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송곳>의 배우 지현우와 안내상. (사진=(주)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 제공)송곳>
- 구고신, 여러 실존인물 모델로 한 인물
- 많은 활동가들 이야기, 최규석에 전했다
- 송곳작가는 완벽주의자, 100명 넘게 노동자 만나
- 참여정부? 당시에도 노동운동 힘들었다
- 송곳 이후, 노동강의하기 수월해져
- 노동소득비중이 너무 낮은게 한국의 문제
- 드라마 '송곳'엔 PPL, 대기업광고 거의 없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5년 12월 7일 (월) 오후 7시 0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하종강 교수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 정관용> 최근에 드라마로 제작돼서 인기와 화제를 모았던 ‘송곳’ 여러분 혹시 보셨나요? 이게 원래 웹툰이었고 이번에 드라마로 제작됐던 건데요. 노동문제, 특히 노동조합과 관련된 이야기를 아주 속속들이 세세하게 다룬 그런 작품입니다. 여기 주요인물로 노동상담소장 구고신 이런 인물이 나오죠. 이 사람이 원래 현재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이시고 또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신 하종강 교수이십니다. 제대로 드라마에서 그렸는지 확인해보려고요. 저희가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하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하종강>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거 원래 본인을 그렸다는 것 알고 계셨어요?
◆ 하종강> 그렇게 말하기는 좀 어렵고요. 사실 구고신은 한 사람은 아니고 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을 모은 거지만 여러 사람을 모은 캐릭터거든요.
◇ 정관용> 여러 사람이 하나로 전형화된?
◆ 하종강> 네.
◇ 정관용> 하종강 교수를 보고 그린 것 아니에요?
◆ 하종강> (웃음) 최규석 작가가 이 노동만화를 처음 구상할 때 찾아온 사람이 저였고 그게 2008년 10월이었거든요.
◇ 정관용> 2008년.
◆ 하종강> 제가 날짜도 기억하는데요. 2008년 10월 3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노동만화에 대한 구상을 만나서 많이 했고 저랑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구고신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제 이름도 끼어서 이야기 할 분이지 사실은 ‘하종강이 구고신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어려워요.
◇ 정관용> 그래요?
◆ 하종강> 그 드라마를 보면 맨 첫 장면이 중국집에서 6개월 동안 일했지만 월급 한 푼 받지 못한 청년배달부 월급을 통쾌하게 받아준 장면 나오잖아요. 실제로 지금도 그 택배노동자노조를 조직하려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활동가의 이야기고요. 실제로 제 후배 중에 저랑 같이 잡혀서 고문당했던 후배가 그 고문 후유증으로 심부전증을 20년 뒤부터 앓고 직접 상담소에서 하루에 4번씩 복막투석 해가면서...
◇ 정관용> 투석을 상담소에서.
◆ 하종강> 그러면서 일반노조를 조직한 사람은 지금도 부산지역에서 활동하는 제 후배고요. 제 장면은 데모하다가 잡혀갔을 때 고문하던 수사관이 처음부터 첫 질문이 ‘북한 언제 갔다 왔냐?’ 그런 장면. 그 고문 사이사이에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내가 청평에 있을 때 거기서 수상스키를 잘 탔다’ 그런 것들을 자랑하는 장면. 거기 제가 열심히 이 사람에게 내가 맞장구를 쳐서 좀 호감을 가지게 하면.
◇ 정관용> 좀 덜 맞겠다.
◆ 하종강> 고문의 강도가 약해지지 않을까. 이런 게 정말 절실하게 느껴졌던 이런...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부끄러운 장면 이 정도가 제 얘기고요.
◇ 정관용> 그래요? 본격적인 노동상담소 하시고 이럴 때 이야기는...
◆ 하종강> 상담소도 저도 했죠. 그리고 그 상담소에 구고신과 같은 활동을 많이 했지만 실제로 이수인 씨 역할은 김경욱이라는 실제모델이 있는 거고요.
◇ 정관용> 실제 그 노조를 만들었던.
◆ 하종강> 네, 육군사관학교 졸업하고 장교로 예편했다가 ‘까르푸’라는 대형마트에서 관리자로 일하다가 노동조합위원장까지 했던 실제 인물은 있었어요.
