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햄, 소시지 등 가공육이 1군 발암물질이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 이후 밥상 위에 '가공육 경계령'이 떨어졌다.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방황하는 소비자들을 향해 관련 업계와 정부는 적정량을 섭취하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안심시키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 불안한 시판 가공육, 수제로 즐기자
(좌) 집에서 직접 만든 수제 소시지와 (우) 수제 햄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높은 햄과 소시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공육을 즐겨 먹었는데 하루아침에 담배나 석면 같은 발암물질로 규정되니 소비자들은 황당하기만 하다. 특히나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시판 소세지나 햄에 길든 아이들의 입맛을 대체할 식품이 없어 방황하고 있다.
암 걱정 없이 햄과 소시지를 즐길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 인공첨가물 없이 손수 만든 수제 햄과 소시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주부 강민경(34·경기도 분당)씨는 어린 딸을 위해 수제 소시지를 만들기 시작했다가 이제는 수제 소시지 예찬론자가 됐다.
"가족끼리 여행을 자주 다니는데 늘 딸아이의 먹을거리가 문제라 시중에 파는 소시지를 사서 다녔어요. 그러다 한번은 소시지 한 팩을 냉장고에 넣지 않고 늦게 발견한 적이 있었어요. 장을 보고 4일이나 지나서 그 사실을 알고 소시지를 살펴봤는데 상하지도 않고 맛도 그대로였어요. 아무리 가공육이라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방부제와 첨가물이 들어갔으면 4일이 지나도록 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시지 사는 게 꺼려지더라고요."
가공육의 엄청난(?) 유통기한 능력을 경험한 강 씨는 그 뒤로 공장에서 만든 가공육을 끊고 수제 소시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 딸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수제 소시지가 이제는 가족 모두가 즐기는 먹거리가 됐어요. 가족모임에서도 종종 특별식으로 내놓곤 해요."
강씨의 수제 소시지를 맛본 가족들은 반응은 단연 좋았다. 시판 소시지보다 짜지 않고 무엇보다 어떤 첨가물 없이 건강하게 만들어진 소시지라는 점에서 가족들이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수제 소시지 만들기 |
다진 돼지고기와 다진 야채, 전분가루, 각종 양념 등을 버무린 다음 냉장숙성 시킨다.그 뒤 찜기로 20분간 쪄낸 뒤 기호에 따라 조리해 먹는다. (사진제공= 강민경 씨)
▲ 재료 다진 돼지고기 300g(양은 기호에 맞게 조절), 양파 1개, 붉은 파프리카 1개, 마늘 1쪽, 귀리가루(없으면 밀가루), 소금, 후추, 파슬리가루(파 등 야채는 기호에 맞게 준비).
▲ 만드는 순서 ① 돼지고기를 다진다. (정육점에서 2번 다져달라고 요청하든지, 아니면 집에서 믹서기로 곱게 간다) ② 전분가루를 준비한다. (귀리 가루 등 통곡 가루를 사용하거나 밀가루로도 가능하다) * 소시지에 야채를 넣게 되면 야채에서 나오는 물 때문에 반죽이 묽어진다. 이때 전분을 넣어 반죽에 점성이 생기게 한다. ③ 준비한 야채(양파, 마늘, 붉은 파프리카 등 기호에 맞게 준비)를 갈아준다. * 정해진 야채양은 없지만, 야채를 많이 넣을수록 돼지고기 잡냄새를 잡고 식감을 살린다. ④ 야채와 돼지고기, 전분 가루를 한데 넣고 소금 간을 해서 버무려 반죽한다. * 고기 반죽을 손바닥에 주걱으로 얇게 펴 바른 다음 손가락을 폈을 때 반죽이 손가락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점성이면 완성된 것이다. ⑤ 냉장고에서 숙성과정을 거친다. (강씨의 경우 4시간 정도 숙성) ⑥ 쟁반위에 반죽을 올리고 길쭉하게 모양을 만든다. (이때 비닐랩보다는 종이 호일이나 월남쌈에서 쓰는 라이스 페이퍼 등을 이용한다.) ⑦ 완성된 반죽을 찜통에 넣고 20분간 찐다. ⑧ 찐 소시지를 한 김 식혀 낸 뒤 프라이팬에 구워 먹거나 조리해서 먹는다. |
주부들이 수제 소시지를 선호한다면, 수제 햄은 캠핑족 사이에서 인기다. 평소 캠핑을 즐기는 이회훈(42·진단검사의학과 근무)씨는 WHO의 발표가 있기 전부터 수제 햄을 만들어 먹은 수제 햄 마니아다. 그가 처음 수제 햄을 만들게 된 건 '확장툴'이라고 불리는 캠핑용 조리도구를 가지면서부터다.
