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돈을 벌어서 이자비용도 못 갚는 상태가 지속되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업생태계를 어지럽힐 뿐만 아니라 외부 충격이 올 때 또다른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좀비기업의 실태와 문제점, 대책을 두 차례로 나눠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
최근 기업구조조정과 관련된 굵직한 대책들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운영 방안,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방안, 기업은행·산업은행 역할 강화방안, 중소기업 신보증체계 구축방안 등이 보름도 안 되는 기간에 줄줄이 발표됐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의 수장들도 회의나 기자간담회, 조찬모임 등을 통해 수시로 기업구조조정의 필요성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발표된 대책을 보면 현실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산업은행이 떠안고 있는 비금융자회사를 정리하고 낙하산 인사를 제한하기로 한 것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연대보증을 없애고 위탁보증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들 대책이 한계기업, 좀비기업 문제를 해소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판단은 대책의 시행과 결과를 보면서 내릴 일이다.
현 단계에서는 당국이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 내놓고 있는 전체 그림을 보고 원칙이나 방향이 제대로 돼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기업구조조정은 경제살리기 위한 것…옥석가리기 신속하게 해야"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월 4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구조조정의 목적과 방법을 밝혔다.
“기업구조조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산성 있는 기업을 살리고 우리 경제에 활력을 높여서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엄정하고 철저한 평가를 통해 기업의 옥석 가리기를 신속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자구노력을 전제로 채권은행이 재무구조개선을 지원하여 살리고 지속가능하지 않는 기업은 빨리 정리하여 시장불안감을 해소하고 우리 경제의 부담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구조조정의 3원칙도 밝혔다.
첫째 엄정한 기업신용평가, 둘째 기업 자구 노력을 전제로 한 경영정상화, 셋째 신속한 구조조정이 그것이다.
향후 추진 계획과 관련해서는 유암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가 투자대상회사를 11월 내에 선정하고 철강과 석유화학, 해운업 등 취약업종은 정부 내 협의체에서 산업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 추진 방향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은행연합회가 주도하는 태스크포스(TF)에서 구조조정에 대해 인센티브(Incentive)를 부여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Disincentive)을 제거하는 등의 여신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목적과 원칙, 방향은 현 단계에서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합리적으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옥석 가리기를 신속히 해서 생산성 있는 기업을 살리자는데 잘못됐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업구조조정이 앞으로 잘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시작 단계로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기 가라앉아 있어 국민적인 공감대 불러일으키기 힘들어"무엇보다 기업구조조정이 왜 현 시점에서 시급한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
현 상황을 방치하게 되면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금융불안까지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업구조조정이 발등에 떨어진 불로 시급하다고 보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이것은 한계기업, 좀비기업이 갖고 있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 기업이 영업을 해서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을 정도로 어려운 기업인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부도가 났거나 나는 것은 아니다.
이들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기 여건에서 국민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
특히 총선이 6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서 정부 여당이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지 못한 기업구조조정을 밀어부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서민이나 근로자한테는
매우 위협적인 단어다. 경기가 가라앉아 있는데 좀비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기는 힘들다. 기업 문을 닫게 해서 돌아올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왜 분란을 일으키느냐고 할 것이다. 당국도 총선 변수도 있고 해서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좀비기업 비중 증가, 주로 대출만기 연장 때문"…금융당국도 책임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한계기업, 좀비기업이 우리 경제에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좀비기업이 제 때 퇴출되지 않고 계속 연명하면서 증가한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금융당국도 책임을 면할 길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은 “좀비기업 비중이 증가한 이유는 주로 잠재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만기를 연장해 주었던 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만기연장을 받은 좀비기업이 증가해 왔다는 사실은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이 부실기업의 대출만기 연장과 신규지원 등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왔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왜 이제 와서 갑자기 기업구조조정 문제를 들고나오는지, 당국은 그동안 뭐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 뿐만 아니라 같은 사안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총선에 지더라도 끝까지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중요"국민적인 공감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현재는 주로 금융위원장이 기업구조조정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형국이지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금융위원장 혼자의 힘으로 밀어부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업구조조정 반대 전선은 훨씬 강고할 수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기영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은 기업과 은행, 감독기관, 정치권 등 4자의 이해관계가 일치돼 기업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끌고 갔다. 기업 입장에서 구조조정을 미루는 것은 당연하다. 은행은 부실화되는 순간 실적이 안 좋게 나타나게 돼 가능하면 미루고 정부도 재임기간 실적이 나쁘게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 정치권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도 대기업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과 관계 맺었던 곳에서 일어난 것을 보면 정확하게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는 것이라고 이기영 교수는 강조했다.
“기업과 은행, 감독기관, 정치권 4자의 담합구조를 정부가 주체가 돼서 깰 것이냐가 기업구조조정 성공의 관건이다. 이를 뚫고 나갈 강한 의지가 정부에 있어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총선에서 지더라도 끝까지 해야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이번에는 정말 하겠는걸 하면서 움직이게 된다.”
◇"뉴컴퍼니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구조조정의 진짜 모습"당장 한계기업, 좀비기업을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이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인식을 전향적으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글로벌 구조조정 컨설팅업체인 알릭스파트너스의 정영환 한국대표는 “구정조정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인식이 매우 좁다. 근로자를 해고시키고 기업을 쪼개서 팔아 정리하는 선에서 머물고 있다. 당장 그렇게 해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긴 하지만 회사 경영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회사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경쟁력있는 회사가 되게 하느냐가 구조조정의 과제다. 그 회사의 경쟁력 있는 부분을 모아서 뉴컴퍼니를 만들어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구조조정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했다.
◇GM, NEW GM으로 경쟁력 있는 회사로 탈바꿈...대우조선해양과 대조이러한 구조조정의 모델은 미국의 최대자동차그룹 제너럴 모터스(GM)이다.
GM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지난 2009년 파산위기에 몰렸으나 정부와 금융기관의 신속한 공조 지원을 기반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GM은 파산보호신청에 들어간지 약 40일만에 미국 정부가 대주주인 ‘NEW GM’으로 거듭났다.
‘NEW GM’은 구조조정 전문 컨설팅을 받아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소형차와 친환경차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조직 슬림화와 빠른 의사결정구조로 소비자 요구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작지만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해 4년만에 정부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GM의 사례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수조원의 돈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부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과는 큰 대조를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으로서는 할 말이 많겠지만 대우조선해양 부실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당국도 책임을 면할 길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대우조선해양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백개 넘는 산업은행 자회사도 경쟁력 있는 회사로의 탈바꿈 노력 필요산업은행이 장기간 떠안고 있는 다른 자회사도 문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분 15% 이상을 출자한 118개의 비금융자회사(장부가액 2.3조원) 가운데 80%에 가까운 92개사를 5년 이상 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떠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은행의 한정된 정책금융 재원이 이곳에 장기간 묶여있을 경우 신규투자지원의 길이 그만큼 막히게 되는 비효율을 낳는다.
특히 이들 회사 가운데서는 재부실화의 문제도 상당수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비금융업종에 대한 비전문성과 경영관리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금융위원회는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이들 자회사가 전문성도 없는 산업은행 퇴직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보급하고 산업은행 영향력 확대의 통로가 되고 있는 현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왜 산업은행이 이들 부실회사를 떠안아 관리하고 있고 구조조정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립이 안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원칙적으로 산업은행 퇴직 임직원의 재취업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와 함께 GM의 사례처럼 부실회사를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그 기업을 살리기에 가장 적합한 전문경영인을 찾아서 모셔오는 등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STX도 2, 3년전에 선제적인 구조조정했으면 그렇게 망가지진 않았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