◇ 정관용> 김경욱.
◆ 하종강> 네. 김경욱 씨고. 김경욱 씨가 까르푸에서 처음 노동조합 활동할 때 드라마의 구고신처럼 실제 많은 도움을 줬던 사람은 김재광 노무사를 비롯한 부천 지역의 활동가들이고요. 한 사람은 아니에요.
◇ 정관용> 아. 하종강 교수가 그 김경욱 씨를 직접 도왔던 건 아니고?
◆ 하종강> 그건 사실 드라마나 만화에 나오는 사건 끝난 다음에 김경욱 씨하고 저하고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됐고요. 그리고 김재광 노무사를 제가 그저께도 김포에서 만났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서 김재광 노무사도 ‘전국에 구고신이 많아’ 이렇게 이야기했거든요.
◇ 정관용> 아, 그래요.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 지금 사람 이름이 줄줄 나오는데.
◆ 하종강> 그러니까 이건 이 사람 얘기고 이 사람 얘기다라는 걸 전체적으로 다 아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은데.
◇ 정관용>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을 작가인 최규석 씨한테 알려준 사람은 하종강 교수잖아요.
◆ 하종강> 제가 제일 많이 얘기했고 시나리오 얘기도 가끔 하고 이러니까 제일 많이 알고 있는 거죠.
◇ 정관용> 작가 최규석 씨는 원래 알던 사이였어요? 아니면?
◆ 하종강> 작품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먼저 연락을 했더라고요, 2008년도에. ‘최규석입니다. 그런데 한번 뵙고 싶습니다’ 그분이 그때 ‘100℃’라는 6월 항쟁을 그린 만화를 완성하고 나서 6월 항쟁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이 그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걸 자기가 완결하지 않으면 다른 작업하기 좀 어렵겠다. 그런데 대부분 6월 항쟁 때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이 정관용 씨도 마찬가지지만 노동운동 다 한두 번씩 경험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고 찾아왔더라고요. 손문상 화백이랑 같이 왔었는데.
◇ 정관용> 손문상 화백이랑.
◆ 하종강> 일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마다 만나서 몇 시간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녹음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최규석 작가가 묻고 싶은 걸 노트에 쫙 적어와요. 10시간씩 얘기를 하는 거죠.
◇ 정관용> 꼼꼼한 취재과정을 겪은 거네요.
◆ 하종강> 그 후에 만난 노동자가 100명이 넘을 겁니다.
◇ 정관용> 본인이 이걸 그리려고?
◆ 하종강> 네. 그 사람이 완벽주의자라서요.
◇ 정관용> 최규석 작가가?
◆ 하종강> 만화에 보면 환경미화노동자들 얘기가 잠깐 나오거든요. 그러면 제 생각에는 그 이야기만 듣고도 충분히 만화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소개 받아서 직접 만나서 청소수거차를 타고 새벽에 나가서 몇 시간을 같이 다녀요.
◇ 정관용> 직접? 말만 듣는 게 아니고?
◆ 하종강> 네. 그리고 진압하러 나온 경찰의 심리를 정확히 묘사하고 싶다. 그러면 경찰을 또 소개 받아서 만나서 몇 시간 동안 술 마시고 밤새 얘기 듣고. 그래봐야 만화에 몇 장면 나오거든요. 경찰 얼굴 두세 장면.
◇ 정관용> 진짜 완벽주의자군요.
◆ 하종강> 그래서 이 만화를 준비할 때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만화 구상이 계속 바뀌었는데.
◇ 정관용> 그러다가 이제 실제인물 한 명을 잡았군요. 김경욱 씨.
◆ 하종강> 김경욱 씨를 만났는데 굉장히 호감을 느낀 거예요, 서로. 책에서의 표현은 노동운동가들은 자기가 이해하기 어렵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김경욱 씨는 충분히 자기가 이해할 수 있겠더라는 거죠. ‘내가 김경욱이면 저렇게 살았겠다. 그런데 나 솔직히 하종강처럼은 못 산다. 당신처럼은. 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못 스리겠다’ 이런 농담도 했고요.
