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궁민. (사진=935엔터테인먼트 제공)
주인공보다 화제가 된 주연급 조연들은 많았다. 그러나 남궁민처럼 회마다 인상적인 연기로 호평받은 배우는 흔치 않다.
그는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셰프 권재희 역을 연기했다. 주로 서브 남자주인공을 도맡아왔던 남궁민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해보면 특별한 것은 없었다. 러브라인조차 없는 악역이라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그런데 사람들은 놀랐다. '그' 남궁민이 '저' 남궁민이라는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됐다. 담담한 말투는 절로 소름이 끼치고 부드럽게 웃는 얼굴은 어딘가 섬뜩했다. 단순한 서브 남자주인공이나 살인마가 아닌 '남궁민'이 연기하는 '권재희'가 주목받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몇년 째 따라오던 비운의 짝사랑남 수식어는 그를 떠나갈 수 있었다. 16년 연기 내공이 드디어 빛나는 자리를 만난 것이다.
갑자기 쏠리는 관심에도 정작 본인은 초연하기만 했다. 오랜 배우 생활이 공이 아닌지, 웬만한 것에는 흔들리지 않는 굳센 심지가 엿보였다. 비움으로 더욱 채울 줄 아는 배우, 남궁민과 나눈 이야기들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봤다.
▶ 연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어머니가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공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수학만 하더라. 학교 다니면서 수학을 제일 싫어했는데 그런 학과인지도 모르고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간 거다. 바보같은 경우가 아닌가. 그래서 어머니한테 거짓말 치고 PC방도 가다가 MBC 공채 탤런트 시험을 보고 떨어졌다. (연기가) 엄청 재미있더라. 그래서 이걸 한 번 해볼까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 남궁민이 생각하는 배우의 득과 실은 뭐가 있을까.- 일단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목적은 아니었다. 연기하는게 좋은데 돈까지 주니까 그게 좋은 거다. 너무 몰아서 찍다보면 몸이 힘들고 그것 때문에 짜증이 난다거나 인간관계에도 짜증을 부리는 것, TV 등에 노출돼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 등이 불편하긴 하다. 그러나 그거 빼놓고는 직장 다니는 것보다 나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 본인이 추구하는 연기 스타일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절제미 있는 연기를 좋아했었다. 시대가 변할 수록 카메라가 가까이 들어오기 때문에 굳이 표정을 지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자제하거나 절제해도 충분히 보일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적인 표현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
▶ 벌써 16년 차 배우다. 연기적으로 얻은 것이 많을 것 같다.- 순발력이 정말 많이 생겼다. 순간적인 대사 암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계속 하니까 어느 순간 되더라. 작품 속에서 뒤지지 않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배우가 아는 것들이 많아진다. 쉬워지는 것은 아닌데 나아지는 것 같다. 저는 그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연기로 주목받았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남궁민이 이렇게 연기 잘했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 원래 이 정도는 했는데 그들이 못봤다고 탓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연기했다. 발버둥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일의 성패에 흔들리지 않고, 다음 작품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다음 작품을 받을 수 있는 탄력은 있겠지만 2~3개월 활동하지 않으면 바로 끝이다. 일단 드라마를 본 사람들에게 이미지 쇄신은 한 것 같으니까 다음 작품이 들어왔을 때 준비를 잘하려고 한다.
▶ '짝사랑 남자' 이미지가 강한데 여태까지 그런 캐릭터들을 맡아왔나?- 그렇지는 않다. 악역도 해봤고, 다양한 역할도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작품을) 보지 않으면 제가 어떤 연기를 했는지 잘 모른다. 인생이 그렇더라. (웃음)
▶ 지금이 남궁민 배우 인생의 정점일까?- 이걸로 정점을 찍으면 살 수가 없다. (웃음) 지금 정점을 찍지 않아 다행이다. 이 정도는 다음 작품을 잘 받아서 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배우들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활동을 하지 않으면 금방 또 잊혀진다. 사람들에게 저라는 배우를 인지시켰으니 아무래도 다음 작품 하기는 그 전보다 수월해졌다. 만약 이 시점에 잘 되면 끝까지 잘 되는 것 같다.
