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이 청춘들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이 청춘들에게 보내는 편지

    [노컷 인터뷰] "존중과 따뜻함 결핍된 사회…현명하게 잃은 것 되찾아야"

    영화 '위로공단'의 임흥순 감독.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그는 평생을 변방의 예술인으로 살아왔다. 영화 '위로공단'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임흥순 감독은 여전히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예술을 꿈꾸고 있다.

    성공이나 명성 혹은 부, 그 어딘가를 쫓아서 가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현실을 잊으면 안되는 책임이 있을 뿐이다. 임 감독이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성장이 너무 빨라서 '나만 살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요. 예술이 그런 것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작업실에서 혼자 자기 세계를 펼치고 상상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렇지만 예술은 삶과 다르지 않고, 그 정서를 미학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예술을 위한 예술도 있죠. 단지 저는 삶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고 싶은 거예요."

    북적이는 카페 한 가운데에서 만난 탓일까. 아니면 임 감독 특유의 친근한 분위기 때문일까. 인터뷰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인생 이야기를 하듯이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20대 청년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기자에게도 '위로공단'은 반가운 영화였다.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담담하게 엮어낸 그 시선이 무엇보다 따뜻하게 다가왔다.

    "저는 (노동자의)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지금이 더 불안하고 공포스럽죠.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함이랄까요. 예전에는 좀 더 함께 하고 나누는 정서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정서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걸 느끼면 감상적이나 낭만적인 사람이 되고, 바보 취급을 당하죠. 저는 그런 정서, 따뜻한 감정들이 기계화되고, 개인화된 시대에 대안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영화 '위로공단'의 임흥순 감독.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위로공단'에는 영화감독이자 공공미술가인 그의 작업이 곳곳에 녹아 있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흰 천으로 얼굴을 가린 소녀들은 서로 어우러져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떤 대사도 없이, 모든 것은 몸짓으로만 이뤄진다. 임 감독은 그 독특한 이미지들 속에 '공포'와 '죽음' 그리고 '애틋함'을 담았다.

    "예전에는 환경적으로 좋지 않았죠. 먼지가 많으니까 천을 쓰고 일하기도 했는데 그게 제게는 마치 염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가려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우리가 무관심했던 분들의 얼굴을 다시 그려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그런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지금은 환경은 괜찮지만 심리적으로 짓눌려요. 그런 게 더 공포스러운 겁니다. 노동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건데, 직장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나 죽음의 공간이 되면 안되잖아요. 그런 느낌들을 담아내려고 했어요."

    임 감독은 이를 위해 3년 동안 66명의 여성 노동자들을 취재했다. 아직도 그들의 삶을 온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감사한 마음과 동행하고픈 바람은 가득하다.

    "그 분들이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박과 낭떠러지 위의 삶. 저는 이런 것들을 모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려고 하고, 함께 해보려고 했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일을 해보지 않았지만 그런 심리들을 삶에서 느끼기는 해요. 전혀 모르지는 않아요.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의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위로공단'에 나온 분들은 그런 현실에서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치사하게 살지 않은 분들이거든요. 저는 그 분들이 저를 비춰준 빛이라고 생각하고,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임 감독은 '위로공단'을 정치적으로 보는 시선에는 관심이 없다. 누구나 이 사회의 노동자이기에 그저 '위로공단'을 통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저는 제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요. 물론 정치적 성향은 있습니다. 그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반대하거나 정치적으로 볼 수는 없지 않나요? 그 전에 의논하고, 대화하고 서로 뭐가 다른지 알아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그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고 참여하고 의견이 다양해지는 것들이 정치적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실질적으로 삶에 필요한 부분들을 찾고 이야기하는 거죠. 좋은 사회는 의견이나 시선이 다양한 사회거든요. 불편한 지점에 있어서 좀 더 함께 행동하는 것이 무엇일까. 저는 이런 고민의 작업을 이야기한 거예요."

    영화 '위로공단'의 임흥순 감독.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관객들과는 좀 더 본질적인 삶의 문제를 공유하고자 했다. 굳이 많은 대중이 아니더라도 소수의 공감이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제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부분이 있죠. 저도 제게 질문을 계속해요. 답을 내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본질적인 문제 때문에 여성 노동자를 이렇게 바라보는가. 그건 노사문제도 진보 대 보수 문제도 아닙니다. 해야 될 부분이고 가장 큰 짐이잖아요. 이 작품만큼은 최대한 보는 분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런 문제들이 잘 공론화되길 바랐어요. 적은 사람들이 보더라도 그 한 사람이 느끼는 게 중요해요. 시대와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수의 힘과 에너지거든요."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존중과 과정이 결핍된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이곳에는 몇 가지 비극이 남았다. 파편화된 개인 속에서 나타난 결과론적 성향도 그 중 하나다.

    "각자의 일이 있고 존중받아야 하는 건데 '귀천이 없다'는 걸 말로만 배우죠. 몸으로, 가정 교육으로 그걸 익혀야 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하찮게 보는 사람은 사실 자신이 슬퍼지는 거예요. 자신이 존중할 줄 알면 상대방도 존중감을 가지게 되는 거니까요. 지금처럼 사람의 생을 파편화시키면 밟고 올라가야 하는 사회가 만들어져요. 굉장히 결과론적인 사회가 되는 겁니다. 실패한다 해도 행동은 아름다운 것인데 일단 결과가 중요하게 되거든요. 사실 자본이나 사회를 욕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얼마나 현명하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찾고, 조화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 고민해야죠."

    아이러니하게도 임 감독을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존중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방직 공장 노동자였던 어머니와 자신을 늘 지지하고 믿어준 여동생과 형수. 그들의 따뜻함은 풍족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임 감독이 단단하게 예술에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형수님이 지지하고 믿어준 감정들이 제 정서를 만든 부분이 있어요. 그 덕분에 사회와 부딪치고 싸우는 과정에서도 저를 찾아갈 수 있었고,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서를 보여주면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영화 '위로공단'의 임흥순 감독.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한 때 강해지기 위해 일류대를 지망하고 해병대에 지원한 적도 있었다. 지금 임 감독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선택이다. 그러나 '평범'이 미덕인 이 사회에서는 보편적이지 못한 정서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게 병이고 문제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의 감수성이 있는데 사회에 살면서 그걸 숨겨야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게 행복한 걸까요? 특이성을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게 좋지는 않죠."

    그런 시절을 지나 임 감독은 여전히 꿈을 좇으며 달리고 있다. 20대인 기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많은 청춘들이 '월세 받는 삶'을 꿈꾸는 지금, 꿈다운 꿈을 꾸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40대에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답은 간단했다.

    "자신의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해요. 그걸 위해서 변화하고, 계발도 하고, 만들어 가는 거죠. 행복한 개인을 찾아가는 겁니다. 언제나 사회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꿈을 이뤄온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상상하고 극복하면서 이 사회를 다양하게 만들어왔어요."

    20대 예술 노동자들에게도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랬더니 '예술가나 시민이나 똑같은 사람'이란다. 임 감독은 웃으며 먼저 20대에게 '파이팅' 응원을 건네고 말을 이었다.

    "생각이나 감각을 넓혀 가는 게 중요해요.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현실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죠. 예술은 가상세계에 머물기도 하지만 그러면 구체적인 현실과 멀어져요. 이 두 가지를 놓치면 안됩니다. 먼지 하나, 빨대 하나에서 또 다른 깊은 상상으로 들어갈 수 있거든요.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