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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대통령 일정의 정치학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2012년 5월 8일 오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 용산구 소재 용산 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해 배식봉사를 했다. 때는 바야흐로 원내대표 경선이 있기 하루 전. 오비이락이라고 치부하기엔 시점이 미묘했다. 당시는 친박 핵심인 이한구- 쇄신파 남경필-친박성향 중립 후보였던 이주영 의원이 3파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용산은 이한구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진영 의원의 지역구. 결과적으로 박심(朴心)이 통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앞둔 2013년 9월 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박 대통령과 동행할 경제사절단 7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그런데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회장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박 대통령의 7월 중국 방문 당시 국빈만찬에 초대받지 못한데 이어 연거푸 물을 먹은 셈이다. 재계서열 6위인 포스코 정회장은 8월 청와대에서 열린 10대 그룹 총수회동에도 빠졌다. 정부는 "포스코와 KT가 사절단 공모에 신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사퇴 압박설'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결과는 세간의 예측대로였다. 그해 11월 이석채 회장과 정준양 회장은 자진해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전략인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광역자치단체별로 설치했던 창조경제혁신센터. 지난 7월 17일 오후 3시엔 서울 광화문 KT 빌딩에서 서울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이 열렸다. 거의 모든 개소식 행사에 참석해 뉴스를 장식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정작 대한민국 1호 지자체의 개소식에는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국무총리도 불참했고 최양희 미래부장관이 '대타'로 참석했다.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가운데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불참한 곳은 서울이 유일했다.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야권의 유력한 주자인 박원순 시장에 대한 견제로 해석했다. 박 시장은 메르스 사태때 독자적인 행보로 여권의 눈총을 받은 바 있다.

    # 지난 7일 박 대통령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열린 대구광역시 업무보고에 참석했다. 대구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 다른 어느 곳보다 마음이 푸근한 곳이고 전원 여당의원이 포진한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환대를 받고 싶을 법했던 행사로 여겨졌다. 그런데 유승민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12명이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했다. 청와대가 초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안종범 경제수석과 신동철 정무비서관,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 등 TK와 연고가 있는 참모가 수행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인천 송도에서 열린 지역희망박람회에는 인천의 여야 국회의원 12명이 초청됐고, 그 중 상당수가 참석했다. 극히 대조적인 두 장면을 놓고, '배신의 정치'로 찍어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일정에는 치밀한 메시지가 숨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범해 보이는 방문과 초청 속에는 특정인을 키워주거나 배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기도 하다. 선거의 여왕이라고 일컬어지는 박 대통령은 이런 일정을 통해 고도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행위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일방적인 의사표현으로 흐를 염려가 있다. 자신의 뜻과 배치되면 분명한 배제의 신호를 보낸다. 때문에 박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여론과 호흡하거나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용산 방문으로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에서 수혜를 입은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로부터 1년 여 뒤 짧은 재임기간을 뒤로한 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로부터 2년 뒤 '민주공화국의 지엄한 가치'를 언급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소신을 괘씸죄로 삼고 충성도와는 반대 개념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한다면 건전한 정치발전 보다는 줄서기나 눈치보기가 만연할 것이다. 51대49 싸움이 펼쳐졌더라도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보수·진보를 떠나 100%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하는게 마땅하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은 '포용'을 강조하는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이라는 명연설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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