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선봉장 역할을 맡으면서 김무성 대표의 부친 고 김용주 씨의 친일행위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1940년대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는 등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이어 해방후에도 재일교포들을 '추잡한 사람들'이라고 비하하거나 국회의원시절 일본을 찬양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대표가 아버지의 친일 행위를 부정하면 할수록 김용주씨의 구체적인 친일행위가 드러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김무성 대표는 왜 부친의 친일 수렁에 빠졌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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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촌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후반까지 애국·항일운동에 적극적이었다가 태평양전쟁의 전초였던 1941년 이후 변절하여 일본의 대동아공영에 열성적인 친일분자가 됐다. 김무성 현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이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이 친일 행위를 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일 아니냐?= 그렇다. 이미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가 이를 부인하고 나서면서 다시 김용주씨의 구체적인 친일 행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드러난 김용주씨의 친일 반민족행위는 일제에 군용기 헌납운동을 주도했고, 당시 일본 아사히신문에 기명 광고를 게재해 비행기 헌납을 선동하기도 했다. 또 출정 황군에 대한 감사 전보 발송을 제안하고, 청년들에게 미영(당시 일본의 적)격멸에 나서라고 선동했으며, 황국신민화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기부금을 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9월 17일 배포한 자료집에는 김용주씨의 친일행위 다섯 가지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시기의 문헌자료 등 근거를 볼 때, 김용주의 친일 행위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김용주씨의 친일 행적이나 발언은,
① 문명기 등 특급 친일파와 함께 전시체제하 근로보국을 위한 국민개로운동 독려
② 출정 황군에 대한 감사 전보 발송을 제안하고, 징병제 실시에 기쁨과 감사를 표하며 영광이라고 찬양하였으며 청년들에게 미영격멸에 나서라고 선동
③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위해 신사건립, 내선동조동근론 전파, 징병원호사업 확립 등을 주장
④ 황국신민화 정책에 부응하여 대구국체명징관·대구신사 등에 기부금 헌납
⑤ 군용기 헌납운동 주도 등이다.
▶ 이런 일 외에도 새로운 내용이 더 있다는 거냐?= 지금까지 드러난 건 일제강점기 시기에 있었던 것이지만 해방 후에도 일본을 찬양하거나 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재일교포들을 비난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 사무처가 보관 중인 1950년 11월11일 '국회 임시회의 속기록'에는 당시 주일공사였던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씨의 발언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재일교포 사회에 대해 "패망해 본시(本時)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며 "정당한 안전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5%, 직업을 가졌으나 안전치 않은 사람이 15%, 나머지 80%는 직업도 없고 생활 근거도 없고 '분사리 망서리'하는 동포"라고 묘사했다.
김씨는 이어 "그들이(재일교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이제까지 시장에서 암취인 생활을 하고 또 폭력이라든지 기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없는 그러한 추잡한 행동을 해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김씨는 재일교포 사회에 대해 밀주유통을 일삼는 '암취인(闇取引·불법 상거래시장)'이라거나 '공산주의자' 등으로 표현하며 일본 내 반한(反韓) 감정의 책임을 교포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머리를 숙여야 할 대상"으로 지칭했다.
김용주씨는 국회의원이던 1961년에도 노골적인 친일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1961년 김용주씨는 여당이던 민주당의 참의원(상원의원격) 신분으로 일본경제시찰단을 국내에 초청했지만 이 일이 무산되자 이에 대한 논란을 국회에서 해명하면서 일본 자본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재일동포들을 '생활을 못해 넘어간 사람들'로 규정하면서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간게 아니라 자발적 이민자로 규정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편든 것이다.
1961년 당시 양원제 국회 중 상원 격인 참의회 본회의 회의록. 오른쪽에서 다섯번째 줄부터 "그 사람들이 일본에 가 있는 사람들이 생활을 못해서 일본에 가 있는 사람들인데..." 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자료=국회 사무처)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1961년 1월24일 참의회 본회의 회의록에는 김용주 의원이 전 회장이 일본의 처지를 헤아리거나 옹호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는 일본이 1951년 국권을 회복한 뒤 재일교포의 국적을 박탈하고 강제퇴거를 추진해 한일회담이 공전을 거듭 중인 시점이었다.