◇ 정관용> 그런데 정작 그 웹툰 송곳은 결말을 못 봤지 않나요?
◆ 하종강> 아직 연재중이고요.
◇ 정관용> 아직도.
◆ 하종강> 드라마는.
◇ 정관용> 그중에 한 부분만 또.
◆ 하종강> 사실 드라마는 아직 만화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까지 앞질러가서 끝났어요. 그 시놉시스만 건너간 상태에서 드라마가 제작됐기 때문에 그래서 마지막에 11회, 12회 정도에서는 약간 사람들이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만화에서는 많이 보완될 겁니다. 거칠게 다뤄지면서 끝난 점이 있거든요.
◇ 정관용> 그러면 드라마가 웹툰의 예고편처럼 그렇게 되는 셈이 됐네요? 이제 앞으로.
◆ 하종강> 네. 감독님이 자기가 이 만화에 대한 팬심으로 이걸 만들게 됐다. 그래서 정말 대사 하나 다르지 않게, 장면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화면으로 옮겼고요. 콘티를 보면 그냥 만화 장면을 콘티에 넣어놓았더라고요. 따로 만들지 않고.
◇ 정관용> 우리 웹툰이나 드라마나 얼마 전 영화 ‘카트’가 나와서 인기를 끌었고. 카트의 감독이 저희 방송에 나왔을 때도 저한테 똑같은 질문을 당했어요. 아니, 너무나 일상으로 우리 주변에 벌어지는 일인데 그걸 다룬 영화라고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게 문제 아니냐. 이런 영화가 수없이 많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 똑같은 걸로. 이런 웹툰, 이런 드라마 진작에 있었어야 하고 지금도 옆에서 막 만들어지고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왜 이런 게 없을까요?
◆ 하종강>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특별한 점이 있는데요. 이 만화를 보면 드라마의 첫 장면에도 나오지만 ‘2003년도에 있었던 사건을 실화로 만들어 구성된 작품이다’ 이게 나오거든요. 왜 최규석 작가가 굳이 2003년을 배경으로 삼았을까. 그때가 참여정부 때였거든요. 그러니까 한국 노동운동은 참여정부 때 상당히 힘들었다, 어려웠다. 이런 것을 암시하고 있는 거고요. 노동운동이나 노동문제에 대한 비정상적인 혐오감이 한국사회에 있으니까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러니까 송곳도 보면 웹툰에는 어떤 반응이 많았느냐면 이거 우리 회사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다.
◇ 정관용> 그럼 그게 왜 불편해요? 공감이 느껴지는 거죠.
◆ 하종강> 웹툰에는 불편하다는 반응보다는 너무 똑같다, 이게. 내 얘기 같다. 그리고 마트를 배경으로 선택한 것도 저는 이게 신의 한수라고 표현을 했는데 만약 이게 제조업체, 생산직, 블루칼라 노동자들 이야기였다면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동자들은 남의 일처럼 생각했을 겁니다.
◇ 정관용> 그렇죠.
◆ 하종강> 만약 미생처럼 사무직 노동자들의 화이트칼라들의 이야기이면 생산직 노동자들은 저건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했을 텐데, 유통은 이게 중간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어요.
◇ 정관용> 그리고 모두 가 옆에 가서 보잖아요.
◆ 하종강> 네, 그래서 이게 굉장히 절묘한 선택이다, 이런 생각도 했고. 그 웹툰 게시판에 보면 ‘우리 회사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다’ 이런 반응이 많았는데 드라마에 대한 소감은 너무 똑같아서 불편했다.
◇ 정관용> 똑같아서 불편했다?
◆ 하종강> 네.
◇ 정관용> 그런가요?
◆ 하종강> ‘노동조합을 해보려는 사람들을 강렬하게 탄압하는 게 너무 사실적으로 나오니까 보고 있기가 굉장히 불편하더라’ 이런 반응이 드라마에는 많았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저는 재벌들 집안에 무슨 어머니가 달랐네, 사생아인데 알고 보니 형제였네. 이런 게 더 불편하던데. 그런 드라마는 차고 넘치고 이런 드라마는 없고. 이번 송곳이 계기가 되겠죠?
