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캘리그라피, 강병인 작가의 작품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스마트 폰 화면터치가 익숙한 요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손 글씨 열풍이 불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정작 손 글씨 쓸 일은 줄었는데도 사람들이 다시 붓과 펜을 잡기 시작했다.
◇ 글씨에 생명을 불어 넣는 '캘리그라피'
직장인 남모씨(33·서울 합정동)는 지난 3월부터 취미로 캘리그라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감성이 메말라가는 기분이 들어 내린 결정이다. 처음엔 붓을 잡는 것조차 어색하고 힘들어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전시까지 할 정도로 실력이 늘고 집중력도 생겨 만족해하고 있다. '악필 교정'도 덤으로 얻었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아름답게 쓰다'라는 어원에서 비롯돼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일컫는다.
"캘리그라피를 하는 동안 잡념을 잊고, 오로지 글자에 집중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필사가 아니라 글꼴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거라 마치 글씨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 같이 느껴지거든요."
직장인 남모씨의 캘리그라피 작품
국내 캘리그라피의 선두 주자인 강병인 작가(강병인캘리그라피연구소 '술통' 대표)역시 캘리그라피의 매력으로 새로운 글꼴 탄생을 강조했다.
강병인 작가는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 시킨 캘리그라피를 선보여 한글 글꼴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글씨 예술가'로 유명하다.
<엄마가 뿔났다=""> <대왕세종> <정도전> <미생> 등의 TV 드라마 타이틀과 <의형제> 영화 타이틀 그리고 소주 '참이슬' 로고 등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강병인 작가는 "글씨 하나하나에 스토리를 담고, 특히 우리말과 글이 가진 소리와 의미를 글꼴에 담아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글꼴로 탄생시키는 것이 캘리그라피"라며 "딱딱한 디지털 글자와 달리 캘리그라피는 글씨를 쓰는 사람의 개성과 감정(희노애락)을 글자에 녹여낼 수 있다"고 말했다.
◇ '어느 날 나에게 편지가 왔다'
'어느 날 나에게 편지가 왔다' (사진=어느 날 나에게 편지가 왔다 홈페이지 캡처)
'낭만과 여유 그리고 위로가 필요하신 분, 일상을 나누고 싶은 분, 그냥 손 편지가 받고 싶은 분, 누구에게나 직접 만든 엽서에 손 편지 써드려요'
지난 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손 편지를 써주겠다는 글이 올라온 적 있다. 이름하야 '손 편지 프로젝트'. 따뜻한 손길이 그리운 사람에게 손 편지를 써서 희망과 위로를 주는 프로젝트다.
최초 제안자 김미나씨는 "지난해 개인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휴식기를 가진 적이 있는데 그때 친구한테 오랜만에 안부 겸 편지를 쓴 것이 계기가 됐다"며 "취업준비로 힘든 친구를 위로하는 편지를 쓰고 나니 또 다른 힘든 이에게 편지로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걱정을 안고 시작한 손 편지 프로젝트.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 프로젝트는 시작되자마자 편지를 받아보고 싶다는 신청이 쏟아졌고, 시작 9개월 째인 지금은 편지를 쓰겠다는 신청자도 늘어나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손 편지의 힘, 따뜻한 변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은 자유에요. 어떤 식으로 하든 시작만 알리고 하면 됩니다"
손 편지를 받고 싶거나, 혹은 편지를 써서 보내주고 싶다면 '어느 날 나에게 편지가 왔다'(http://letters.modoo.at)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신청하면 된다.
◇ 베껴 쓰기로 위로를 느끼다최근 일반인들 사이에 '캘리그라피'와 '손 편지' 못지 않게 주목받는 것이 바로 필사다. 명시나 명구를 손 글씨로 필사(筆寫·베껴 쓰기)하는 것이 새로운 힐링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유행한 어른들의 색칠공부 그림책 '컬러링 북'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림책을 마주하는 동안 잠시 일상을 벗어나 스스로 힐링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컬러링 북'의 의도였다면 '라이팅 북'을 통한 필사는 '문학'이라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데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한 자루의 펜과 종이만 있으면 감성치유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필사 인기를 반영하듯 출판계에서도 필사를 다룬 책이 속속 출간하고 있고, 대형 서점에는 필사 관련 책들을 한 곳에 모아놓거나, 필기구를 함께 전시하면서 필사를 유도하고 있다.
필사책 제대로 즐기기 |
최근 출간되는 필사책은 명시, 명구를 모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책에 써서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전문을 따라 쓰는 것도 가능하지만 시 중간중간 칸을 비워둬 자신만의 답을 적어볼 수 있도록 하는 등 '내가 완성하는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김용택 저, 예담 간, 1만2,800원) - 너의 시 나의 책(박준 외 3명 저, Arte 간, 1만3,000원) - 나의 첫 필사노트(김유정, 이상, 이효석 저, 새봄출판사 간, 1만2,000원) - 나를 찾는 필사시간 (나도향 저, 가나북스 간, 1만2000원) - 명시를 쓰다 (김소월, 윤동주, 이육사 외 2명, 사물을봄 간, 9,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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