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화에만 졌네' 한화는 지난 시즌 뒤 김성근 감독(왼쪽)을 비롯해 FA 시장에서 거액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올해도 가을야구가 무산된 가운데 삼성은 류중일 감독 부임 이후 5년 연속 정규리그 제패를 이뤘고 통합 5연패를 바라보고 있다.(자료사진=한화, 삼성)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정규시즌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6일 KIA-LG의 광주 경기가 남아 있으나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KIA의 공동 6위 도약 여부만이 남아 있다.
올 시즌 정규리그는 삼성의 기록 잔치로 끝났다. 88승56패, 10개 팀 중 유일한 승률 6할대(.611)로 역대 최초 5연패를 달성했다. 삼성은 5일 KIA와 최종전에서 장원삼이 10승을 따내면서 역시 사상 첫 선발 5명 +10승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삼성은 안지만이 한 시즌 최다 홀드(36개) 기록을 세웠고, 차우찬의 탈삼진왕(194개), 임창용(39)의 역대 최고령 구원왕(33세이브), 류중일 감독의 역대 최소 경기 400승까지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어느 팀도 삼성의 정규리그 독주를 막지 못했다. 그게 벌써 5년째다. "2010년대 삼성 왕국을 세우겠다"던 류 감독의 도전적 발언이 현실이 됐다.
반면 야심차게 올 시즌 반전을 노렸던 한화의 날개는 꺾였다. 8년 만의 가을야구를 향해 비상하는 듯했지만 후반기 추락을 막지 못했다. 한화는 결국 최종 6위로 시즌을 마치게 됐다. 최근 3년 연속 도맡았던 꼴찌에서는 벗어났으나 시즌 전 과감한 투자를 감안하면 성공보다는 실패 쪽에 가까운 결과다.
삼성의 독주와 한화의 실패가 KBO 리그에 주는 교훈을 무엇일까. 투자와 구단 운영의 방향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투자는 하되 어디에 하느냐와 미래를 바라보는 운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화의 공격적 영입, 누가 남았나지난 시즌 뒤 한화는 공격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섰다. '야신' 김성근 감독을 계약금과 연봉 5억 원 등 3년 총 20억 원에 모셔왔다. 그룹 수뇌부의 전격 결정에 따른 조치였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김 감독의 요청에 한화는 FA(자유계약선수) 투수 3명을 데려왔다. 삼성에서 FA로 풀린 배영수와 권혁, KIA에서 나온 송은범을 잡았다. 배영수와 3년 총액 21억 5,000만 원, 송은범과 4년 총액 34억 원, 권혁과 4년 총액 32억 원 계약이었다. 지난해 15승을 합작한 3명에게 87억 5000만 원이 들어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화는 이후 베테랑 3명을 더 영입했다. 투수 임경완과 9000만 원, 내야수 권용관과 7000만 원, 외야수 오윤과 7800만 원에 계약했다.
'이때만 해도...' 지난해 12월 FA 3인방 입단식 때 함께 했던 한화 송은범(왼쪽부터)-김성근 감독-권혁-배영수의 모습.(자료사진=한화)
하지만 이들 중 요긴하게 쓰인 선수는 권혁 정도다. 권혁은 후반기 부진했으나 9승13패 17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ERA) 4.98을 기록했다. 김 감독이 "선발 10승 이상은 해줘야 한다"던 배영수는 4승11패 ERA 7.04, 송은범은 2승9패 4세이브 1홀드 ERA 7.04에 그쳤다.
권용관은 116경기 타율 2할2푼 5홈런 22타점 15실책을 기록했다. 임경완은 방출됐고, 넥센 시절 대타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오윤은 올해 1군에 1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2013시즌 뒤에도 한화는 FA 시장에서 거액을 풀었다. 정근우, 이용규와 각각 4년 70억 원과 67억 원에 계약했다. 물론 이들은 올 시즌 맹활약하며 몸값을 해냈다. 정근우는 타율 3할1푼6리 148안타 12홈런 66타점 99득점 21도루, 이용규는 타율 3할4푼1리 168안타 94득점 28도루를 올렸다.
하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였다. 기본적으로 선수층이 얇았던 만큼 전력 강화를 위해 FA 영입은 필수였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한화는 외국인 선수 농사에도 실패하면서 가을야구가 좌절됐다. 당장의 부산스러운 전력 강화가 성적으로 연결되진 않은 것이다.
▲삼성, 이제 정말 돈 쓰는 법을 안다이는 삼성의 긴 호흡과 독주와 뚜렷하게 비교된다. 삼성도 한때는 근시안적인 투자를 일삼았다. 예전 김기태, 김현욱 등 쌍방울 공수 핵심과 해태 에이스던 임창용, 현대 왕조를 일군 심정수, 박진만 등에 거액을 쏟아부어 데려왔다.
물론 결실은 있었다. 김응용 감독까지 해태에서 데려와 2002년 LG를 누르고 염원이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승엽, 양준혁, 마해영 등 초호화 멤버를 거느리고도 우승을 못 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더욱이 삼성은 그런 멤버로도 2001년 두산에 거짓말처럼 우승을 내준 바 있다.
하지만 삼성은 '한국판 악의 제국'에서 차츰 변모하기 시작했다. 2005년 선동렬 감독 부임 이후 외부 인력을 수혈해오기보다 충실하게 내부 자원을 키웠다. 타팀에서 막대한 돈을 들여 데려온 선수는 2010년 장원삼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1996년부터 이어온 경산 볼파크와 올해 개장한 'BB 아크(Baseball Building Ark)'에서 육성된 선수들이 빛을 봤다. 삼성이 최근 배출한 신인왕 중 최형우(2008년), 배영섭(2011년) 등은 모두 중고 신인이다. 신인 때 크게 빛을 보지 못했으나 갈고 닦여져 만들어졌다. 지난해와 올해 히트 상품 박해민과 구자욱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삼성의 미래' 지난해와 올해 삼성의 히트 상품으로 꼽히는 중고 신인 박해민(왼쪽)과 구자욱.(자료사진=노컷뉴스)
투자를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대신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시즌 뒤 FA 전략이었다. 삼성은 윤성환과 4년 80억 원 당시 역대 투수 최고액, 안지만과 4년 65억 원 역대 불펜 투수 최고액에 계약했다. 윤성환의 기록은 이후 장원준(두산과 4년 84억 원)과 윤석민(KIA와 4년 90억 원)에 깨졌지만 역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배영수, 권혁 등 2000년대 공신들과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도 나름 대우했다고 하나 이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둘은 계약 조건과 등판 기회 등을 이유로 떠났고, 삼성도 잡지는 않았다.
공신 홀대에 따른 팬들의 비난이 있었으나 삼성은 꿋꿋했다. 삼성 관계자는 "권혁은 기회를 찾아 떠났고, 배영수에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삼성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투자가 됐다. 여전히 삼성은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운영비가 지출되는 구단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단기간의 성과를 위한 투자가 아니다. 장기적 비전을 보고 내실을 다지며 필요한 선수에는 과감한 투자를 하는 현재와 미래가 어우러진 투자를 한다. 그게 바로 통합 5연패를 바라보는 결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