◆ 하종강> 계속 작은 불씨가 돼서 사람에게 익숙하게 다가섰으면 좋겠는데요. 지금까지 노동문제를 다룬 드라마들은 좀 있었어요. 부분적인 소재도 있었고 전면적으로 미생 같은 드라마도 있었는데.
◇ 정관용> 저는 노동조합운동 이렇게까지 간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요.
◆ 하종강> 최규석 작가가 농담처럼 장그래가 노동조합 만들까봐 보면서 조마조마 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 정관용> 자기가 최초로 해야 하는데.
◆ 하종강> ‘내가 본격적으로 다룰 내용인데’ 이런 농담 우리끼리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물어보니까 윤태호 선배가 그럴 계획은 없다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렇죠. 노동현장을 좀 얼핏얼핏 다룬 것들은 있죠. 그러나 노동조합운동 이런 건 없잖아요.
◆ 하종강> 그렇지만 사실 그렇게 묘사되는 캐릭터들은 굉장히 거칠고 대화할 때 눈 부릅뜨고 얘기하고 이런 캐릭터들이었잖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냥 보통 사람들이거든요. 장그래 같은 사람들이 노동조합 만들고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고 최규석 작가도 어떤 표현을 썼냐 하면 ‘송곳은 특별히 뾰족해서 뚫고 나왔다기보다 그냥 구부리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주변에서 다 구부릴 때 자기 혼자 바로 서 있으니까 이 사람이 송곳 같은 존재가 된 것이지 송곳이라고 해서 특별한 존재들은 아니다’ 이런 말을 최규석 작가가 했거든요.
◇ 정관용> 저의 질문과 답변이 상징하듯이 지금 우리의 노동운동의 현실, 드라마에서 최초로 다뤄질 만큼 2015년에 와서야. 참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있고. 그게 왜 안 바뀌고 있나. 우리 하 교수님은 노동운동 근처에서 직접적으로 관련된 걸로 치면 몇 년이죠?
◆ 하종강> 제가 처음 상담 일을 시작한 것이 81년이었으니까요.
◇ 정관용> 그러면 34년이 흘렀네요.
◆ 하종강> 네. 그런데 사실 지금 더 어려워졌죠, 그때보다 많이.
◇ 정관용> 더 어려워졌어요? 조금 좋아진 것 아닙니까?
◆ 하종강> 그러니까 87년 대투쟁이라고 부르는 그 시기 이후에 상당히 노동조건이 향상됐는데 지금은 대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그게 많이 해당되는 내용이고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노동운동은 많이 후퇴했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하종강> 드라마도 보면 구고신이 공장 앞에 길바닥에서 교육할 때 그런 내용 나오거든요. 이제는 한 사람이 벌어서 내 가족 네 명을 다 먹여 살릴 수 있는 이런 시대는 다시는 안 올 것이다. 외환위기 당했을 때 우리가 다 금 갖다 바치고 정리해고 받아들이고 비정규직 다 뽑아가면서 다시 경기가 좋아지면 회복될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 한 번 빼앗긴 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거 열심히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가 만들어진 다음에 강의하기 좀 편해졌어요. 사람들이 제 얘기 듣는 것보다 드라마의 그 장면 보는 걸 훨씬 더 몰입해서 사람들이 보더라고요. 외환위기 이후에 굉장히 더 어려워졌죠.
◇ 정관용> 그러니까 81년에 시작하셨고 87년 노동자 7, 8월 대투쟁 그때 정말 폭발적으로 분출했고.
◆ 하종강> 그랬죠.
◇ 정관용> 노동조합 조직도 그 이후에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고. 그러다가 IMF 때까지는 쭉 그나마 성장세였죠.
◆ 하종강> 그렇죠.
◇ 정관용> IMF 이후에 와르르 무너진 겁니까?
◆ 하종강> 거의 재앙처럼 그게 닥친 거죠. 사실은 우리가 그런 외환위기를 겪었던 이유가 양극화의 성장 속에서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구매력을 형성할 수 없는 경제구조 속에서 그 태풍을 맞은 거잖아요. 그래서 사실 그 동안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부가 충분히 받아들였으면 우리가 외환위기라는 외풍을 그렇게 혹독하게 겪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인데 오히려 그게 반대로 된 거죠, 한국에서는.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노동자들도 양보해야 하고 목소리를 낮춰야 하고 노동자들이 양보함으로써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처럼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 바람에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그 영향을 미친 거죠, 한국사회에서는.
