함께 추모집회 당시 서울 광화문 인근에 설치된 안전펜스를 뜯어내고 이 과정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가 인정됐다.
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재킷 등을 이용해 신원이 밝혀지지 않도록 해 경찰의 채증도 피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강 씨 등 시위대는 느슨한 방어막을 구축한 경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안전펜스와 경찰이 들고 있던 방패를 걷어내기로 공모한 뒤 경찰들에게 실제로 폭력을 행사했다"며 "특수공무방해치상에 대한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 "차벽의 적법성 여부, 범죄 성립에 영향 미치지 않아"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하지만 강 씨의 당시 폭력행위는 경찰이 설치한 플라스틱 안전펜스 주변과 방패를 들고 서있던 경찰들 앞에서 벌어진 것으로, 차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제로 재판부는 "강 씨의 범행은 차벽이 아닌 경찰병력에 의해 차단된 지역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차벽 설치의 적법성 여부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범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경찰의 캡사이신 사용 행위는 정당했고 또 물대포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한 공무집행이라는 것이고 이에 대항한 강 씨는 유죄라는 취지다.
그러나 경찰은 자료에서 이 부분을 생략했다.
대신 '차벽설치 및 물대포, 최루액, 캡사이신 사용은 위법한 공무집행이기 때문에 특수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강 씨 변호인의 주장을 법원이 배척했다는 이유만으로 차벽 설치는 적법하다는 논리비약을 시도한 것.
이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의 판결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곳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고 그 당사자인 경찰은 그 법정신을 중시해야 하는데 법원의 판결을 차벽이 적법한 것처럼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또 "차벽 설치가 완전히 정당하다는 경찰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올초에 차벽과 관련해 비판이 일자 코너에 몰렸다고 생각하는 경찰이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 재판부 "당시 차벽 정당" vs 법학자들 "아쉬운 판결"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다만 재판부는 "당시 시위대 6,000여명은 경찰의 폴리스라인과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세종대로 전차로를 점거한 채 광화문 누각 방향으로 미신고 행진했고, 청와대 방향으로 진출하려는 시위대와 경찰병력이 충돌해 시민들의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시위대가 세종대로로 진출한 이후 경찰은 순차적으로 차벽을 설치했고, 차벽을 동서로 평행하게 설치해 동서간의 교통소통을 확보했다"며 "시위대의 진행을 제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차벽 자체가 정당하다는 취지는 아니지만 4.18 집회 당시 설치된 차벽의 정당성은 인정한 것.
이에 대해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차벽은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의 의미는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 있거나 차벽 설치 외에는 방법이 없을 때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하라는 것"이라며 "당시 경찰이 시위대의 폭력을 예단해서 선제적으로 차벽을 친 것을 정당화한 판결 자체도 문제"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아직 1심 판결에 불과한 데 서울경찰청에서 '차벽이 정당했다'고 단정해 해석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자 견강부회"라고 비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집회 시위의 자유는 숨쉬는 것과 같은 기본권으로 보장받아야 한다"며 "시위 자체에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사후적으로 차벽 설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세월호 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4월 20일 "집시법 2조 5호에 따른 '질서유지선'에 규정된 띠, 방책(防柵), 차선(車線) 등의 경계표지(標識)에 경찰버스(차벽)도 포함된다"고 발언해 논란을 낳았다.{RELNEWS:right}
이러한 발언에 대해 많은 법학자들은 "집회 시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집시법에 차벽을 포함시키는 것은 관련 법률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판단"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