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도 국회와 정부의 법 개정이 더뎌 37건의 법령이 그대로 법전에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재가 개정시한까지 못 박았는데도 이를 넘기면서 법의 공백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10일 헌재에 따르면 지금까지 모두 위헌 527건, 헌법불합치 169건의 결정 가운데 위헌 24건, 헌법불합치 13건은 법 개정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2월 이른바 ‘간통죄 위헌’ 결정도 이후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중이여서 형법에 버젓이 해당 조항이 남아있다.
지난 1992년 위헌 결정이 난 국가보안법 조항은 23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찬양·고무나 불고지죄의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한 조항으로, 찬양·고무죄를 반복할 경우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한 조항 역시 위헌 결정에도 13년째 법전에 기록돼있다.
논의 자체가 첨예한 이념 논쟁을 불러올 수 있어서 국회는 물론 법무부 역시 신중론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이 헌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법무부는 “국회의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우리의 안보상황, 남북관계, 국민적 합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바탕 위에서 신중하게 추진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같은 형법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미개정 법령 37건 중 법무부 소관은 17건으로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
이에 대해 전해철 의원은 “정부의 안일한 태도로 인해 법 공백이 발생하고 법 적용의 혼란이 생길 수 있다”면서 “법무부의 소극적 태도는 반드시 바로잡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 당시 사문화됐다 적용돼 논란이 됐던 전기통신사업법 조항도 “공익을 해할 목적”의 ‘공익’에 대한 의미가 불명확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재 결정이 났어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나왔지만, 이와 반대로 인터넷과 SNS상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의 맞불 개정안도 나오면서다.
약사나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열 수 없게 한 약사법 조항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15년째 손질하지 못하고 있다.
이 경우 헌재가 언제까지 법을 고치라는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는데, 개정안이 번번이 폐기됐고 보건복지부도 “개정 검토중” 입장뿐이어서 권리 침해 여지가 남아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을 처벌하는 이유였던 집시법 상 ‘야간 옥외집회 금지’와 관련해선 2009년 9월 헌법불합치 결정이 된 뒤 이듬해 6월말이던 개정시한을 넘겨 효력이 상실됐는데도 사법부의 무죄 판결과 달리 법 개정은 제자리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