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죠. 준비 많이 했어요"
가을비로 선선한 24일 아침 서울 용산고등학교 앞에서 만난 한국은행 신입사원 공채 응시자 김모(27)씨는 이같이 답변하며 웃었다.
다만 웃음이 그리 환하지만은 않았다. 한 주의 피곤이 쌓인 토요일 아침이었고, 그리는 직장 한은에 입사하려면 1천600여명의 경쟁자들을 넘어서야 한다.
한은 응시자 김연주(24) 씨도 "다른 기업들과 필기시험 날짜가 겹쳤지만 한은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이라 여기로 왔다"면서 "경쟁률이 높다지만 최선을 다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과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공기업 5곳이 이날 서울 소재 각 학교에서 일제히 공채 필기시험을 치렀다.
이른바 'A매치 데이'다.
A매치는 원래 축구에서 정식 국가 대표팀 간 경기를 의미하는 용어였으나 같은 날 시험을 치는 금융 공기업에 들어가려는 구직자들의 쟁탈전을 비유하는 말로도 종종 사용된다.
최고의 금융공기업 5곳이 동시에 필기시험을 치른 탓에 수험생들 사이의 눈치작전은 어느 때보다 심했다.
각 공기업의 최종 채용 인원이 다른 가운데 서류 전형 합격자 수도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1명이 여러 곳에 서류를 집어넣어 복수의 금융공기업에서 필기시험 자격을 얻은 경우가 많으므로 서류전형 합격자 경쟁률과 실질 필기 경쟁률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을 수 있다.
70명의 신입 직원을 뽑는 한은에는 1천600여명의 인원이 필기시험 응시자격을 얻었다. 여전히 23대1 가량의 경쟁률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약 70명을 뽑는 금감원에도 약 1천500여명의 서류 합격자들이 필기시험 응시권한을 갖는다.
10명을 뽑는 예보는 550명에게 필기시험 기회를, 70명을 뽑는 산은은 약 1천50명에게 필기시험 기회를 제공했다.
수출입은행은 800~900명이 겨뤄 최종적으로 40명이 합격한다.
서울대 졸업생 김모(27)씨는 "한은과 금감원, 무역보험공사 3곳에 원서를 내서 한은과 금감원에서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면서 "A매치 데이(Day)에 시험이 몰리다 보니 기회를 박탈당하는 측면이 있지만 수험생이 분산돼 경쟁률이 낮아지는 순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느 곳의 필기시험을 보느냐를 두고 눈치작전도 상당하다"고 털어놨다.
금감원을 지원한 로스쿨 재학생 한모(26)씨는 "로스쿨 재학생 중에서도 A매치 시험을 치는 사람이 상당하다"면서 "경쟁률과 개인 취향을 두루 감안해 시험 볼 곳을 결정하는데 고민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금융공기업 시험을 준비하는 인터넷 포털 카페에는 시험 하루 전날인 23일까지도 "어디 시험볼지 고민이다"라거나 "어디에 몰리냐"고 묻는 글이 많았다.
일부 금융공기업이 채택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도 화두였다.
정부가 과도한 스펙 쌓기 부담을 덜어주고 직무에 맞는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지난 3월 130개 공공기관과 협약을 통해 NCS에 기반을 둔 채용모델을 적극 도입하거나 확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수험생들 사이에는 NCS의 생경함에 당혹스러워하는 질문이 많았다. 일부 수험생들은 NCS를 준비하기 위해 고가의 강의를 수강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직업적 안정성과 보수 등 측면에서 대한민국 최고라는 점에서 '신의 직장'이라 일컬어지는 이들 5개 금융공기업의 올해 총 채용인원은 460명 안팎이다.
지원한 인원은 4만2천여명. 복수 공기업에 지원한 사람을 감안하면 2만명 안팎이 출사표를 낸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청년고용 확대 차원에서 지난해보다 채용규모를 8~26명씩 늘렸다고는 하지만 기관별 채용인원이 40~70명씩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