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스스로도 "68%가 반대했다"고 밝힌 국정교과서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마다 비밀의 고개, 모르쇠의 비탈이다.
집필진 공모가 9일로 마감됐지만,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지원자 숫자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심사 작업에 들어갔다. 모집인원인 25명만 간신히 넘긴 것으로 알려져, 집필진 자질 논란은 불가피하다.
과천 사무실 출입이 통제된 상태에서 유일한 대언론 창구이자, 실무 책임자이기도 한 진재관 편사부장은 이날 거의 전화를 꺼놓거나 받지 않았다.
다만 일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모 인원인 25명은 넘겼다"며 "집필진 구성엔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교육부와 국편이 지금까지 집필진 공개 여부 등을 놓고 거듭 말을 바꿔온 걸 감안하면 모집인원을 넘겼다는 말조차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 하지만 25명을 넘겼다 해도 이번 공모는 '대참극'일 수밖에 없다.
역사학계와 교육계 전반에서 집필진 참여를 거부한 가운데, 제대로 된 지원자가 나섰을 리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게 비밀에 부쳐진 채 '1:1'에 수렴하는 경쟁률을 뚫고 지원자 거의 대부분이 선정될 수밖에 없는, 웃지 못할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하게 됐다.
국편 내부에서도 공모 현황이나 초빙 진행 상황 등 집필진 구성 관련 정보는 김정배 위원장과 진재관 부장, 또 교육부에서 파견된 연구관 A씨 등 극소수만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편 한 관계자는 "이 연구관이 팀장을 맡아 교육부내 역사교육추진단과 긴밀하게 조율하면서 집필진 구성 업무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측은 "해당 연구관이 국편에 파견된 건 지난 8월말"이라며 "집필진 구성 업무를 맡고 있는 건 맞지만 국편 내부의 업무분장으로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국편은 오는 20일 초빙 작업까지 끝나면 지원자 숫자는 공개할 수도 있다고 밝혔지만, 집필진 면면은 끝까지 비공개한다는 방침이다.
{RELNEWS:right}교육부 황우여 장관도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정교과서가 완성될 때까지 집필진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심의를 맡을 편찬심의위원도 이날부터 13일까지 공모에 들어갔지만, 역시 그 면면은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어떤 자격을 가진 누가 쓰는지, 또 누가 심의하는지도 모를 '의문투성이'의 책자는 앞으로 15개월 뒤면 우리 아이들의 교실 책상 위에 '역사'란 이름으로 놓이게 된다.
헌법이 1919년 수립됐다고 못박은 대한민국의 역사도 비탄의 고개, 되돌림의 비탈로 뒷걸음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