▶ 왜 이렇게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씨의 친일 행위가 계속 폭로되는 거냐?= 우리 속담에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있다. 핵심은 있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달 25일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선친의 친일 논란에 대해 적극 해명했는데 "일본이 일제 말기 패색이 짙어지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다 쏴 죽이겠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 1순위였다"고 주장했다. 아니 일본에 비행기를 헌납하고 기부금도 내고 일제를 찬양하는 광고도 하는 사람을 총살대상 1호라니 믿음이 가는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또 "그 시대 안중근, 윤봉길처럼 안 했다고 비난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일제 때 유학 가고 사업했으면 다 친일이냐?"며 "아버지는 일제 말기에는 (총살을 피해) 산속에 피해 있었고, 해방 소식도 산속에서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KBS 이인호 이사장이 조부의 친일 행적을 두고,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라고 주장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의 조부(이명세)는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친일인명사전에 '김용주'라는 이름이 3명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친일인명사전에 없다"며 "일제 때에는 사업을 하면서도 야학을 지원했고, 재산의 절반을 털어 포항에 학교(영흥초등학교)를 지었다"며 선친이 민족계몽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학교를 설립한 건 맞지만 친일을 한 김용주가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확인을 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9일 부친이 설립한 영흥초등학교를 방문해 부친의 흉상 앞에 부친의 평전과 최근 만든 100여쪽 짜리 '친일 반박 자료집'을 바쳤다.
김 대표는 "요즘 좌파들에 의해 아버지가 친일파로 매도되고 있다. 내가 정치를 안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자식된 도리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독립군 자금도 많이 댔다’' 말을 들었다"며 "과거를 들춰내 과장, 비판, 왜곡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말만 들으면 김용주씨는 매우 훌륭한 민족주의자요 애국자로 국사교과서에 실려서 후세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 대표의 이런 주장을 잘 대변하는 것이 지난 8월 15일 발행된 김무성 부친 김용주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라는 책이다.
▶ 어떤 내용의 책인데 그러는 것이냐?
'강을 건너는 산' 책 표지
= 급하게 책을 읽어봤는데, <강을 건너는="" 산="">은 크게 5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 스캡(SCAP) 전선 이상 없다 ― 김용주의 6.25
제2장 극일(克日)로 이겨낸 망국의 한(恨) ― 김용주의 일제강점기
제3장 새로운 통치자 미 군정과의 줄다리기 ― 김용주의 해방정국
제4장 독재와 무질서가 부른 4.19와 5.16 ― 김용주의 정치 경제
제5장 냉철한 머리 따뜻한 가슴 ― 김용주의 주변 이야기
이 책의 핵심은 2장 '극일로 이겨낸 망국의 한'이라는 부분이다.
이 책만 읽으면 김용주씨는 매우 훌륭한 민족주의자요 일제에 맞섰던 애국사업가가 될 것이다.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자거나 강제징병을 칭송하거나 한 일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김무성 대표가 바라는 국정화된 국사교과서가 이렇게 쓰여지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숨기고 싶거나 잊고 싶은 일은 없었던 일로 만들고 잘한일 자랑하고 싶은 일만 미화해서 공개하는 그런 교과서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책을 역사변조를 목적으로 급조한 기획상품으로 보고 있다"며 "친일을 감추고 애국으로 미화하며 친일파를 비호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책이 "김용주의 『나의 회고록 풍운시대 80년』을 거의 전재하다시피 하였으며 허다한 사실관계의 오류와 근거 없는 황당한 주장으로 객관성을 전혀 갖추지 못했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앞으로도 김무성 대표 부친의 친일 행적이나 그런게 드러날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 김무성 대표가 부인하면 할 수록 감추려고 할 수록 더 공개 되고 폭로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 대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를 적극 비호하거나 한국사학계 전체를 좌파로 몰며 한국사 국정화에 앞장서는 등 역사왜곡의 선도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점도 검증에 착수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김 대표의 부친은 일제시대에 기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친일반민족 행위를 했고 정부수립 이후에는 주일공사와 대한해운공사 사장, 참의원 등을 역임했기 때문에 자료나 기록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김 대표도 알지 못하는 친일관련 발언이나 행적들이 공개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다만 김 대표가 부친의 친일행위를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한다면 그런 문제가 추가로 드러나거나 비판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2004년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원은 부친이 일본 헌병 오장 출신이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뒤 사흘만에 당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신 의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부친의 일제강점기 헌병 복무 사실을 시인하면서 "독립투사와 유가족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한다. 언젠가는 밝히려 했는데 이제 기회가 됐다"며 사과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도 지난 8월 조부의 친일행위와 관련해 "민족 앞에 당당할 수 없는 저는 친일후손"이라며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들은 잊지 마시되, 그 후손은 어떤 길을 걷는지 지켜봐 달라. 저는 조부의 행적을 원망하지만, 조국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라며 공개 사과를 했다.
