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이 남자친구 어머니로부터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늑장, 오인 출동이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경찰은 여성이 살해당하기 30분 전쯤 "어머니가 칼을 가지고 여자친구를 기다린다"는 신고를 접수했지만 인근의 다른 가정폭력 사건과 오인해 현장에 늑장 출동하면서 아까운 생명이 희생됐다.
1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도 예정돼 있어 위원들의 날선 문제제기가 예상된다.
◈ 경찰 다른 가정폭력 사건으로 오인해 '늑장 대응'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서 60대 여성이 아들의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12일 저녁 9시 42분쯤.
서울 용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평소 우울증 약물을 복용했던 박모(64.여)씨는 이날 저녁부터 피해자 이모(34)씨와 전화통화로 심하게 다퉜다.
두 사람이 사귀는 것에 양가 부모들의 반대가 심했고 평소 예비 시어머니 박씨와 예비 며느리 이씨도 다툼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자신의 아들이 술을 마시면 모두 예비 며느리 이씨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고,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도 이 문제로 심하게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두 사람이 전화로 심하게 다툰 뒤 이씨가 용산구 한남동 자택으로 찾아가겠다고 하자 박씨는 길이 20cm(손잡이 10cm 칼날 10cm) 과도를 들고 이씨를 기다렸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상황이 심상찮음을 느낀 아들 이모(34)씨는 이날 저녁 9시 12분쯤 "어머니가 칼을 들고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며 다급하게 경찰 112센터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112 신고센터는 1분 뒤인 9시 13분 관할 경찰서인 서울 용산경찰서 한남파출소에 출동을 지시했다.
하지만 신고 접수 10분 전인 9시2분쯤 아들 이씨가 신고한 곳에서 약 68m 떨어져 있는 다른 주택에서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고, 한남파출소 소속 순찰차 두 대는 엉뚱하게도 이곳에서 칼을 들고 있는 박씨를 찾으면서 출동이 지연됐다.
9시 2분 신고를 받고 출동한 42호 순찰차가 가정폭력 신고 주소지로 출동했고 이후 지원 지시를 받은 43호 순찰차도 비슷한 곳에서 칼을 들고 있다는 박씨를 수소문한 것.
애가 타던 박씨의 아들은 9시 27분쯤 "어머니가 칼을 들고 있다"고 재차 신고를 했지만 이때까지도 순찰차 두 대는 약 68m 떨어진 다른 가정폭력 신고 주택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42호 순찰차가 최초 가정폭력 신고지로 출동하고, 43호 순찰차도 같은 곳으로 지원을 나가 순찰차 두 대가 동시에 다른 신고지에 있었다"며 "현장 근무자들이 모니터를 제대로 확인만 했어도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장 출동 경찰관들은 최초 신고 25분이 지난 9시 37분쯤에야 접수된 신고 두 건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후 43호 순찰차 경찰관들이 5분 정도 뒤인 9시 42분쯤 걸어서 사건 현장에 도착했지만 예비 시어머니 박씨는 예비 며느리 이씨를 흉기로 찌른 직후였다.
현장에서 확보된 폐쇄회로(CC) TV에도 경찰관 도착 직전 박씨가 이씨에게 흉기를 휘두른 장면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경찰관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인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휘실과 현장 경찰관이 무전으로 소통했다"며 "지령실에서는 신고 접수가 동일 건이 아니니 확인해보라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같은 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흉기에 명치를 찔린 이씨는 약 8분 뒤 구급차로 인근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 도중 끝내 숨졌다.
사건 현장에서 파출소까지의 거리는 1.7km로 차량 정체가 없을 경우 순찰차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경찰은 해당 파출소 근무자들을 상대로 대응이 늦어진 경위에 대해 감찰에 착수했다.
앞서 강신명 경찰청장은 "국민 치안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신고가 접수되면 관할과 기능을 막론하고 가장 먼저 현장에 경찰관을 출동시키겠다"며 현장 치안 대응을 여러차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