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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금수저들, 재벌 3~4세 경영 능력은 몇 점?

칼럼

    [칼럼]금수저들, 재벌 3~4세 경영 능력은 몇 점?

    (사진=자료사진)

     

    돈이 센가? 권력이 센가? 이건 어리석은 질문(愚問)이다. 답은 금력이 권력보다 강하다. 전제 군주 시절의 왕정 또는 독재 권력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때는 권력이 금력을 지배했으나 지금은 둘의 관계가 역전됐다. 한국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권력은 5년마다 바뀌지만 재벌은 유한한 정권과 관계없이 거의 무한하다. 늙어 죽을 때까지 회장 자리를 독점한 채 아들·딸들에게 회장 또는 부회장 자리를 물려준다. 그래서 “국가 권력의 상당 부분이 재벌들에게로 넘어갔다”고 한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맞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으니 권력과 부의 역전 현상이 더 심해졌다. 신자유주와 승자독식, 정의가 사라진 세상이 지속되는 한 역전의 강도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은 측근들을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고자 할 때 국민의 눈치라도 본다. 청문회를 의식해야 하고 지역안배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등용한다. 반면 재벌은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회장(오너) 마음대로다. 심지어는 제멋대로다. 실적이 좋거나 충직한 부하 직원이면 2~3 단계 승진시켜도 누구 한 명 딴죽거는 사람이 없다. 적게는 1~2%의 지분을 갖고 120%의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재계 오너들이다.

    이런 120% 권한행사가 연말마다 행해진다. 인사권의 전횡으로 비쳐지기까지 한다. 신사업 동력 찾기의 적임자라거나 경영 능력이 출중하다는 등의 수식어를 써가며 아들·딸들을 주요 보직에 앉힌다. 재벌 총수의 아들딸이라는 이유 말고는 다른 설명은 오히려 구차하다. 그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당당할 텐데 해명조차 없다. 입사 4~5년에 상무·전무 자리를, 더욱이 초특급 실세 위치를 꿰차는 것이 샐러리맨들에게 주는 상실감은 ‘천붕’과 다를 바 없는데도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한다.

    우리 사회는 정의가 사라졌으며 불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됐다며 자괴감을 느끼는 직장인들의 한숨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존 롤스는 "정의는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이 없는 상태" 라고 규정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능력과 우수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돼야 실현된다”고 설파했으나 공정사회와 정의는 정의론을 25년 동안이나 연구한 존 롤스의 <정의론>이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나 나오는 말로 전락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 김동관 상무 (사진=자료사진)

     

    근자에 부장에서 상무, 상무에서 전무, 전무에서 부사장,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 재벌가의 도련님들은 한 둘이 아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상무는 올 1월 상무로 승진하더니 12월에 전무로 한 단계 또 뛰었다. 허창수 GS그룹 장남인 허윤홍 GS건설 사업지원실장과 허준홍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고 4촌인 허서홍 GS에너지 부장도 상무로 영전했다. 정몽준 전 의원의 아들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도 상무 승진 1년 만에 전무로 이름을 올렸다. 이웅렬 코오롱 회장의 외아들인 이규호 부장이 상무보로 올라서며 임원이 됐다. 이밖에 박서원 두산 전무도 박용만 두산 회장이 장남이라는 이유로 이번에 신규로 진출한 두산 면세점 전략담당 전무 자리를 꿰찼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면세점업을 맡긴 것이다. 흑자가 날 수밖에 없는 기업인 만큼 영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도록 하려는 박 회장의 심모원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대기업들과 중견 기업들의 2세 또는 3~4세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후광에 힘입어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32세였던 2001년 삼성전자 상무보로 회사 경영에 참여한 뒤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로 승진했으며 현재는 부회장이다. 평균 28개월마다 승진했다.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도 예외가 아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26세였던 1995년 임원이 된 이후 1998년 상무, 2000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가 2006년엔 두 직급이나 건너 뛰어 부회장에 올랐다. 가장 어린 나이에 임원이 된 총수 자녀는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의 아들인 윤석민 태영건설 부회장으로 24세였던 1989년 이사가 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사장) (사진=삼성 제공)

     

    대기업 총수 자녀들은 평균 31.5세에 임원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가의 도련님들은 일반 직원들이 20년에서 25년 걸리는 기간을 5-6년 사이에 해치운다. 그것도 실적이 좋은 알짜 자회사나 신수종 사업 등을 맡긴 뒤 경력을 세탁하는 수법으로 경영 능력을 과시하도록 한다. 그 밑엔 우수한 직원들을 배치하는 방법도 쓴다. 그룹 계열사들이 전사적으로 밀어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재벌 총수의 아들인 만큼 자회사들끼리의 일감 몰아주기 등 그룹 차원의 특혜란 특혜는 다 받고 경영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른 살 안팎의 젊은 상무나 전무가 일을 잘하면 뭘 얼마나 잘하겠는가? 유명 대기업 핵심 부서에서 근무하다 수년 전 사직한 전직 임원은 “재벌 총수들 자식들 가운데 아직까지 뛰어난 경영 능력을 발휘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언론이 3~4세들을 마구 키워줘서 그렇지 그들이 한 일을 한 번 내밀하게 캐보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도 그동안 책임졌던 사업 분야에서 내세울만한 성과를 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택에 승승장구하는 재벌 3세, 4세들 대부분이 탄탄대로인 사업 위에 올라탄 채 후계자로서의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이름을 숨기고 다른 회사에 가서 대리에서 과장, 부장, 상무까지 승진한 재벌가 3~4세들은 단 한 명도 없다. 만약 그런 후계자가 있다면 해외토픽감이다.

    경제부처의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재벌 1세대들은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사업을 일구었는데, 재계의 3세, 4세들 가운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뛰어 넘는 걸출한 경영인이 나올 것 같지 않다”면서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한 기저에는 재벌 후손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부처 수장을 지낸 인사도 “재벌가 3~4세들의 경영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으며 두각을 내는 3세들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렇다. 그들 중에서 마크 주커버그나 구글 창업자인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같은 인물이 나올 것 같지도 않으며 그런 혁신가들을 키워낼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10대 그룹 관계자들로부터 “우리 회장님의 자녀가 무슨 일을 낼 것”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이 정주영, 이병철 전 회장 같은 걸출한 재계 인사가 여러 명 출현하기를 학수고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100대 부자 가운데 84명이 상속 부자인 반면 미국은 100위의 부자 중 78명이 자수성가한 창업자들이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고 맨손으로 억만장자가 된다는 것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뜻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고서는 부자로 행세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한 가지는 재벌 3~4세들에 대한 후계자 양성이 정규직 교육과정과 미국 유학이라는 부유층 자녀들의 정기 코스에 치중해 있다는 비판이다. 그들이 미국식 승자독식주의와 약탈적 금융자본주의 교육에 길들여졌음은 물론이고 미국식 문화에 젖어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한국 친구도 별로 없고, 한국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미국 유학 도중 만난 부잣집 아이들이다. 재벌가 자녀들끼리 몰려다닌다. 재벌가 자녀들만 가는 술집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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