◇ 정관용> 그때 바로 얼마 전에 새누리당의 서청원 최고위원은 IMF 사태가 당시 노동개혁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 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하종강> 지금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기업의 이익이 마치 나라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뭐냐면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데 그중에 노동소득 비중이 너무 낮거든요.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우리 노동소득비중이 너무 낮으니까 자영업자 소득을 노동소득에 포함시키잖아요, 한국정부는. 그래도 굉장히 낮고, 더 심각한 문제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외풍이 닥쳤을 때 한국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고 이런 위기가 항상 있는 건데.
◇ 정관용> 노동소득비중이 낮다는 건 그만큼 내수기반이 약하다는 것이고.
◆ 하종강> 그렇죠.
◇ 정관용> 외풍이 닥쳐서 수출이 안 됐을 때 내수가 버텨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얘기고.
◆ 하종강> 외환위기 때 우리가 어떤 공익광고를 1년 내내 봤냐 하면 여성 코미디언이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 나와서 ‘똑똑하게 소비해 주세요’ 호소하는 공익광고가 있었어요. 허리띠를 허리가 끊어지도록 졸라매면서 너무 절약하면 괴롭습니다.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 정관용> 돈 쓰자는 얘기였죠.
◆ 하종강> 네. 경제위기를 겪고 다 난리가 났는데 오히려 ‘소비해 주세요’ 이런 광고를 정부는 할 수밖에 없었던 거거든요. 그게 한국경제가 그동안 양극화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수출주도형 성장 속에서 생긴 코미디 같은 일이었는데 이 교훈은 여전히 아직도 유효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이 좀 부담이 되더라도 적정한 고용을 유지하면서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올바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경제학 A, B, C를 우리 정책 담당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거죠.
◇ 정관용> IMF 위기 이후에 지금 말씀하신 그런 광고를 했지만 그러나 위기극복의 방향이라고 하는 것은 힘세고 맨 위에 있는 사람들을 더 살리기 위해서 밑에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이 일단 그 자리를 다 떠나 달라. 해고당하고 이른바 구조조정 되고, 그걸 통해서 비용 줄여서 생존한 기업들은 더 큰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방식.
◆ 하종강> 단기적인 처방은 될 수 있겠지만 그 문제점이 계속 누적되고 있어서 이명박 정부 때 더 심해졌고 그게 박근혜 정부에서 고스란히 그걸 이어받았기 때문에.
◇ 정관용> 지금도 저성장의 기조는 변함이 없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으로 보여지지 않습니까, 우리 경제는. 그럼 우리 노동운동은 계속 힘들어지는 겁니까?
◆ 하종강>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요.
◇ 정관용> 당분간이라는 게 얼마나?
◆ 하종강> 노동자들에게 강의할 때 이 시기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안 끝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여기서 어떤 방향의 선택을 하고 노력해야 하는가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며 장하준 교수가 그 책 속에서 보면 친필로, 못 쓰는 글씨로 쓴 글 중에 ‘미국의 노예제도가 철폐되는 데 200년이 걸렸다. 여성이 투표권을 갖는 데 100년 걸렸다’ 이런 거 쓴 것이 있어요. 그러면 노예제도 철폐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한 사람 중에 그것 보지 못 하고 죽은 사람 얼마나 많았겠냐고. 그렇지만 그런 노력이 쌓여지지 않았다면 아직도 노예제도가 철폐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지만 우리가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 여기서 끝나고 돌아가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잡혀가서 고문당할 걱정을 안 하지 않느냐.
◇ 정관용> 이제는 그런 걱정 없죠.
◆ 하종강> 우리가 여기까지는 왔고 우리 같은 노력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계속 사회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장한 얘기를 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내용이 드라마 송곳 속에 구고신 대사로 나와요. 그런 부분은 제 얘기라고 할 수 있는 거죠.