이씨는 "확장툴이 생기니 베이컨이나 햄을 만들어 먹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수제햄은 염지(고기를 일종의 양념액에 담가두는 것)기간을 일주일 정도 둬야 할 정도로 오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막상 만들어서 그 맛을 보면 모든 고생이 보상된다"고 말했다.
이씨의 수제 햄은 염지를 거친 스모크 훈제방식이다.
수제 햄 만들기 |
▲ 재료 돼지 등심(1kg), 피클링 스파이스, 소금(꽃소금), 황설탕, 마늘가루, 양파가루, 흑후추, 넷 케이싱(햄망) 그리고 물. 훈연기와 스모크우드, 브리켓 ※ 피클링스파이스 : 올스파이스, 월계수 잎, 계피, 고수 등을 여러재료를 혼합한 향신료로 주로 피클을 담글 때 쓰인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구매 할 수 있다. (가격대는 대략 2천 원 후반대부터 2~3만 원대, 양과 상표별로 가격대 상이) ※ 스모크우드 : 목질부만 미세하게 분쇄하여 봉 모양으로 굳힌 것으로 일단 불을 붙이면 모기향처럼 약 4시간 정도 연기를 낸다. 1시간 또는 2시간처럼 시간을 결정해 훈제한다든지, 장시간 훈제에 가장 적합) ※브리켓 : 성형탄으로 석탄이나 코크스 따위의 가루를 빚어서 만든 덩어리 탄. 스모크 훈제시 사용 (스모크우드와 브리켓 둘 다 마트 와 온라인쇼핑몰 구매 가능. 스모크우드는 4천 원~8천 원대, 브리켓은 1~2만 원대)
캠핑족 이회훈씨가 만든 수제 햄으로 수제 소시지와 달리 근막을 제거한 고기를 1주일간 염지를 하고, 세척 후 건조과정을 거친 다음 훈연과 베이킹으로 완성한다. (사진제공=이회훈씨)
▲ 만드는 순서 ① 근막을 제거한 고기를 사서 물에 1시간 이상 담가 핏물을 제거한다. -근막(근육의 겉면을 싸고 있는 막)을 제거하지 않은 고기는 염지도 잘 안되고 식감이 질겨진다. ② 염지액에 고기를 1주일 담가둔다. (냉장보관) - 염지액 : 돼지 등심 1kg당 물 1.5리터+ 피클링스파이스 5g, 소금18g, 황설탕 18g, 마늘가루 5g, 양파가루 5g, 흑후추5g을 넣고 끓여낸다. - 염지액은 하루 전 만들어 식힌 뒤 사용하고, 염지에 담근 고기는 하루 한 번씩 뒤집어 준다. ③ 염지가 끝난 고기는 차갑게 흐르는 물에 씻어준다. - 보통 1~2시간 가량 씻어주는데 이때 씻어냄에 따라 짠맛을 조절한다. ④ 씻어낸 고기를 깨끗한 천이나 키친타올 등으로 물기를 제거해주고 2일간의 건조과정을 거친다. - 건조가 잘 될수록 훈연이 잘 된다. - 보통은 자연건조를 추천하나 냉장고나 김치냉장고를 이용하기도 한다. ⑤ 미트 케이싱(넷 케이싱, net casing) 작업을 한다. -페트(PET)병으로 만든 보조도구와 넷 케이싱을 이용해서 건조된 고기를 망으로 둘러싼다. (모양과 고기 질감을 살린다) ⑥ 훈연한다. - 그릴 내부에 스모크우드나 참나무 톱밥을 넣은 뒤 브리켓(히트 비트) 3개 넣어주고 30~40도 부근에서 3시간 정도 훈연한다. ⑦ 훈연이 끝나고 나면 브리켓을 10~15개 정도 더 추가하여 그릴 내부온도를 90도~100도 부근으로 만들고 3시간 정도 베이킹 한다. -최종 베이킹 된 고기에 직접 온도 측정 시 65도 이상이면 된다. ⑧ 냉장고에서 하루 숙성시킨 뒤 조리해서 먹는다. ※ 훈연기가 없다면 나무판자나 벽돌로 사각 형태의 틀을 만든 뒤 위쪽에 연기가 빠져나갈 연통(구멍)을 설치하고 아래쪽에는 나무를 태울 불통을 설치하면 초간단 훈연기가 완성된다. 이때 내부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온도계는 꼭 챙긴다. (미트용 온도계는 캠핑용품 전문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9천 원대부터 1만 원대로 구매 가능)
'너른마당'에서 선보인 수제 햄으로, 고기의 근막을 제거한 뒤 염지(1주일간 저온숙성)를 한 다음 훈연 작업을 거쳐 생산된다. (사진제공=너른마당)
위 방법이 복잡하다면, 좀 더 간단한 방법을 소개하겠다.