▶ 그럼 스스로 생각하는 정점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남궁민하면 딱 대표할 만한 작품이 떠오르는 것. 그게 바로 정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 관리도 하고, 노력도 하고,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올라가기 위해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배우 남궁민. (사진=935엔터테인먼트 제공)
▶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때도 꽤 주목받았지만 1년 정도 공백기를 가졌다.- 일을 일로 즐겼으면 상관 없는데 자꾸 머리로 생각하려고 했다. 정점을 찍지 못한 상황에서 좀 더 위에 있는 포지션을 하길 원해서 들어오는 작품을 많이 고사했다. (관심이) 갈수록 가라앉으면서 많이 쉬게 됐다. 그 후로 생각을 많이 바꿨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주어진 작품을 하고 있으면 내게 기운이 맞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 출연한 것도 그 연장선상인가?- 그 때(공백기) 이후로 정말 깨달은 것이 많다. 그 전까지는 연기에 매진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홍보차 나가는 예능프로그램도 출연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잘난 것도 없는데 저 혼자 빠지고 이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순리라는 게 있는데 제게 들어오는 운을 막는다는 느낌이었다. 그 후로는 팬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소속사에서 시키는 것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런 것들에 대해) 편하게 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 '우결'에서 가상 아내로 나왔던 가수 홍진영과 엮이기도 하는데.- 뉘앙스 때문에 그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커플팬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우결'이 예쁘게 잘됐고 1년이나 연장해서 했으니 그 이후에도 프로그램과 좋게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개인적 사생활까지 '둘이 꼭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그런 오해를 낳게 되는 것 같다.
▶ '우결' 끝나고 서로 연락은 하고 지냈나?- 오랜만에 홍진영에게 연락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내가 말을 조심한다고 하지만 보는 네가 기분이 나쁠까봐 걱정이 돼서 문자를 한다고 했다. 진영이가 자기도 기사들이 어떻게 해야 더 재밌는지 알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이해한다고 하더라.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편해졌으면 한다. 너무 '너희들이 어떤 사이냐'는 식으로 바라보니까 그런 부담때문에 서로 연락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1년 동안 호흡을 맞춘 것이고 동료가 될 수도 있는 건데 일각에서의 모습 때문에 친구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 '프로 우결꾼'이라고 불릴 정도로 리얼한 관계를 보여줘서 더 그런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연기를 한다고 하는데 이게 또 감정이 들어가는 거라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 얘기를 자세히 하면 '우결'의 시스템 등 함께 했던 프로그램을 배신하는 거라 말은 못한다. 그런데 그 흐름과 느낌은 정말 재밌는 것이 많이 나왔다. 사실 배우이기만을 바라는 것은 제 욕심이다. 예능을 했으니 충분히 엔터테이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서 차라리 (홍진영과) 사귀겠다. 그런 건 말이 안되지 않나. 심각하게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설명할 수도 없고, 제 말을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된다.
▶ 앞으로도 예능프로그램 고정 출연을 기대해봐도 될까.-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잘 선택해야 되는 것 같다.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해야 한다. '우결'이 끝났으니까 당분간은 하지 않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배우 남궁민. (사진=935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제 30대 후반이다.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제가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난리를 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여자친구가 생기면 좋겠지만 생기지 않는다고 하면 열심히 소처럼 일해야 되지 않을까.
▶ 실제 연애 스타일이 궁금하다.- 편하게 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나중에 보여준다. 그래서 늦게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신호를 줘도 잘 모른다. 눈치가 없어서 얄밉다. 진짜 몰라서 '왜?'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좋아하면 '밀당'(밀고 당기기)은 하지 않는다. 너무 좋다고 티내서 놓친 경우도 많다. 마음으로는 잘해주고 싶은데 표현하는 게 낯간지럽다. 무뚝뚝한 성격도 있고 그렇다. 사귄 지 오래되면 잘할 수 있다.
▶ 다른 인간 관계도 이와 비슷한가?
- 감독들한테 아부나 그런 걸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못한다. 사회생활의 불합리함을 뭔가 연기력으로 승화시킨 것 같다. (웃음) 어렸을 때는 그런 걸 못하니까 연기를 (열심히) 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제 나이와 감독 나이와 비슷해지더라. 그러다보니 편해졌고.
▶ 평소에는 뭐하고 지내나.- 운동하고, 밥 먹고. 밥 먹을 사람 없으면 혼자서 쇼핑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저녁 때쯤 집에 와서 TV를 본다. 그러다 밤에 누가 불러내면 술 한 잔 먹고 그렇다. 요즘은 너무 건수가 없다. 전화해서 술 한 잔 먹고, 영화보면서 졸다 잠들고…. 재미가 없다.
▶ 그럼 함께 촬영한 동료 배우들과도 술 좀 자주 먹겠다.- 저는 술을 좋아하는데 애들이 왜 이렇게 술을 안 먹는지. (웃음) 그래도 그나마 친해진 이들이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다. 나를 좀 보여주려고 하면 끝나니까 친해지기가 힘들다. 이번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도 주연 배우들 중에서 전화 번호를 아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과 늦게 친해지는 편이라 예전에도 항상 그랬다.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끝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