◇ 정관용> 그 정도 각오를 하고 죽을 때까지 노동운동이 조금 빛을 발하는 시기를 못 볼 수도 있다는 각오를 임하고 해야 한다.
◆ 하종강>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저는 제가 이런 방송에 나와서 이런 얘기를 마음 놓고 하게 된 시기가 제 삶에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는 각오는 또 안 했잖아요, 우리가.
◇ 정관용> 하긴 또 돌아보면 그러네요.
◆ 하종강> 그리고 공무원노동조합이 언젠가 생길 것이다. 다른 나라가 다 수십년 전에 했으니까. 그런데 3000명이나 징계를 당하면서 대한민국 공무원이 이렇게 노동조합 깃발을 빨리 들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 정관용> 또 그러네요.
◆ 하종강> 사실 무상급식도 보면요, 무상급식이라는 화두가 우리 사회에 그렇게 급하게 닥칠 거라고 아무도 짐작을 못했습니다, 어느 시민운동가도.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참고 견디면 87년 노동자 대투쟁 같은 시기를 우리가 또 볼 수도 있다.
◇ 정관용>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네요. 우리가 이뤄놓은 것도 생각하면 또 그만큼 많이 있네요.
◆ 하종강> 네.
◇ 정관용> 해야 할 일도 너무나 많지만. 그렇죠?
◆ 하종강> 그래서 그런 것들이 송곳 보면 그 만화, 드라마 대사 곳곳에 사실 녹아 있습니다.
◇ 정관용> 현장에서 그런 문제를 느끼고 정말 오거나이저(organizer)가 되어야지. 심지어 거기까지는 못 한다 하더라도 노동운동을 해야 돼. 이렇게 변하는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있죠?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까?
◆ 하종강> 오늘도 제가 새벽기차를 타고 광주에 가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왔거든요. 나와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여고생이, 오늘은 청소년이 대상이었거든요. 교복 입은 여고생이 제 옆에 오더니 ‘우리 어머니가요, 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 초창기 때 시작하던 분이신데요. 전 그게 굉장히 밉고 싫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강의를 듣고 그게 정말 좋은 걸 알았어요.’ 이걸 막 눈물 그렁그렁 하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런 학생이 조금씩 많아지는 거죠. 계속 그래도 보면. 이게 우리 사회의 희망인 거죠.
◇ 정관용> 송곳 드라마가 그런 사람들을 늘리는 데 기여하겠죠?
◆ 하종강> 할 겁니다.
◇ 정관용> 그렇죠?
◆ 하종강> 삼성에 있던 회사 몇 개가 한화로 넘어갔잖아요. 거기에 노동조합들이 거의 대부분 바로 생겼거든요.
◇ 정관용> 바로 생겼죠.
◆ 하종강>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길 때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노동조합 만들고 조끼를 처음에 지급했어요. 점심시간에 조끼를 다 착용합시다. 그랬는데 선뜻 그걸 입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겁니다, 처음이니까. 그런데 식당에 점심시간에 여성들이 별로 없는 사업장인데 여성조합원 2명이 그 조끼를 입고 식당에 나타난 거예요. 어떤 남자조합원이 그 사진을 멀리서 찍어서 노동조합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 남자조합원은 뭐 느끼는 것 없냐고. 그날 저녁에 조끼가 모자랐어요. 그런데 송곳에 보면 노동조합활동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조끼 처음 입던 날에 계산대 밑에서 숨어서 겨우 입고 일어나서 확인해보는 이런 장면 나오거든요. 한 일주일 전쯤에 안산 지역에 가서 제가 강의할 때 그 장면만 같이 봤어요. 그런데 그것 보면서 줄줄 우는 사람 많이 있었거든요.
◇ 정관용> 자기 일이니까.
◆ 하종강> 그러니까 이게 벌써 몇 십 년 전의 일이 계속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 정관용> 어느 곳 현장에선가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죠.
◆ 하종강> 그렇죠. 그래서 이런 것이 작은 불씨가 돼서 우리 사회에 많이 공론화되고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이 좀 피부에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이상한 문제가 아닌, 그런 생각이 됐으면 좋겠다.