①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로 자른 돼지고기를 핏물 제거 후 설탕을 뿌려서 잠시 둔다. ② 마늘과 양파를 갈고 후추와 소금, 계핏가루를 섞어 만든 향료에 고기를 재운 뒤 2~5℃(냉장온도)에서 3~5일간 보관한다. 고기는 하루에 한 번씩 뒤집어준다. ③ 재워둔 고기를 면실로 꼼꼼하게 묶는다. ④ 고기를 훈연기에 넣은 뒤 나무를 태워 연기를 낸다. 이때 스모크우드를 사용하고 훈연기 내부 온도는 50~60℃를 유지하면서 10시간 가량 훈연한다. ⑤ 훈연이 끝나면 끊는 물에서 50~90분간 삶아내면 된다. |
◇ 가공육과 수제 햄·소시지의 차이 '첨가물과 염분'소시지와 햄 등의 가공육은 훈제, 염장 또는 보존제 첨가 등의 처리가 된 육가공품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육가공품의 가장 큰 문제가 첨가물이라고 지적한다. 주로 햄·소시지 가공육에는 L-글루타민산나트륨, 에리소르빈산 나트륨, 소르빈산, 글리신 등 많은 화학첨가물이 많이 들어가지만, 이 중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물질은 아질산나트륨과 인산염이다. 아질산나트륨은 가공육류의 색깔을 더욱 붉게 만드는 일종의 발색제며, 인산염은 햄·소시지를 쫀득쫀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자체 독성은 거의 없지만 과다 섭취 시 인체 내에서 칼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장안대 식품영양학과 전형주 교수는 "가공육은 색깔과 보존 기간, 점성 등을 위해 쓰이는 첨가물이 문제가 된다"며 "수제로 햄과 소시지를 만들 경우에는 이 같은 첨가물을 넣지 않고 질 좋은 고기를 선택해 고기함유량을 높여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가공육은 보존 기간을 위해 방부제도 쓰지만 염분 자체도 굉장히 높다.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경우에는 유통기한을 줄이더라도 염분을 낮춰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기와 전분을 섞는 과정에서 완전히 정제된 탄수화물을 넣기보다 정제가 안 된 통곡물 가루를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권했다.
◇ 직접 만들기 부담되면 시판 수제햄·소시지를 먹자수제 햄·소시지의 가장 큰 장점은 직접 만들어 먹는데서 주는 맛과 영양이지만, 단점은 짐작대로 직접 만들어야 하는 수고로움이다. 최근에는 수제 소시지와 햄을 만들어 파는 전문 업체도 늘고 있어 주문해 먹는 것도 방법이다.
무방부제, 무색소 등 일체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유통기한이 기존 시판 가공육보다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만 고려해 주문하면 된다.
수제햄닷컴 (www.수제햄.com)에서는 국내산 돼지사태를 훈제한 햄으로 ‘누스햄’ 500g당 한 팩 기준 세일가로 10,700원, 다양한 맛의 수제 소시지를 세일가로 5,500원~6,500원에 구입해 맛볼 수 있다.
캠핑 수제소세지(www.wangsso.com)에서는 왕 소시지 650g(130gx5)를 세일가로 13,520원에 만나볼 수 있다.
직접 소시지와 햄을 만들어 요리하는 식당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위치한 '너른마당'은 수제 소시지와 햄을 훈연까지 거쳐 만들어 낸다. 때때로 수제 햄‧소시지 만드는 체험행사도 하니 혼자 만드는 게 막연하다면 이용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