김무성 대표가 부친의 친일행적을 숨기려 하거나 거짓으로 변명하려 할 수록 문제가 확대되겠지만 솔직하게 시인하고 사과한다면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 부친의 잘못 때문에 김 대표가 비난 받는 건 일종의 연좌제 아니냐?= 그렇다. 사실 연좌제로 볼 수도 있다.
우리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친족의 분명한 친일 행위를 부인하거나 오히려 민족운동을 한 애국자였다고 강변한다면 이는 연좌제가 아니라 스스로 그 논란을 자초한 경우이므로 다르다고 봐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도 "기본적으로 연좌제에 반대"하지만 "친일행위자의 후손이나 연고자가 ①친일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을 하는 경우 ②친일행적을 부인 또는 왜곡하는 경우 ③친일청산운동을 방해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김 대표 측의 최근 대응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 연구소의 판단이다.
따라서 김무성 대표가 선친이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부친의 친일 행위는 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김무성 대표가 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서는 것이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 (사진=윤창원 기자)
= '정치인의 행위 중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김무성 대표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서는 것도 그런 정치적인 함의를 품고 있다.
첫 번째는 소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2013년 9월 역사 공부모임 '근현대사 역사교실'을 발족했는데 새누리당 의원의 3분의2 정도인 103명이 참여했다. 보수적 시각을 담은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를 강연자로 불러 의원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김 대표는 올해 9월2일 정기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정역사 교과서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이어 지난 10월 17일 당 중앙위원회 산악회 발대식에서는 "지금 대한민국 국사학자는 90%가 좌파로 전환됐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만 하는 역사전쟁이 시작됐다. 좌파의 사슬이 강해 어쩔 수 없이 국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김무성 대표는 그동안 부친의 친일행적이 그렇게 부각되지도 않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두고두고 김 대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부친의 친일 행적을 덮으려는 의도가 아니냐 하는 그런 분석이다.
김 대표를 잘아는 지인들은 이 부분에 무게를 싣는다. 아무래도 부친의 친일 행위를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한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가 대권을 꿈꾸지 않는다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부친의 친일 행위를 덮으려 할까?"라고 반문했다.
세 번째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모의 후광에 힘입어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건 2005년 사학법 투쟁이라는 분석이 있다. 김무성 대표가 이를 벤치마킹하려 한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측근들에게나 사석에서 "박 대통령은 30%의 공고한 고정지지층이 있지만 나는 그런게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선 이후 리얼미터의 주간 정례조사에 3주 연속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보수층의 지지가 결집되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박 대통령의 지시 내지는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문재인 대표와 만나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자기 뜻이 아니라 윗선의 뜻"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는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라는 말이다. 따라서 김무성 대표의 최근 행보도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공감대는 두 사람의 부친이 모두 일제시대 친일 행적으로 비판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영식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10월 26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카키 마사오의 딸 박근혜 대통령과 가네다 류슈의 아들 김무성 대표가 다르지 않다"며 "부친의 친일 행위를 철저히 부인하고 친일을 미화하기 위해 국정교과서 강행하는데 서로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가네다 류슈는 김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창씨개명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번째는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김 대표에게는 '꽃놀이 패'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새누리당의 한 중견 정치인은 "김 대표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꽃놀이 패이기 때문"이라면서 "대통령과 함께 국정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보수층에게 부각되고 지지층도 결집하면서 자신의 약점도 덮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김무성 대표라도 적극 나서지 않을 이유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갑수 대표는 김무성 대표가 앞장서는 이유로 "자신의 부친의 문제이고, 또 선거가 다가온 마당에 성적표가 곧 자신의 정치생명일 테니 박근혜 대통령 없이 또는 박 대통령과 척진 상태에서 선거하긴 힘드니 앞장서는 것 아니겠냐"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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