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를 감시하고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막아야 할 주무장관이 새누리당 행사에 참석해 '총선 필승' 구호를 외치는 건배사를 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은 지난 25일 천안 공무원연수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건배사로 '총선'을 외치면 '필승'으로 답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자 정 장관은 "덕담 수준에서 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국민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선 그는 부적절한 자리에 참석해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뒤 부적절한 해명을 했다. 선거를 관리할 주무장관이기에 그렇다. 특히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이 정치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행자부장관의 '총선필승 건배사는 관권선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법적으로도 이번 행태는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조 위반 논란을 초래했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27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정종섭 장관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중앙선관위에 고발했다. 최 부총리는 잠재성장률 관리를 통해 새누리당의 총선에 도움이 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역시 파문이 일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두 사람의 해당 발언이 선거에서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제9조 제1항과 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을 규정한 제85조 제1항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들이 총선을 7개월여 앞둔 시점에 발언을 했고, 발언 대상에 의원 뿐만 아니라 일반 공무원과 언론인이 포함됐으며 '총선 승리', '총선 일정에 도움' 등의 구체적인 표현이 사용된 점을 들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번 발언 파문이 몰고 온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부적절했다' '온당치 못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건배사에서 새누리당이라는 말은 안했다"든가 "아무 생각없이 덕담 수준에서 얘기한 것"이라는 해명은 법망을 피하려는 변명일 지 모르지만 국민을 우롱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선거법 제9조)는 지난 2004년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했던 바로 그 조항이다. 노 전 대통령은 "총선 때 열린우리당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다가 탄핵됐는데, 새누리당 지도부나 정종섭 장관의 주장을 따른다면 덕담 한마디 했다가 대통령이 탄핵된 셈이다.
정 장관은 헌법재판소 연구관과 서울대법대 학장, 헌법학회장을 역임해 누구보다 헌법의 가치와 선거중립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주무장관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본다. '‘건배사 한마디 때문에...'라고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선거의 공정성을 통해 보장되기 마련인데 신중치 못한 처신 때문에 공정선거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의심받는다면 스스로 물러나거나 해임조치도 감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